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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팀 코리아’ 한·UAE MOU 48건 이뤄내다
정책 돋보기 [특집] ‘팀 코리아’ 한·UAE MOU 48건 이뤄내다

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 국빈 방문을 계기로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이 한국에 300억 달러(약 40조 원)의 투자를 약속했다. 나는 대한민국 영업사원이라고 밝힌 윤 대통령의 영업 성과다. 그동안 UAE의 국가 간 최대 투자협력 규모인 영국의 122억 달러(약 15조 원)를 크게 웃도는 압도적 규모다. 경제외교에 방점을 둔 만큼 산업 전반에 걸쳐 양국 사이에 체결된 양해각서(MOU)도 48건이나 된다. 윤 대통령과 모하메드 대통령 임석하에 체결된 13건, 개별 체결된 11건, 비즈니스 포럼에서 체결된 24건이다. UAE 정부는 대규모 투자협력 의사를 우리 정부에 전달하며 한국에 대한 신뢰의 표시임을 강조했다. 양국은 바라카 원전을 통해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에너지, 인프라(기반시설) 건설 등 전통 협력 분야 외에도 정보통신기술(ICT), 게임콘텐츠, 지능형농장(스마트팜), 관광서비스, 소비재, 방위산업 등 협력 지평을 전방위적으로 확대해가며 한UAE 경제협력이 고도화다변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UAE의 대규모 투자는 국내 유망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국내 자본시장 발전에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이번 투자협력을 구체화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우리나라 KDB산업은행과 UAE 국부펀드 중 하나인 무바달라는 전략적 투자 파트너십(SIP) MOU를 체결했다. 산업은행과 무바달라는 생명과학 등 첨단 분야를 중심으로 국내 공동투자 기회 모색, 투자정보 공유, 제3국 공동 진출 등 다양한 방식의 협력을 확대해나가기로 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중동의 핵심 발주처 중 하나인 아부다비 국영에너지회사(TAQA)와 금융협력을 약속했다. 아부다비 수전력 자산을 보유한 TAQA는 전력물을 생산공급하며 대형 가스복합 화력발전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정부는 양측의 협력을 토대로 TAQA가 발주하는 발전, 해수담수화, 송배전 등의 인프라 프로젝트에 우리 기업의 참여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UAE는 에너지 분야의 협력도 다짐했다. 한UAE 국제공동비축사업을 체결해 석유공급에서 위기상황이 발생할 경우 한국이 400만 배럴을 우선 구매할 수 있는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한편 정부는 3년간 1440만 달러에 달하는 대여 수익도 확보했다. 바라카 원전의 성공적 협력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시장 확대 가속화와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원전 협력 기반 틀도 마련했다. 이번 국빈 방문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신년사에서 밝힌 해외건설 500억 달러 수주 목표는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고유가로 대규모 인프라 시장이 열리는 중동 지역은 전방위적 수주 지원의 무대임을 감안할 때 고무적이다. 정부는 도시 내 수소의 생산저장운송활용에 관한 협력 MOU를 통해 주거교통에서 수소를 주에너지로 활용하는 친환경 수소도시 조성을 지향하며 양국은 해외수소기반 대중교통 인프라 기술개발 사업(RD)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양국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340억 원을 투입해 수소 충전 기술을 국내(대전)와 UAE 현지에서 실증함으로써 사막 기후에 적합한 태양광 활용 수전해 수소의 대량 생산 기술을 개발하는 데 힘써왔다. 이를 통해 저렴한 수소 생산과 활용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허가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2024년부터 UAE 현지에서 실증 사업에 착수해 수소 관련 해외시장 개척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스마트인프라 협력에 관한 MOU 등은 해외건설 패키지 수주 지원을 위한 포괄적 협력 기반을 구축했다. 양국은 2015년 체결한 교통협력 MOU를 자율자동차, 모빌리티 교통수단 서비스(MaaS), 전기수소차 등 최신 모빌리티 트렌드를 반영해 미래 모빌리티 협력 MOU로 범위를 확대하는 데 뜻을 모았다. 오는 11월 개최 예정인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개최국 UAE는 친환경 그린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대중교통 정책에 관심이 높은 가운데 지능성친환경성을 추구하는 한국의 미래 모빌리티 정책과 협력할 잠재력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단순 건설 인프라 협력을 넘어 지능형교통시스템(ITS), 3차원 공간정보 시스템 등의 스마트 기술이 가미된 기술 협력을 강화해 우리 기업의 수주 경쟁력을 제고할 예정이다. 