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MAMA> 올해의 가수상 방탄소년단(BTS)│Mnet
“한류 문화 종주국으로 앵커(닻)를 내리려면 오스카상, 그래미상 같은 시상식을 만들어야 한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취임 일성이다. 비슷한 주장을 10여 년째 해온 필자로서는 반갑기 그지없는 말이다. 황 장관은 또한 “민간이 운영하고 정부가 돕는” 방법의 지원을 언급하는가 하면 “단순한 정부 지원이 아닌 실제 플레이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귀 기울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부가 실제로 문화인들이 주장하는 것들에 비로소 귀 기울이고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비록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계획일지라도 우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황 장관이 언급한 ‘한국의 그래미’는 그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각각의 단체나 기업이 주도하는 많은 시상식이 해마다 열리며 저마다 ‘한국의 그래미’라는 기치를 내걸고 각개약진 중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1999년 만들어진 케이블방송 엠넷(Mnet) 주도의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MAMA)’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홍콩, 일본, 한국을 오가며 열리는 국제적인 규모, 한류 K-팝 스타가 총출동하는 어마어마한 출연진, 수많은 ‘레전드’ 공연을 남긴 전통과 인지도 면에서 소위 ‘한류 그래미’라는 개념에 근접해 있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나름의 한계도 명확하다. 응당 한국 대중음악 산업의 전반을 포괄해야 할 음악상이 K-팝을 지나치게 ‘아이돌’이라는 개념에서 접근한 나머지 주류 산업 중심으로 국한돼 있다는 점이 그렇다. 매년 수많은 부문이 새롭게 신설되지만 정확히 그 변별점을 알 수 없는 상이 많고 종종 ‘참가상’에 가까운 취지로 가수들에게 나눠준다는 점도 방송국이 주도하는 시상식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MAMA)’와 ‘한국대중음악상’
이와 정반대 지점에 ‘한국대중음악상’이 놓여 있다. 음악 비평가와 저널리스트, 전문 기자 등이 주축을 이룬 선정위원회가 주관하는 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은 2004년 처음으로 제정돼 최근 18회 시상식에 이르렀는데 한국에서는 그 역사가 제법 긴 편에 속한다. MAMA와 달리 주류와 비주류의 구분을 두지 않고 철저히 음악적인 성취로만 후보를 선정하고 상을 준다는 점에서 현재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음악 시상식 중 가장 ‘그래미’ 취지에 가깝다고도 말할 수 있다.
정해진 후원사나 주관 방송사가 없고 기획사의 입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도 한대음만이 가진 중요한 장점이자 변별점이다. 전문 평론가들을 장르별로 배치해 심사할 뿐 아니라 순위표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남기지 못한, 혹은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는 음악이라 할지라도 음악적 완성도만을 기준으로 수상자로 선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발굴’ 혹은 ‘기록(아카이빙)’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한대음 역시 한국의 그래미로 불리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선정위원 집단이 작다는 것, 그 구성이 지나치게 비평가 위주로 돼 있어 산업 주체들의 의견이나 평가가 반영되지 못한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한대음은 미국의 각종 영화평론가협회상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데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음악산업 종사자들이 주도하는 그래미와는 이 부분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정부 역할은 돈은 주되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 것
한국의 그래미는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서 응당 그래미 어워드를 직접 본따르기(벤치마킹)하거나 여러 요소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기업의 자본과 방송국의 입김, 기획사의 영향력에서 완벽히 자유로워야 하지만 그게 어렵다면 미국의 리코딩 아카데미와 유사한 조직을 만들어 다양한 산업의 주체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되 비평가와 연구자를 망라한 각종 전문 평단이 큰 줄기를 이끌게 하면서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충분한 경력과 탁월한 안목을 갖춘 비평가 중심의 심사위원단을 까다로운 기준을 거쳐 확보할 수 있다면 이들에게 장르 구분이나 예비 후보 선정과 같은 모든 업무를 담당하게 해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선정과 실제 투표에는 프로듀서(PD), 작사·작곡가, 엔지니어, 뮤지션 등 ‘인사이더(내부 관계자)’ 혹은 ‘플레이어(연주자·가수)’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해 이것이 실제로 한국 대중음악에 참여하는 각 주체가 인정하는 시상식이라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다면 정부의 역할은 뭘까? 간단히 말해 돈은 주되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지만 지속성을 갖도록 지속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하나 자율성을 보장해 전문가들이 눈치 보지 않고 창의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분명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류와 K-팝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해 마냥 미룰 수는 없는 중요 과제 중 하나다. 종종 형식은 내용을 결정하고 음악사의 발전에 있어서 시상식이 얼마나 중요한 형식인지는 팝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대 음악평론가이자 문화연구자_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K-팝에 대한 연구로 음악학(Ethnomusicology)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