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이 밝아오는 새해를 맞아 어떤 나무를 소개하는 것이 안성맞춤일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만, 아무래도 세월의 의미를 곱씹어볼 수 있는 유서 깊은 나무가 좋지 않을까요?
메타세쿼이아가 바로 그런 나무랍니다. 전남 담양에도 유명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있는데, 흔히 메타세쿼이아를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들 말합니다. 영명(英名) ‘Dawn Redwood’나 이를 일본어로 번역한 ‘아케보노스기(曙杉·여명의 삼나무라는 의미)’라는 이름 역시 이 키다리나무의 유서 깊은 족보를 가늠케 하는 명칭들입니다만, 그 사연이 자못 극적이랍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메타세쿼이아라는 이국적인 이름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요? ‘메타세쿼이아’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적는 이 식물의 학명인 Metasequoia glyptostroboides 중에서 속명(屬名)만을 따서 우리말 발음대로 표기한 것이랍니다. 사실 이런 식으로 식물의 이름을 쓰게 되면 혼동의 소지가 있는데,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재로선 메타세쿼이아속(屬) 안에서 전 세계적으로 생존해 있는 식물은 딱 한 종뿐이므로 크게 문제삼지 않는 것입니다.
메타세쿼이아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키 시게루(三木 茂)라는 일본의 고식물학자가 식물 화석 표본을 관찰하던 중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쿼이아(Sequoia )’ ‘택소디움(Taxodium )’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중생대(Mesozoic)의 식물화석들 중 일부 표본에서 잎이 가지에 어긋나게 달린 점을 알아차린 겁니다. 이 종류의 식물이라면 마땅히 가지에 잎이 마주나 있어야 했거든요.
그는 이 아득한 고대의 식물을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신종(新種)으로 규정하여 학술지에 Metasequoia (‘세쿼이아보다 앞선’이란 뜻)라는 속명으로 발표하였습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메타세쿼이아는 그저 화석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수많은 멸종 식물들 중 하나에 불과했을 뿐입니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 5천킬로미터나 떨어진 중국의 서부지방에서는 마오쩌둥 휘하의 젊은 병사 하나가 땔감을 구하러 사천성 동부의 양쯔강 부근에 있는 모따오치(磨刀溪)라는 작은 마을에 갔다가 우연히 마을 사당 옆에 서 있는 낯선 나무를 보게 되었습니다. 공산당에 입당하기 전 산림과 관련된 일을 했던 이 병사는 이 나무를 신기하게 여겨 마을 사람들에게 이름을 물어보았는데, 마을 사람들이 일러준 ‘물삼나무(水杉)’라는 명칭은 그로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병사는 이듬해 봄에 나뭇잎 표본을 보내달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그 마을을 떠났지만, 이 최초의 표본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만 분실되고 말았답니다.
이 정체불명의 나무 표본은 1946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당시 베이징 생물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던 후씨엔수(胡先?·1894~1968, 중국 식물분류학의 기초를 확립한 저명한 식물학자) 박사에게 전달되었는데, 표본을 직접 본 후 박사는 자신이 읽었던 미키 박사의 1941년 논문을 기억하고는 이 식물이 논문 속에 언급된 화석종과 동일 식물임을 직감하게 됩니다. 위대한 발견의 순간이었지요. 이미 300만년 이전에 지구상에서 완전히 멸종했다고 생각했던 식물이 중국의 한 오지마을에서 버젓이 살아 숨쉬고 있었으니까요. 후 박사가 1946년 이를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마침내 전설 속의 나무 거인이 그 신비로운 모습을 현대인들에게 드러내게 됩니다.
메타세쿼이아의 발견이 갖는 의미는 마치 살아 있는 공룡이 현 시대에 발견된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메타세쿼이아를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부르는 것이랍니다.
글과 사진·김태영(자연생태연구가·<한국의 나무> 공저자) 201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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