중동 시장에 성공적 첫발 내딛는 계기윤석열 대통령의 UAE 순방을 계기로 열린 한UAE 비즈니스 상담회에는 우리 기업 36개, UAE 바이어 105개 등 141개 기업이 참가해 우리 기업들이 실질적 성과를 거뒀다. UAE의 산업 다각화 정책에 맞춰 원전에너지, 스마트시티, 스마트팜, 문화콘텐츠 등의 분야에서 257건의 1대1 상담이 이뤄졌고 계약 추진액이 1100만 달러(약 136억 원)로 집계됐다. 원전전략 분야에서는 원전 기자재 업체인 유니슨에이치케이알, 코리아누클리어파트너스 등 국내 5개 기업이 참가해 43건의 상담을 진행해 460만 달러(약 57억 원)의 계약을 추진하기로 했다. 플랜트인프라 분야에서는 쌍방향 전기집진기 업체 리코트 등 3개 국내 기업이 참가해 22건의 상담이 이뤄졌다. 방산보안 분야는 종합 방산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X-디렉터 및 시스템 제조업체 본테크 등 4개 국내 기업이 참여해 총 28건을 상담했으며 300만 달러(약 37억 원)의 계약 추진액을 달성했다. 스마트시티문화관광 분야는 숙박여가 플랫폼 야놀자, 렌터카 기반 온오프라인 연계(O2O) 서비스 기업 캐플릭스, 디지털도어록 기업 라오나크 등 9개 국내 기업과 50건의 상담이 진행됐으며 250만 달러(약 31억 원) 규모의 계약을 약속했다. 프리미엄 소비재 분야는 할랄 인증을 보유한 강동오케익, 진삼 등 식품 기업과 인조잔디 업체 코오롱글로텍, 바이오의료기기 업체 에이엠메딕스 등 총 8개 기업이 19만 달러(약 2억 3600만 원)의 계약을 추진하기로 했고 스마트팜 분야는 공기 중에서 식물을 키우는 에어로포닉스 농법을 개발한 미드바르를 포함한 엔씽, 우듬지팜 등 7개 국내 기업이 54건의 상담을 통해 45만 달러(약 5억 5800만 원)의 수출 계약을 진행하기로 했다. UAE 내 8000개 중소스타트업 육성 목표특히 UAE 시장의 문을 꾸준히 두드려온 우리 기업들이 첫 수출 물꼬를 튼 점이 두드러진다. 원전기자재 기업 스프링피스 측은 그간 여러 번 UAE 시장의 문을 두드렸지만 큰 성과를 얻지 못했는데 이번 정상 순방을 계기로 마련된 상담회에서 다수의 적합한 파트너를 만날 수 있었다며 이번 상담회가 중동 시장에 성공적 첫발을 내딛는 계기가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위성영상 기반 농작물 재배 인공지능(AI) 솔루션 초기기업(스타트업) 새팜은 UAE는 우수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언어와 거리의 장벽으로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 정상외교를 계기로 많은 도움을 받아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스타트업 육성 협력에 대한 UAE 측의 관심도 높다. 중소기업 및 혁신 분야 협력에 관한 MOU는 UAE의 탈석유화 시대를 향한 과정에서 한국이 파트너 역할을 하는 것을 핵심으로 담았다. 2030년까지 8000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20개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신생 기업)이 UAE에 자리잡는 것이 정부의 목표다. 정부는 이번 수출 상담이 향후 실질적인 수출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참가 기업들의 후속 상담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한 정부는 두바이 정부의 공식 미디어 채널 DMI와 한국 콘텐츠 및 소비재 기업의 현지 진출 활성화를 위한 MOU를 체결했다. 한국의 우수 콘텐츠와 기술을 발굴해 UAE 진출을 촉진하고 K-팝 등 문화행사 관련 정보를 공유하면서 UAE 진출에 활용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해외 판로와 마케팅 수단을 기대하는 중소기업스타트업이 수출 활로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UAE 비즈니스 포럼에서도 새로운 협력 프로젝트가 다수 발굴됐다. 에너지, 방산 외에도 모빌리티, 바이오, 디지털전환, 메타버스(가상세계) 등 신산업 분야의 MOU가 체결됐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수소암모니아 공동생산(한국석유공사), 수소신재생(삼성물산), 송전가스 발전(삼성물산), 재생에너지(대한이앤씨) 등의 에너지 협력과 수소 모빌리티 보급(창원시한국자동차연구원광신기계공업), 교통 기관 협력(한국교통연구원) 등의 모빌리티인프라 협력이 기틀을 다졌다. 현대중공업LIG넥스원케이테크 등은 양국의 견고한 방산 협력 관계를 확인했다. 선수현 기자 대통령이 끌고 100여개 경제사절단이 밀고첫째도 경제, 둘째도 경제, 셋째도 경제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1월 16일(현지시간) UAE 국빈 방문 기간 중 마련된 동행 경제인 만찬 간담회에서 저도 공직에 있다는 생각보단 기업 영업부서나 기획부서의 직원이라는 생각을 갖고 임하고 있다면서 경제 중심의 국정 운영 각오를 밝혔다. 윤 대통령은 우리 정부가 추구하는 경제는 기업 중심, 시장 중심이라며 기업 혼자 뚫기 어려운 시장을 정부가 나서서 함께 뚫어내는 것이 진정으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억지로 늘리는 재정으로 만드는 고용, 투쟁해서 만드는 임금 인상이 아니라 기업이 수익을 창출해 저절로 일자리가 생기고 임금도 올라가는 올바른 순환을 이뤄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UAE 순방은 세일즈 외교 총력전으로 표현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성과는 대한민국 정부기업, 즉 팀코리아가 쌓아온 신뢰가 무르익은 덕분이라는 평가다. 100여 개 기업으로 구성된 대규모 경제사절단이 동행한 이유기도 하다. 