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서 해마다 4월이 오면 매스컴에 등장하는 나무가 있습니다. 바로 왕벚나무입니다. 그 요지는 “일본의 나라꽃인 소메에요시노(染井吉野)는 알고 보면 제주도에서 유래한 우리나라 나무”라는 것입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 유전자 분석 연구 결과까지 동원하고 있으니 일반인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식물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이 주장에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없지 않답니다. 과연 일본의 소메에요시노와 제주도에 자생하는 야생의 왕벚나무는 기원이 같은 나무일까요? 오늘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일본의 나라꽃인 소메에요시노의 기원설은 크게 야생교잡종설, 원예품종설, 제주도설 등 3가지가 있습니다. 최근 들어 일본에서는 오래전 벚나무류와 올벚나무 사이에서 태어난 야생교잡종이 긴 시간 동안 형질을 개량해 와서 지금의 소메에요시노가 되었다는 원예품종설이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제주도의 왕벚나무는 한라산에 자생하는 벚나무와 올벚나무의 야생교잡종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소메에요시노와 제주도의 왕벚나무는 형태상으로 보면 유사합니다. 이런 점을 근거로 제주도 기원설이 등장한 것이겠지만, 이 현상에 대해서는 생물이 진화할 때 생물집단의 가까운 종들 사이에서 비슷한 특성이 발달하는 평행진화(Parallel evolution)의 시각에서 설명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현재 우리 주변에서 가로수나 풍치수로 심는 왕벚나무라는 식물은 제주도 기원의 왕벚나무가 아니라 일본에서 유래한 소메에요시노 계열의 원예품종들입니다.
예컨대 지금으로서는 소메에요시노의 제주도 기원설을 섣불리 속단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소메에요시노와 왕벚나무의 관계를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해서는 보다 객관적이고 냉정한 연구가 필요할 것입니다.
민족주의나 국수주의가 학문 연구에 감정적으로 개입되어서는 곤란하겠지요. 자연을 대하면서 사람들의 인위적인 국경을 개입시켜 해석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일 수 있습니다.
현재 제주도에서는 봉개동과 신례리 2곳의 왕벚나무 자생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곳의 나무들을 직접 보면 주변에서 흔하게 보는 원예종과는 사뭇 다른 야성의 품격을 느끼게 해 줍니다. 비록 왕벚나무의 기원이나 전파의 역사가 흥미로운 화젯거리이긴 합니다만, 그 무엇보다도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이 기나긴 세월의 담금질을 통해 왕벚나무라는 빼어난 나무를 빚어냈다는 점을 모두가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소메에요시노가 아닌 제주도의 왕벚나무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합니다.
글·김태영(자연생태연구가·<한국의 나무> 공저자) 2014.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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