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꼬지 대한민국’ 누리집
20세기 말 미국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에서 21세기는 문화 전쟁의 시대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반면 독일학자 하랄트 뮐러는 〈문명의 공존〉에서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났을 때 충돌이 아니라 양립하거나 새로운 문화가 생길 수 있다고 그의 의견에 반박했다. 둘 다 20년 이상 된 책의 주장이라 현재와 괴리감이 있지만 최근 한류의 모습을 보면 문명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한다고 이야기한 뮐러의 이야기가 조금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감과 유대를 통한 문화 공존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은 2020년 10월부터 4개월 동안 온라인에서 ‘2020 한류생활문화한마당 모꼬지 대한민국’을 열었다. 이 행사는 ‘온라인 한국 문화 놀이터’를 지향하며 다양한 프로그램과 인기 K-팝 스타의 출연 등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 화제를 모았다. 당초 주빈국을 정해 현지에서 오프라인 이벤트도 동시 진행할 예정이었다. 코로나19로 온라인에서만 진행돼 아쉬웠지만 전체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평이다.
이 행사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한류 팬들이 대부분 디지털에 익숙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임을 감안해 준비된 콘텐츠들이었다.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의 특성을 잘 살린 참여형 콘텐츠들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우리나라 문화를 알리는 데만 주력하지 않고 주빈국으로서 지정된 국가들과 상호 문화 교류를 시도한 ‘라이브 팬미팅’이나 ‘아바타 쇼핑’ 같은 콘텐츠들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얼마 전 일본에서도 작은 온라인 한류 이벤트가 열렸다. 주 요코하마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주최한 ‘나의 한류 메모리얼 콘테스트’였다. 주최 측은 일본 내 한류 팬들이라면 공감할 ‘한류 생활 아루아루’를 모아 즐거운 한류 라이프를 즐기자라는 취지로 이벤트를 열었다고 한다. ‘아루아루(あるある)’란 일본에서 뜻 맞는 사람끼리 대화하다가 상대방의 말에 자신도 공감을 할 때 쓰는 유행어다. 우리말로 하자면 ‘맞아 맞아’ 정도라 할 수 있다. 특히 많은 참가자가 일본인들만의 소통 방식으로 한류를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는 반응을 보인 점도 인상 깊었다.
위의 두 사례를 포함해 최근의 한류 이벤트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현지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상호 이해와 존중 위에 한류를 접목시킨 한류의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무작정 우리나라 문화의 우수성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걸음 다가서는 자세로 현지 문화를 먼저 이해하려 하고 현지 문화를 통해 한류를 말하는 화법으로 접근하는 방식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의 나라와 자신의 국가와 문화를 존중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현지인은 드물 것이다. 한때 몇몇 국가는 문화 패권을 부르짖으며 자국의 문화 우수성을 타국에 전파시키는 데 노력했다. 단기적으로 보면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헌팅턴의 주장처럼 ‘문명의 충돌’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모꼬지 대한민국’ 누리집
문화는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것
한류 팬덤의 속성을 연구한 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국외 한류 팬덤은 ‘따라 하기, 함께 하기, 따로 하기’의 과정을 거치며 발전한다고 한다. 먼저 국내의 팬덤 문화를 따라 하다가 여러 한류 문화를 섭렵해 멀티 팬덤을 형성하는 ‘함께 하기’의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지나면 ‘따로 하기’의 과정을 통해 한류 문화와 자신들의 문화가 결합된 새로운 팬덤을 형성한다.
실제로 국외의 한류 팬덤을 보면 어느 시점이 지나면 팬덤을 넘어 능동적으로 자기 문화와 결합해 이를 재확산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카자흐스탄의 Q-팝의 사례처럼 한류가 강력한 문화 영향력으로 다른 문화를 종속 지배하는 것이 아닌 문화와 문화를 연결하는 ‘허브 문화’로 작동할 가능성을 의미한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한류와 이를 둘러싼 한류 팬덤에 주목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보통 타국의 문화가 한 나라에 전파되는 데 자국 문화 보호나 문화 침탈에 대한 우려가 들기 마련이다. 현재 신한류는 이러한 우려를 넘어 현지화로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브랜딩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마케팅’에서 ‘브랜딩’으로 넘어가는 단계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것이 좋으니까 우리 것을 사라고 반복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마케팅이라면 브랜딩은 진정성으로 다가가며 자연스럽게 공감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위의 두 이벤트에서 본 것처럼 말이다.
최근 이러한 한류의 움직임은 그동안 늘 제기됐던 한류 거품론에 대한 우려를 없앤다. 속도는 느릴지라도 상생과 공감으로 전 세계인에 스며들듯 뻗어나간다면 한류는 더 이상 거품이나 현상이 아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동열 콘텐츠산업 칼럼니스트_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기업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제작을 해왔다. 현재 콘텐츠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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