만찬 간담회에는 정부 관계자 외에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허용수 GS에너지 사장,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 등이 참석했다. 윤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는 만찬 행사가 시작되기 전 입구에서 경제인들을 일일이 맞이하며 한 사람 한 사람 인사를 나눴다. UAE가 한국에 3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결정을 발표한 것과 관련해 윤 대통령은 모하메드 대통령이 어떤 상황에서도 약속을 지키는 대한민국,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계약을 이행하는 한국 기업을 언급했다며 경제인 여러분께서 일궈낸 성과라고 공을 돌렸다. 이어 도전과 투지로 기업을 키워온 여러분께서 공무원들을 많이 가르쳐주시고 공무원을 상대할 때 갑질이다 싶은 사안은 직접 전화해달라면서 용산에 알려주시면 즉각 조치하겠다고 답해 장내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UAE 순방 후속조치 속도민관 협력 전담조직 발족속도감 있는 후속조치가 UAE 순방 성과를 가시화하고 있다. 정부는 정부학계중소기업협회관련기업 등으로 구성된 민관 협력 전담조직(TF)을 즉시 발족함으로써 실질적인 성과 창출로 이어지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UAE 진출을 희망하는 기업을 별도 선발해 현지 지원 프로그램을 UAE 측에 요청하는 안도 진행 중이다. 한국과 UAE 간 양해각서(MOU)의 주요 의제 중 하나였던 우수 스타트업 투자 지원도 이뤄진다. 양국은 UAE의 300억 달러 투자 계획을 활용해 스타트업 공동투자 등을 추진하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민관 TF는 투자유치 관련 후속조치를 적극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또 2006년부터 두바이에서 운영 중인 수출 비즈니스 인큐베이터를 글로벌비즈니스센터로 개편하고 온오프라인 기술 교류 상담회를 개최해 UAE에서 발굴한 기술 수요 기업과 혁신 기술을 보유한 국내 기업을 연계하기로 했다. 오는 2월부터는 UAE에서 이뤄진 비즈니스 상담회 성약 내용 점검에 나선다. 정부는 원전전력, 방산, 보안, 스마트시티, 스마트팜 등 조기 수출 방안을 논의할 뿐 아니라 상담회 참여기업을 방문해 애로사항을 확인하기로 했다. 디지털전환, 모빌리티, 항공우주, 부품소재 등 첨단제조 분야의 후속 간담회도 열린다. 우주방위지식재산문화 한UAE 관계 한 단계 도약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UAE 순방은 한UAE 관계를 한 단계 더 도약하게 했다. 우주협력, 방위산업, 원자력, 지식재산, 문화 등 그동안 양국이 맺은 협약을 한층 실증적이고 다방면으로 확대발전시킨 데 의의가 있다. 정부는 2017년 체결한 우주탐사와 이용에서의 협력에 관한 MOU를 개정해 우주경제 협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한국과 UAE는 2000년대 중반부터 우주 협력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왔다. 국내 위성개발 기업이 UAE 최초의 인공위성 두바이샛-1, 2호를 각각 2009년, 2012년 개발했고 한국과학기술원은 UAE 연구인력에 교육훈련을 제공한 바 있다. 최근에는 아르테미스 약정 가입국이 돼 아말(UAE 화성 탐사선)과 다누리(한국 달 탐사선) 성공 등 우주탐사에서도 큰 성과를 보였다. 현재 UAE 모하메드빈라시드우주센터(MBRSC)는 2026년 대형 달 탐사 로버를 달에 보낼 예정으로 한국천문연구원의 탑재체를 후보로 고려하고 있다. 2022년 천궁-II(M-SAM2) 계약을 체결한 바 있는 UAE는 한국과 방위산업 협력을 지속하기로 하는 내용의 MOU를 맺었다. 양국은 방위산업 및 국방기술 협력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공동 투자, 연구기술 개발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방공유도 및 공중무기체계로 수출을 확대해나가며 실질적인 방산협력 증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양국 사이의 원자력안전위원회-연방원자력규체청(FANR) 행정약정 체결로 원자력 수출 허가 절차는 간소화될 전망이다. 이번 행정약정 체결로 원자력 수출 허가 업무를 원안위와 FANR가 직접 처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핵연료 공급사업, 원전 유지보수 사업 등 수출 허가에 소요되는 시간이 최대 6개월 단축되는 효과를 보게 됐다. 지식재산 분야 협력 역시 심화된다. 양국은 2010년 관련 MOU를 맺은 후 특허 분야의 심사실무 관련 경험을 공유하고 우리나라는 특허청 전문가를 UAE에 파견해 UAE가 고품질의 특허심사 업무 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왔다. 