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킴 라일락’을 아십니까? 이 나무는 수많은 라일락 원예품종들 중에서도 으뜸가는 품종의 하나로 손꼽히는데, 한국에서도 조경용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답니다. 이 ‘미스 킴’이란 이름이 우리에게는 꽤 친숙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이 식물의 기원이 다름아닌 한국이기 때문이랍니다. 이 나무는 예전에 한국에서 근무하던 어느 미국인 원예가가 서울의 북한산에서 자라던 야생의 나무 종자를 채집해서 미국으로 가져간 다음 품종을 개량해 만들어졌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국내 매스컴이 억울하게 외국에 도둑맞은 한국의 식물자원에 대해 기획 보도를 할 때면 ‘미스 킴 라일락’이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곤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볼 게 있습니다. 국내 자원의 해외 유출은 개탄하면서 문익점이 중국 원나라에 갔다 돌아오면서 붓두껍에 목화씨를 몰래 가져왔다는 일화에 대해서는 너그럽다는 겁니다. 냉철하게 보자면 살벌한 경제 전쟁이 벌어지는 현실에서 ‘문익점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그다지 드문 일도 아닐 뿐더러 또한 이것은 식물 전파의 세계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부터 매년 되풀이되는 무익한 식물민족주의 논쟁에서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분발해 ‘미스 킴 라일락’보다 더 훌륭한 품종을 육종하면 될 일이 아니겠습니까?
다음은 ‘미스 킴 라일락’을 개량한 장본인인 미국인 엘윈 미더(Elwyn Meader) 교수가 그 경위를 직접 술회한 대목입니다.
“1947년 당시 나는 한국의 서울에서 미군정 소속 원예가로 일하고 있었다. 공휴일이었던 11월 11일 ‘재향군인의 날’을 맞아 나는 다른 동료와 함께 인근의 북한산에 올랐다. 정상부에서 나는 바위의 화강암이 갈라진 틈을 따라 주접 든 소나무와 관목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위쪽 벼랑의 갈라진 틈에 자리 잡은 관목 한 그루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틀림없이 라일락 종류였는데, 과연 이렇게 바람이 센 곳에서 아직 종자가 남아 있을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지만 주변을 샅샅이 뒤진 끝에 나는 간신히 7개의 종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1948년 귀국한 다음 나는 이 귀중한 종자들을 파종했는데, 그 중에서 5개가 한국의 산에 야생하는 모주(母株)처럼 꼿꼿한 싹을 틔웠다.
그런데 그 중 2개체는 다른 묘목들보다 크기가 다소 왜소했다. 이때 발아한 묘목들은 모두 다른 라일락 종류보다도 개화기가 다소 늦었다. 향기로운 꽃은 꽃봉오리일 때는 자주색을 띠다가 꽃이 피면서 점차 색이 옅어졌고 종래에는 희게 변했다. 유독 크기가 왜소한 두 그루의 나무들 중 하나는 암록색 잎의 가장자리가 물결처럼 구불구불해지는 특징을 보였는데, 이 나무의 잎사귀는 가을이 되자 짙은 붉은색으로 단풍이 들면서 멋진 자태를 보여주었다. 나는 이 나무에 ‘미스 킴’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한국에는 ‘미스 킴’이라는 여성 이름이 흔한데, 이들 중에는 아름다운 여성들이 많기 때문이다.”
글과 사진·김태영(자연생태연구가·<한국의 나무> 공저자 201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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