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한류가 시작되면서 ‘한류 사천왕’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한류 사천왕은 당시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던 한류 스타 4명을 칭하는 말이다. 일본에서만 통용되는 단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언론 매체가 일본 내 한류 열풍을 소개하며 인용해 우리에게도 낯선 단어는 아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20여 년 동안 많은 한류 사천왕이 등장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시간이 흐르면서 구성원이 자연스럽게 바뀌기도 하지만 누가 선정하느냐에 따라 미묘하게 차이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거창한 시상식처럼 엄정한 심사를 거쳐 칭호를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선정하는 이의 주관에 의해 정해지다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보통 상위 두세 명 정도는 거의 바뀌지 않고 마지막 한 명 정도가 ‘팬심’으로 밀어붙여 바뀌는 정도다.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초대 한류 사천왕을 살펴보면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 보더라도 면면이 화려하다. 2003년 우리나라 드라마 최초로 일본 공영방송
에서 방영돼 지금의 한류 붐을 만든 <겨울연가>를 통해 최고의 한류 스타로 떠오른 배용준을 필두로 <겨울연가>의 전작인 <가을동화>의 원빈, <올인>의 이병헌, 그리고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로 주목을 받았던 장동건이 바로 원조 한류 사천왕이다.
배용준·원빈·이병헌·장동건 ‘초대 한류 사천왕’
이들이 만든 한류 붐은 2000년대 중반 들어서도 한류가 잠깐의 유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듯 더욱 거세졌다. 이른바 한류2.0이라 불린 2차 한류 붐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원조 사천왕의 여전한 인기 속에 배용준을 사천왕보다 한 단계 위인 ‘한류신’으로 올리고 그가 빠진 자리에 권상우나 송승헌을 넣자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때부터 한류 사천왕의 면면은 그때그때 출연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흥행 여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2008년 드라마 <꽃보다 남자>가 대히트를 치자 주인공이었던 이민호와 김현중이 새롭게 한류 사천왕의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들과 함께 이미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인기를 끌고 있었던 소지섭과 2009년 <미남이시네요>를 통해 이름을 알린 장근석 등 젊은 한류스타를 모아 ‘소(小) 한류 사천왕’이라 부르기도 했다.
2011년 이후 한일 관계 경색으로 일본 내 K-드라마 방송이 줄면서 한류 침체기가 찾아왔다. 그럼에도 한류 사천왕에 대한 인기는 여전했다. 다만 시대가 흐른 만큼 원조가 아닌 새로운 사천왕이 거론되기 시작했다는 게 달라진 점이다. 원조와 구별하기 위해 이들을 ‘신 한류 사천왕’이라 불렀다. 이민호와 김우빈, 김수현, 이종석 등 젊은 연기파 배우들을 중심으로 한 신 한류 사천왕은 원조만큼 폭넓은 대중적 지지를 얻지는 못했지만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여기에 송중기, 공유, 박보검 등도 출연한 드라마의 일본 내 방영과 함께 큰 인기를 누리면서 신 한류 사천왕은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왔다.
2020년부터 4차 한류 붐이 일어나면서 이제는 새로운 한류 사천왕이 주목을 받고 있다. <사랑의 불시착>으로 4차 한류 붐을 일으킨 현빈, <이태원 클라쓰>로 강한 인상을 남긴 박서준,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김수현, <더 킹:영원의 군주>로 돌아온 이민호가 바로 그 주역들이다. 이들 신 한류 사천왕은 코로나19 여파로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지만 각종 잡지의 표지모델을 장식하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일본 사회에 많은 영향 끼치는 한류 사천왕
일본 문화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한류 사천왕을 중심으로 한 한류 스타들의 이미지나 드라마 캐릭터는 일본 사회, 특히 젊은 층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일본의 한 자동차 전문 잡지는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의 흥행으로 극중 등장하는 자동차에 대한 관심도가 일본 내에서 크게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특히 역대 사천왕의 이미지가 대부분 당대의 인기있는 남성상으로 반영돼 간다는 점도 흥미롭다. <겨울연가> 방영 당시엔 배용준의 극중 순애적이며 헌신적인 모습이 일본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지금은 현빈이나 김수현의 극중 이미지가 많은 여성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이 때문에 시대 흐름에 민감한 광고 제작자들에게 한류 사천왕은 현재 유행하는 트렌드를 한번에 파악할 수 있는 척도로 애용된다. 한류 사천왕의 면면만 분석해도 주요 한류 팬 층인 20~40대 여성들의 소비 행동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류 사천왕은 지금 막 한류에 매료된 ‘입문자’들에게는 좋은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한류 사천왕의 출연작 대부분이 일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기에 많은 한류 입문자들에게는 K-드라마의 바다를 순조롭게 항해할 수 있는 나침반 역할도 한다. 앞으로 더 많은 K-콘텐츠를 통해 더 많은 한류 스타들이 배출돼 전 세계 한류 팬들의 가슴을 뛰게 해주기를 기대해본다.
문동열 콘텐츠산업 칼럼니스트_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기업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제작을 해왔다. 현재 콘텐츠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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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