그동안 특허심사, 정보화 중심으로 이뤄져온 협력 범위는 심화협력 MOU를 통해 ▲국가전략기술의 효과적인 개발을 위한 특허정보 분석 및 활용 노하우 공유 ▲공학자이공계 대학원생 등을 위한 지식재산 교육협력 ▲AI블록체인메타버스 등 신기술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지식재산 분야 관련 정보교환 ▲산업디자인 분야 심사협력 등의 분야로 나아갈 전망이다. 한편 문화 협력이 확대돼 K-컬처의 지도가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UAE와 영화, 음악 등 콘텐츠 분야부터 문화유산, 공예 등 전통문화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교류협력을 확대하는 내용의 MOU를 체결했다. 문학, 도서관 등 문화예술 분야의 경험과 정책도 긴밀히 공유할 계획이다. 이를 계기로 도서전 주빈국 상호교환 참가, 양국 국립도서관의 서적 교환, 예술콘텐츠 분야 인적 교류 등 다양한 문화 협력 사업이 한층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정부는 K-컬처가 제2의 중동 붐에 본격적으로 진입해 글로벌 지평을 확대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23.01.26
‘40조’ 규모 이끌어낸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 제2 중동붐 몰고오다
커버스토리 ‘40조’ 규모 이끌어낸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 제2 중동붐 몰고오다

윤석열 대통령의 새해 첫 해외 순방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의 경제 외교라고 말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1월 14일부터 21일까지 아랍에미리트(UAE)와 스위스를 거치며 6박 8일간 빼곡히 채워진 일정을 소화했다. 순방을 떠나기 전후 여러 차례 밝힌 것처럼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경제에 초점을 맞춘 일정이었다. 가장 대표적 성과는 UAE 국빈 방문에서 300억 달러(약 40조 원)의 투자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이 투자 결정은 양해각서(MOU)가 아니라 양국 정상 간 공동성명에 명기됐다. 이 공동성명은 윤 대통령과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의 1월 15일 정상회담 결과를 토대로 한 것이다. 300억 달러는 그간 UAE가 맺은 국가 간 투자협약 중 최대 규모다. 순방 기간 중 윤 대통령이 직접 본인을 두 번이나 대한민국 영업사원이라고 칭한 것도 연일 화제에 올랐다. 윤 대통령은 1월 16일 UAE 수도 아부다비의 한 호텔에서 국내 기업인과 만찬 간담회를 가지면서 처음 이 단어를 꺼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공무원들은 늘 기업에 대한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며 저도 공직에 있다는 생각보단 기업 영업 부서나 기획 부서의 직원이라는 생각을 갖고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영업사원이라고 스스로를 칭한 것이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경제사절단은 101명이다. 업종과 규모를 망라한 대규모 사절단은 정부와 팀코리아를 꾸려 세일즈 외교에 앞장섰다. 그 결과 UAE에서 48건의 MOU를 체결했다. 스위스 다보스로 이어진 순방에서도 윤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이 9년 만에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 참석한 것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세계 최대 풍력터빈 제조업체 베스타스가 3억 달러(약 4000억 원)를 투자하기로 한 것도 성과 중 하나다. 글로벌 최고경영자(CEO)와의 오찬 한국의 밤으로 이어진 행사에서는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한국 경제의 위상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이날 연설한 클라우스 슈바프 WEF 회장은 민관 협력을 보여준 훌륭한 예라며 팀코리아를 칭찬했다. 투자 협약 300억 달러, MOU 48건 체결성공적인 순방의 시작은 UAE에서부터였다. 1월 15일 윤 대통령과 모하메드 UAE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가졌다. 정상회담 결과를 반영한 공동성명은 이튿날 공개됐는데 공동성명에는 한국에 대한 UAE의 신뢰가 뚜렷이 담겼다. 양국 정상은 공동성명에 UAE 정부는 한국 경제의 견고함과 성장 가능성에 대한 신뢰에 기반해 한국의 전략적 분야에 대한 UAE 국부펀드 3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공약을 발표했다고 밝혔다. 양국은 300억 달러 투자를 구체화하기 위해 순방 기간 동안 MOU 48건을 체결했다. 공동성명에는 UAE 또는 제3국 원전 사업 공동 진출 추진 등 확대된 원전 분야 협력도 반영됐다. 이에 발맞춰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 다음날인 1월 16일 모하메드 대통령,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하얀 부총리 겸 대통령실 장관과 함께 한UAE 경제협력의 상징인 바라카 원전 3호기 가동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바라카 원전은 2009년 한국이 최초로 수주한 해외 원전이자 중동 최초 원전이다. 12호기가 상업 운전 중이며 3호기는 가동 준비를 마쳤고 4호기는 2024년에 완공된다. 