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TS는 영어 곡 ‘버터’로 빌보드 차트 7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공식 기록을 세우며 미국 시장에 큰 영향을 끼쳤다│유튜브
방탄소년단(BTS)이 K-팝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2020년에 ‘다이너마이트(Dynamite)’와 ‘라이프 고즈 온(Life Goes On)’ 두 곡으로 빌보드 핫(HOT) 100 정상을 차지한 BTS는 2021년 또 한 곡의 여름용 댄스음악인 ‘버터(Butter)’로 정상에 올랐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K-팝뿐 아니라 미국 팝 음악의 역사를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버터는 63년에 달하는 빌보드 차트 역사상 1100여 곡밖에 되지 않은 1위곡 중 하나며 5주 이상 1위를 차지한 196곡 중 하나로 공식 기록됐다. 차트에 1위로 데뷔한 것 자체도 희귀한 기록이지만 그 이후 내리 7주 1위를 차지한 곡은 역사상 채 열 곡이 되지 않는다. 그룹으로서 이 같은 대기록을 세운 것은 역사상 두 번째로 그보다 더 오랜 연속 1위 기록을 세운 사례는 1995년에 발표된 머라이어 캐리와 보이즈 투 맨의 듀엣곡인 ‘원 스윗 데이(One Sweet Day)’ 하나뿐이다.
K-팝 역사상 손에 꼽을 만한 쾌거이고 팝 음악의 지형을 바꾼 거대한 전환이지만 이에 대한 의심과 논란의 눈초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중 하나는 ‘버터’의 기록 행진이 미국 현지에서 인기를 온전히 반영 하냐는 의문이다. HOT 100은 여러 지표를 더해 순위를 산출한다. 라디오 방송 횟수, 음원 다운로드와 실시간 재생(스트리밍) 횟수, 뮤직 비디오 조회수 그리고 실물 싱글 음반 판매량 등을 두루 포함한다. 쉽게 말해 HOT 100은 어떤 특정한 수치만으로 정상을 정복할 수 없는 차트다.
여기서 의견이 갈린다. ‘버터’를 포함한 BTS 곡들의 인기는 라디오 방송 횟수나 스트리밍 횟수에 비해 다운로드, 실물 판매량 등이 월등이 높다는 것이다. 팬들이 음반을 구입하고 다양한 플랫폼을 넘나들며 다운로드를 한 것이 뒷받침이 되는 성적을 순수한 인기라고 볼 수 있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답은 너무 단순하게도 ‘그렇다’이다.
인기의 기준, 팬들의 성원과 지지
과연 대중음악에서 인기란 무엇인가? 쉽게 말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강력한 지지를 받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그중 하나는 물론 인지도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냐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이 인지도는 대중의 자발적인 발견보다 미디어와 음악산업의 전략을 통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것이 라디오다. 미국 라디오의 선곡 시스템은 청취자들의 취향이나 신청이 아니라 방송국 측의 판단으로 만들어진 ‘선곡표’를 통해 유지된다. 그리고 이에 가장 큰 힘을 미치는 것은 음반사 및 프로모터가 주도하는 홍보 전략이다. 이들은 청취자들에게 특정 곡을 들을 것을 권유(혹은 강요)하며 이를 통해 대중적인 취향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 같은 순환구조로 대중음악의 인기가 만들어진다.
인기를 규정하는 또 하나의 기준은 응당 아티스트를 향한 팬들의 성원과 지지다. 어떤 곡이 히트했다는 것은 그 곡을 부른 아티스트가 인기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곡이 인기가 있으나 가수가 인기가 없는 경우 보통 ‘깜짝 스타’가 되기 쉽다. 곡과 가수 모두 인기 있어야 꾸준하고도 폭넓은 대중성을 확보한다. 유명세가 있는 가수가 히트곡을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작가주의 뮤지션들의 경우가 이에 가깝다.
미국 주류시장에서 BTS의 경우 과거에는 팬들의 열성적인 성원에 비해 대중적인 인지도가 떨어지는 편이었는데 이는 그들이 동양 사람이라는 것과 영어 곡으로 활동하지 않아 라디오 방송이나 스트리밍 등에서 현지 가수와 경쟁하기 어려웠던 점이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최근 들어 더욱 팬덤 중요성 강조
하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영어 곡을 발표하면서 그 격차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여전히 라디오 등에서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지만 그 역시 소위 ‘탑 40’이라고 하는 상위권 가수들과 비교해 크게 모자람이 없는 수준이며 다운로드나 판매량은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어느 기준을 갖다 대더라도 충분히 인기곡 혹은 인기가수로 분류할 수 있는 조건이며 이 부분을 미국 현지 언론도 대체로 인정하고 있다. 굳이 어떤 특정한 조건으로 걸러내 이것을 정당한 인기가 아니라고 볼 이유가 없다.
대중음악에서 인기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인다. 21세기 이후 음악 전문 매체나 라디오 등 전통 매체들이 영향력을 잃고 있는 대신 유튜브 등 누리소통망(SNS)으로 대중은 개인 취향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누구나 알고 따라 부르는 대중음악의 숫자는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고 있으며 그 조차도 특정 아티스트 몇몇이 독점하고 있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지만 최근에는 더욱 팬덤(열성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저관여층 사이에서 보편적인 인지도 대신 고관여층을 중심으로 실질적으로 구매력을 행사하는 거대한 팬덤을 거느린 아티스트가 차트에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으며 이는 비단 K-팝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 시장에서 BTS의 인기도 바로 이런 변화의 맥락을 통해 해석할 때 의문이 자연스레 풀린다.

김영대 음악평론가이자 문화연구자_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K-팝 연구로 음악학(Ethnomusicology)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