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TS의 <퍼미션 투 댄스>는 펜데믹 와중에 좌절을 느끼고 희망을 갈망하는 전 세계 모든 사람을 위한 보편적 위로의 곡이다.│유튜브
방탄소년단(BTS)이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총 10주간 1위를 지키며 믿을 수 없는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BTS 열풍은 단순히 미국 시장에서 정상에 오른 것이 아니라 몇 년째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다. 무엇보다 팝의 본고장인 미국 시장에서 안착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약 20년간 이어온 소위 ‘한류’에 있어서 가장 기념비적인 성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BTS의 성공에 대해 의문을 품는 목소리도 있다. 그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다이너마이트(Dynamite)〉 〈버터(Butter)〉 그리고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 같은 영어 곡의 미국 시장 성공을 한류나 K-팝의 성공이라고 볼 수 있냐는 물음이다. 더 나아가 이런 음악에서 우리가 ‘한국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냐는 의문도 있다. K-팝에서 한국성이란 무엇일까? 그런 것이 있기는 할까?
대중 음악인으로서 ‘한국성’ 고민
서구에서 유래한 대중음악의 어떤 것이 한국적인지는 어려운 문제다. 한때는 우리 고유의 선율이나 음계 탐구로 접근하기도 했다. 서구의 팝이나 록의 문법이나 양식을 따르되 우리나라의 전통 음계나 선율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신중현은 오음계의 선율을 록에 적용했고 서태지나 신해철 등은 국악기를 적극 활용해 실험적인 편곡을 선보였다. 물론 김수철처럼 대중음악과 국악의 경계를 무너뜨려 완전히 새로운 예술을 창조한 사례도 있다. 어느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모두 대중 음악인으로서 ‘한국성’을 제각각 고민했던 사례라 하겠다.
퓨전 국악이나 조선 팝 같은 새로운 흐름이 아이돌 위주의 K-팝에 대안이 된다고 보는 쪽도 있다. 국악이나 국악기에 기반을 두지만 그 어떤 장르에 종속되길 거부하는 초월적 음악성을 선보였던 잠비나이나 국악을 우리나라를 넘어 새로운 세계 음악의 하나로 낯설게 바라봤던 두번째달 등은 분명 가능성을 보여줬다. 판소리를 재해석해 키치적인(대중 취미적인) 재미를 더하고 퍼포먼스로서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인 이날치의 <범 내려 온다>는 K-팝 시대에 한국성이란 무엇인지 또 하나의 유쾌한 대답이었다.
최근에는 서도밴드나 비단 등 국악을 현대 감각으로 재해석해 K-팝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다가가려는 시도를 꾸준히 하면서 하나의 장르로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들의 잠재적 청자가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닌 전 세계에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우리 전통음악을 계승 발전시킨다는 의미를 넘어 세련된 음악으로서 국악이 가진 잠재력을 발견하려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와보자. BTS의 음악은 한국적인가? 물론 지금까지 BTS가 보여준 음악에 퓨전 국악이나 조선 팝과 유사한 접근 방식을 보여준 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악의 리듬과 악기를 활용하고 뮤직 비디오에 전통 문양과 건축을 비롯해 다양한 상징이 등장하는 <아이돌(IDOL)>은 K-팝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한국적’인 곡이다. 2018년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삼고무, 탈춤 등 전통음악으로 재해석한 <아이돌>의 공연은 K-팝 역사에 길이 남을 명연이었다.
BTS 멤버 슈가는 조선의 군례악인 대취타를 힙합과 결합시킨 <대취타>를 발표했고 이는 BTS가 우리나라 그룹으로서 정체성을 의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사례다. 하지만 우리나라 출신으로 세계적인 그룹으로 성장한 BTS가 가진 ‘한국성’이 단순히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재해석한 것에만 있는 것일까?
보편적인 인류애에 관한 노래
조선시대 유행한 전통이나 옛 선조들의 미학만큼이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생각과 철학 역시 한국적인 것이다. 세계 시민으로 보편타당한 현대인으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각이나 경험은 의식적으로 우리나라임을 강조하지 않아도 지극히 한국적일 수밖에 없다. 영화 〈기생충〉이 현대 우리나라 사회의 모순을, 〈미나리〉가 미국 내 한국 이민자들의 삶을 각각 인류의 보편타당한 관심사로 끌어올린 것을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BTS가 가진 역할도 다르지 않다.
BTS의 〈퍼미션 투 댄스〉는 이전처럼 한국성을 의식적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한국적인 K-팝이라 불러 마땅하다. 코로나19 와중에 좌절을 느끼고 희망을 갈망하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전 세계 모든 사람을 위한 보편적인 위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용된 언어가 영어이지만 곡의 내용은 지극히 한국적인 경험이며 동시에 보편적인 현대인의 경험이다. 아니, 정말 그 같은 구분이 필요한 것일까?
더 중요한 것은 그 보편적인 인류애에 관한 노래를 서구의 아티스트가 아닌 우리나라의 BTS가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오래전부터 평화와 화합을 사랑한 우리에게 이보다 더 ‘한국적’인 메시지가 또 있을까?

김영대 음악평론가이자 문화연구자_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K-팝 연구로 음악학(Ethnomusicology)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