원전 4호기가 모두 가동되면 바라카 원전은 UAE 전력 수요의 최대 25%를 공급하게 된다. UAE는 바라카 원전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데 신권 지폐 뒷면에 바라카 원자로 4기 전경을 각인할 정도다. 한UAE,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윤 대통령은 바라카 원전 현장에서 바라카 원전이 양국의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대표하는 큰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며 한국과 UAE 양국이 바라카의 성공을 바탕으로 힘을 모아 UAE 내 추가적인 원전 협력과 제3국 공동 진출 등 확대된 성과를 창출할 때라고 말했다. 공동성명에 명기됐듯이 양국이 원자력을 넘어 수소, 재생에너지, 탄소저장포집 등 포괄적이고 전략적인 에너지 협력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분수령이 되길 기대한다는 이야기다. UAE와는 제3국 공동 진출의 대상국으로 영국이 떠오르고 있고 소형모듈원전(SMR)이나 핵융합 기술 같은 분야에서 협력 논의도 진행 중이다. 더욱 공고해진 한UAE의 관계는 윤석열 대통령의 순방 일정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 대통령실의 전언이다. 윤 대통령의 UAE 방문은 1980년 양국이 수교한 이래 첫 국빈 방문이다. 2022년 5월 취임한 모하메드 대통령으로서는 윤 대통령이 처음으로 맞이한 국빈이었다. 양국 정상은 윤 대통령의 방문 기간에 정상회담, MOU 서명식, 국빈 오찬, 친교 만찬부터 아부다비 지속가능성 주간 개막식 등 다섯 차례나 회동하며 친교를 다졌다. 방문 기간 내내 UAE는 전례 없는 환대를 베풀며 윤 대통령을 환영했다. 일례로 UAE는 1월 15일 아부다비 대통령궁에서 이번 순방의 공식 환영식을 열었다. 환영식에는 기마병 80기, 낙타병 100기가 도열했는데 UAE가 외빈에게 낙타병을 도열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대통령실은 낙타는 사막을 함께 건너는 동반자를 의미한다고 그 뜻을 풀이했다. 1월 14일 윤 대통령이 탑승한 공군 1호기가 UAE 영공에 진입하자 UAE 공군 전투기 4대가 호위 비행한 것도 UAE 측의 환대를 보여준다. 한UAE 간 돈독해진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 UAE의 300억 달러 규모 투자다. 이 성과를 이끌어낸 데는 양국 간 긴밀한 막후 소통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2022년 말 대통령 특사로 UAE를 방문한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과 칼둔 알 무바라크 아부다비 행정청장 겸 무바달라 투자사 대표 간 핫라인이 주효한 역할을 했다. 핫라인 개설에는 모하메드 대통령이 칼둔 행정청장에게 양국 관계를 최고 수준으로 격상하기 위해 많은 성과를 도출하라고 지시한 상황이 뒷받침되기도 했다. UAE 외교부 장관, 공항 영접서 행운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다만 대통령실도 UAE 측의 투자 규모에 대해서는 사전에 전해들은 바가 없었다. 한국 측 실무진이 기대한 규모는 대략 50억~100억 달러로 UAE의 역대 최대 투자 협력인 100억 파운드(약 15조 3000억 원)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모하메드 대통령의 친동생인 압둘라 알 나하얀 외교부 장관이 윤 대통령을 공항에서 영접하며 행운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부터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이슬람권에서 행운은 극진한 예우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드물게 사용되기 때문이다. 결국 모하메드 대통령은 정상회담 현장에서 한국에 대한 300억 달러 투자를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순방 일정 내내 경제에 초점을 맞추고 움직였다. 1월 16일 경제사절단과 만찬 간담회에서 우리 정부가 추구하는 경제는 기업 중심, 시장 중심이라고 강조했다. 기업 혼자 뚫기 어려운 시장을 정부가 나서서 함께 뚫어내는 것이 진정으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며 기업이 수익을 창출해서 저절로 일자리가 생기고 임금이 저절로 올라가는 올바른 순환을 이뤄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대한민국 영업사원이라고 지칭하며 모든 외교의 초점을 경제에 두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 같은 자세를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 20분 먼저 도착해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했다. 한UAE 비즈니스 포럼에도 참석했다. 이날 포럼에는 양국 주요 기업인과 관계 부처 장관 등 320여 명이 참석했는데 이날 체결된 MOU만 23건이다. 