한때 만화는 사회악으로 치부되며 지탄 받았던 콘텐츠 장르였다. 여전히 나이 많은 어르신 중에서 만화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요즘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을 조사해보니 웹툰 작가(만화가)가 인기 희망 직업 중 하나로 나타났다. 이렇게 바뀐 배경은 무엇일까?
만화가는 콘텐츠 산업 내에서도 굶주림을 견뎌야 하는 직업 중 하나였다. 만화산업 자체가 열악했고 일본 만화가 우리 만화 시장을 지배하고 있어 만화가가 된다는 것은 창작을 향한 열의가 없다면 가시밭길을 가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최근 유명 웹툰 작가들이 텔레비전(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유명세를 타고 거기에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좋아하는 만화를 그리며 풍족한 삶을 사는 웹툰 작가에 대한 동경이 생긴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맞게 진화한 K-웹툰
일본 만화가 우리 시장을 점령한 적이 있었다. 만화의 구성과 형식, 스토리 전개 등 만화산업에서 긴 역사를 가진 일본 만화가 우리 만화 산업에 끼친 영향은 크다. 세계적으로 강세였던 일본 만화 시장에 눌려 힘을 쓰지 못했던 우리 만화 시장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웹툰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로 전환점을 맞는다.
웹툰은 그전의 출판 만화 시장과 달리 무료로 볼 수 있고 콘텐츠의 생산 속도가 획기적으로 빠르다는 특징이 있다. 많은 작가가 연재할 수 있는 장이 열리면서 우리 만화 시장은 크게 성장한다. 이전의 출판 만화 시장에서는 선택 받은 소수의 사람만 책을 낼 수 있어서 몇몇 인기 작가가 전체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했다.
하지만 웹툰 서비스를 시작하며 상황이 바뀌었다. 웹툰 특유의 빠른 콘텐츠 생산은 만화 장르의 소비 속도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웹툰 서비스가 많아지면서 많은 작가와 작품이 배출됐고 여기에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나오자 더 넓은 계층의 독자들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대형 포털 서비스를 중심으로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해 웹툰 시장은 점점 커졌다.
웹툰은 디지털, 특히 지능형 단말기(스마트폰)에 가장 적합한 콘텐츠로 디지털 모바일 시대에 맞게 진화했다. 그동안 일본 만화의 모방이라 폄하됐던 우리 웹툰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새로운 콘텐츠 양식을 정립한 것이다. 최근에는 우리 웹툰 양식을 일본이나 미국 등에서 차용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전문가들은 우리의 다양한 웹툰 플랫폼이 세계로 진출해 현지 콘텐츠와 경쟁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이유가 웹툰이 디지털 환경에 적합한 양식을 띠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웹툰 K-콘텐츠의 기반이 되다
디지털 시대에 기기(디바이스)의 진화와 함께 형태를 완성해나간 웹툰은 현재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글로벌 웹툰 플랫폼 태피툰은 100% 우리 웹툰 콘텐츠만으로 2020년 주요 국가의 구글 플레이 만화 매출 1위에 오르면서 우리 웹툰의 글로벌 경쟁력을 입증했다.
웹툰의 가치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웹툰은 다양한 K-콘텐츠의 근간이 되기도 한다. 웹툰은 게임,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원작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끈 <이태원 클라쓰> <스위트 홈> <경이로운 소문>도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다. 많은 웹툰 원작이 영상화됐고 현재 제작 중이거나 기획 중인 작품까지 합하면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 잘 짜인 웹툰은 시장 검증이 필요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콘텐츠 원형으로서 웹툰의 상업적 가치는 다른 콘텐츠 원형보다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동안 우리 만화 시장을 지배하던 일본 만화계는 우리 웹툰의 성장을 예의 주시하며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다. 우리 웹툰 플랫폼이 일본 인터넷 만화 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현실이 일본 만화 시장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 편집자 위주의 만화 제작 방식이 아닌 인공지능(AI)과 대량자료(빅데이터)를 이용해 일본인의 기호를 분석하고 시장이 요구하는 유형의 작품을 엄선해 제공하는 우리 웹툰 플랫폼의 디지털 노하우에 많은 일본 만화산업 관계자가 감탄하고 있다.
우리 웹툰의 성공은 시대 변화에 맞춘 콘텐츠 양식을 소비자들에게 적절히 제공했다는 데 있다. 과감히 디지털 시대에 맞게 광고 기반의 무료 구독 모델을 제공해 만화산업의 오랜 숙제였던 불법 복제 문제를 해결했다. 여기에 작가와 작품 수에 구애 받지 않고 끊임없이 작품을 생산하는 생산성이 더해지면서 빠르게 작품 수를 늘린 것도 우리 웹툰이 경쟁력을 갖게 된 이유다.
디지털 환경에 딱 맞는 진화를 거치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 K-웹툰은 전 세계의 만화 표준으로 거듭나기 위해 또 다른 진화를 하고 있다.
문동열 콘텐츠산업 칼럼니스트_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기업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제작을 해왔다. 현재 콘텐츠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