다보스에서도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영업사원 윤석열의 세일즈는 스위스에서도 이어졌다. 1월 18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글로벌 CEO와 오찬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윤 대통령은 글로벌 기업인 여러분을 한 번 만나고 점심이라도 모시는 것이 대한민국 영업사원으로서의 도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자리를 만들었다며 한국의 대통령으로서 여러분에게 인사드리고 이 나라 대통령입니다라고 얼굴도 알려 드려야 여러분이 앞으로 한국을 방문하실 때 제 사무실에 편하게 찾아오실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경제 외교에 방점을 찍은 윤 대통령의 적극적인 자세는 다보스 시내 호텔에서 개최된 베스타스의 투자 신고식에 직접 참석한 것으로도 잘 드러났다. 베스타스는 덴마크 기업으로 풍력터빈을 제조한다. 헨리크 안데르센 베스타스 CEO는 한국에 3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 신고식에 윤 대통령이 참석한 것이다. 베스타스는 아시아태평양본부를 한국으로 옮기고 풍력터빈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한국에 새로 짓는다. 원래 신고식은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재로 열릴 전망이었지만 윤 대통령은 한국에 투자하는 기업인만은 꼭 만나고 싶다며 행사 참석을 결정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베스타스의 투자가 한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풍력발전 제조 허브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고 국내 풍력발전 보급 가속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또 하나의 수출 동력을 발굴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에 그치지 않고 저녁에 열린 한국의 밤 행사에도 참석해 2030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에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윤 대통령은 귀국 직후 태스크포스(TF)를 꾸릴 것을 지시했다. 한국과 UAE가 맺은 48건의 MOU와 계약에 대한 후속조치를 이행하는 TF다. 기획재정부산업부중소벤처기업부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가 한 팀을 꾸려 기업의 신속한 수출을 지원하고 투자성과를 창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대규모 투자의 특성상 여러 기업이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할 때는 정부 차원에서 연합체(컨소시엄)를 구성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할 전망이다. 김효정 기자 성공 순방 이끈 윤석열 대통령의 한마디 도전정신에 경의를 표하며 응원합니다.1월 16일 바라카 원전을 찾아 160여 명의 근로자를 격려하며 한 말. 윤 대통령은 근로자들과 북어떡국 식사를 함께한 자리에서 한 명 한 명 악수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러면서 여러분의 땀과 열정, 헌신이 한국과 UAE 형제 관계를 돈독하게 했다며 한UAE 관계의 출발이 바로 바라카라고 강조했다. 슈크란 자질란.(아랍어 대단히 감사하다)1월 16일 열린 한UAE 비즈니스 포럼 연설에서 마지막으로 한 말. 윤 대통령은 새로운 무역투자 협력 체계가 잘 작동하길 바란다며 기업인들을 향해 양국의 경제협력 중추이고 혁신을 이끄는 주역이라고 치하했다. 업고 다니겠습니다.(박수)1월 16일 열린 동행경제인과의 만찬 간담회에서 한 말. 윤 대통령은 모하메드 UAE 대통령이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계약을 이행해내고 마는 한국 기업에 깊은 인상을 받아 투자를 결정했다고 말한 것을 언급하며 정부와 기업은 한 몸이고 원팀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대한민국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역량을 펼치고 뛸 수 있도록 업고 다니겠다고 말하자 장내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야, 이건 좀 갑질이다 싶은 게 있으면 바로 알려주십시오. (웃음)1월 16일 열린 동행경제인과의 만찬 간담회에서 한 말. 윤 대통령이 농담을 하자 참석자들은 웃음을 터트렸는데 윤 대통령은 늘 도전과 투지로 기업을 키워온 여러분들께서 공무원들 좀 많이 가르쳐달라고 덧붙였다. 격려사를 마무리하면서는 여러분의 성공이 곧 우리나라의 성공이고 국민 모두가 잘 사는 길이라며 허리를 굽혀 감사 인사를 했다. 벌써? 조금 더 하시죠.1월 18일 열린 글로벌 CEO와 오찬 간담회에 앞서 글로벌 CEO와 환담을 나누다 한 말. 윤 대통령은 반갑게 악수하고 포옹하며 CEO를 맞이했다. 공식일정 시각이 다가오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자리를 정리했고 윤 대통령이 아쉽다는 듯 이와 같이 반응했다. 대한민국은 열려 있고 제 집무실도 항상 열려 있습니다.1월 18일 열린 글로벌 CEO와 오찬 간담회 마무리 발언. 이날 오찬은 예정 시간을 넘겨 열정적으로 진행됐다. 윤 대통령은 글로벌 CEO와 자주 만나자며 이와 같이 말했다.

2023.01.26
이 땅의 모든 아버지의 이름으로 ‘학교폭력’ 없는 세상을 위해
K-피플 이 땅의 모든 아버지의 이름으로 ‘학교폭력’ 없는 세상을 위해

학교폭력에 맞서 28년, 김종기 푸른나무재단 명예이사장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에서 2022년 12월 30일 공개된 드라마 더 글로리는 넷플릭스 글로벌 비영어권 TV쇼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흥행하고 있다. 청소년 시절 학교폭력 피해를 입었던 주인공이 성인이 돼 가해자들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의 이 드라마는 흥미진진한 내용만큼이나 끔찍하게 묘사된 학교폭력 피해 장면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드라마를 계기로 학교폭력 문제가 화두에 오르면서 다시 주목받는 사람이 있다. 1995년부터 학교폭력 예방과 피해 지원활동을 펼쳐온 김종기 푸른나무재단 명예이사장이다. 김 이사장은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하 청예단)으로 시작한 푸른나무재단을 설립한 당사자다. 아들 대현이가 학교폭력 피해를 입고 세상을 떠난 해에 학교폭력을 근절하고자 나선 것이 시작이었다. 김 이사장과 아들 대현이의 이야기는 여러 매체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김 이사장이 2022년 4월 TV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와 털어놓은 이야기는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김 이사장은 이전에도 2019년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면서 이름을 알렸지만 이 방송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며 학교폭력 문제를 직접 인식시켰다. 김 이사장의 방송 장면이 담긴 유튜브 영상은 조회 수가 360만 회에 달한다. 1월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청예단빌딩 푸른나무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김종기 이사장에게 그날의 일을 다시 묻지는 않았다. 이미 수십 차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되풀이된 이야기거니와 27년 동안 곱씹어왔을 일을 다시 한 번 들출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김 이사장이 쓴 책 아버지의 이름으로에서 대신 상처를 읽을 수 있다. 대현이가 세상을 등진 날은 기업 임원으로 승승장구하던 김 이사장이 중국 베이징으로 출장을 갔을 때 있었던 일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몇 달을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대현이는 두 번 몸을 던졌다. 한 번은 주차된 차 위로 떨어져 목숨을 구했지만 피를 흘리며 다시 창문 앞에 섰다. 처절한 슬픔에 시달리던 김 이사장에게 찾아온 질문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왜 대현이가 죽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었다. 친구들에게 인기 있는 모범생이던 대현이가 사실은 학교폭력의 피해를 입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시간이 좀 지난 후의 일이다. 대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폭력으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상황과 정도를 정확하게 알진 못했다. 그저 운이 나빠서 학교 주변 불량배들에게 피해를 입은 정도라고 알고 있었다. 대현이가 집에 오는 길에 깡패들을 만났다고 해서 정말 그런 줄만 알았다. 한 번은 얼굴에 상처가 나고 옷과 가방이 심하게 더러워지고 안경까지 망가져 아이를 데리고 근처 경찰서에 간 적도 있었다. 그러나 대현이의 상처는 불량배가 툭툭 시비를 건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진이라 불리는 아이들이 있었고 그 학생들이 함께 대현이를 수시로 불러내 폭력을 가했다는 것이다. 나와 아내는 전혀 짐작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내용이었다. 김종기 이사장은 슬픔과 분노를 안고 가해자 학생 무리를 한 명 한 명 만났다. 가해자 학생들을 결국은 용서했다. 어떻게 가능했나?용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당시에는 사실 포기, 회피에 가까운 심정이었다. 가해자들을 만났는데 그냥 아이들이었다. 갑자기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손을 떨면서 반성문을 쓰는 모습을 보면서 측은지심까지 들었다. 가해자들이 대학생이 됐을 무렵 한 소식을 전해들었다. 무리의 짱이라고 일컬어지던, 대현이를 가장 괴롭혔던 학생이 자살했다는 얘기였다. 왜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기에는 결국 이 일과 연관된 괴로움 때문일 것 같았다. 그때 폭력은 피해자에게도 평생 남을 상처지만 가해자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해자를 반쯤 포기하듯이 용서하고 나서도 김종기 이사장이 학교폭력을 근절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게 된 사건이 있었다. 김 이사장은 가해자들이 다시 대현이의 친구 두 명을 불러 심한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다. 김 이사장의 머릿속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당시는 학교폭력이라는 단어도 존재하지 않을 때였다. 김 이사장은 기자들을 만나고 학교폭력 문제를 공론화했다. 결국 그해 연말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학교폭력 근절을 지시했다. 학교폭력 문제가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김 이사장은 대현이의 죽음으로 설립한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시민의 모임을 청예단으로 확장시켰다. 피해를 딛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마음을 먹기까지 다양한 동기가 작동했을 텐데.언론 인터뷰를 하고 사건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피해자와 시민이 연락해왔다. 내가 던진 화두에 세상이 그만한 반응을 보일 줄 몰랐기 때문에 놀라웠다. 만약 반응이 없었다면 나는 더 절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고 나는 책임감을 느꼈다. 체계적인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폭력을 예방하고 피해자를 상담하는 일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관련 법률이나 제도도 당연히 없었다. 학교폭력이라는 단어도 못쓰게 해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라는 이름을 내세워야 했다. 거기서부터 예방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 피해상담은 누가 어떻게 하고 화해중재 방법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 27년 동안 만들었다. 그 노력이 빛을 발해 학교폭력 피해 경험률은 줄었다.확실히 성과가 있었다. 학교폭력은 줄어들었고 제도도 마련됐다. 그러나 폭력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지금은 더 교묘한 방법으로 더 악랄하게 진행되고 있다. 사이버폭력이 대표적이다. 직접 주먹을 휘두르는 대신 키보드로 상처를 주는 사이버폭력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세상이 변했고 폭력의 양상도 변하고 있다. 폭력 예방교육과 대처방안에도 변화가 생겼을 것 같다.사이버폭력에 대한 교육과 대처가 더 중심이 됐다. 시민성을 키우고 청소년의 역량을 기르면서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도 진행 중이다. 학교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는 데도 많은 역할을 했다.그동안 안타까운 사연을 정말 많이 접했다. 대다수는 학교폭력으로 학생 한 명의 인생만 무너지지 않았다. 온 가족이 피해를 입고 주변 사람들까지 영향을 받는다. 학교폭력의 피해가 결국은 온 사회에 걸쳐 영향을 주는 독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데 많은 노력을 했다. 대중문화 분야를 중심으로 유명인이 사실은 학교폭력 가해자였다는 폭로도 줄을 잇고 있다.이런 폭로가 암시하는 바는 분명하다. 폭력 피해는 평생을 간다는 것, 가해사실 역시 평생에 걸쳐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뒤늦은 폭로는 피해자들의 절규다. 나는 여전히 상처받고 있다는, 어떻게든 치유받고 싶다는 외침이다. 동시에 가해사실은 아무리 번듯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면서 예방교육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학교폭력을 예방하려면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원인을 분석해봐야 할 것 같다.결국은 어른들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아이들은 폭력에 노출돼 있다. 자녀에게 때리고 와도 되지만 맞고는 오지 말아라라는 얘기를 흔히 한다. 맞든 때리든 이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폭력을 용인한다는 것이다. 맞아도 안되지만 때리는 것은 더욱 안된다. 왜 친구와 때리거나 맞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나. 자녀에게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 맞고 때리는 것을 전제로 하는 세상을 가르치고 있다는 얘기다.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에서는 학교폭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학교폭력이라는 것이 없어질 수 있는 문제인가?폭력은 사실 없어지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최대한 예방할 수 있다. 갈등을 중재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일을 할 수 있다. 맨 처음 내가 학교폭력이라는 화두를 꺼냈을 때 학교폭력 피해율은 20%였다. 그러나 2021년 학교폭력 피해율은 7%로 크게 줄었다. 피해만 줄어든 것이 아니라 피해를 치유하는 역량도 늘었다. 학교폭력을 해결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치유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사과를 받는 일이다.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를 받아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피해자가 바라는 일이다. 이걸 실현할 수 있는 상담 프로그램과 중재 기술을 발전시켰고 성공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시작점은 교육이다. 학교와 가정에서 올바르게 교육해야 한다. 단지 지식을 주입하고 학력을 늘리는 교육이 아니라 시민성을 기르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어우러져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보통 지(知)덕(德)체(體)라고 하는데 체덕지로 바뀌어야 한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마음이 깃들어야 올바른 지식인이 만들어질 수 있다.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 필요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회한에 젖을 때도 있을 것 같은데.대현이가 죽고 나서 30년 가까이 이런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왔다. 내 아이는 살리지 못했지만 많은 아이들을 구했으니 이제는 대현이가 나를 보고 웃어줬으면 좋겠다. 김효정 기자 사이버폭력 예방 푸른코끼리가 나섰다2020년 교육부는 푸른나무재단,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삼성그룹과 청소년 사이버폭력 예방교육 사업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예방교육 사업의 이름은 사이버 정글 가디언 푸른코끼리, 폭력적인 사이버 환경을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사이버폭력 예방 시스템을 확산시키자는 목적을 갖고 추진됐다. 푸른코끼리는 사이버폭력으로 상처받고 소외된 이웃을 돕는 캐릭터다. 푸른코끼리 사업은 크게 세 가지 단계로 진행된다. 예방교육 사업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는 전국 사이버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폭력예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하고 운영한다. 그리고 예방교육을 펼치고 피해자를 상담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일례로 성공적으로 사이버폭력을 예방하고 있는 인천새말초등학교의 경우 푸른코끼리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변화를 겪었다. 이 학교에서는 사이버폭력이 무엇인지부터 배우기 시작해 교육시간에 배운 덕목을 실천하고 사이버폭력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 학생의 역량을 길렀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었다는 게 학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사이버폭력 검사도구를 개발하고 예방교육의 효과성을 분석하고 있는 박종효 건국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사이버 예방교육을 받고 난 이후 사이버폭력 피해 경험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사이버폭력을 목격했을 때 피해학생을 돕거나 사이버폭력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어 행동도 늘어났다. 박 교수는 사이버폭력은 피해학생과 가족까지 모두 피폐하게 만드는 사회문제라며 사전에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2023.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