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나그네> 속에 나오는 다섯번째 노래는 저 유명한 ‘보리수’입니다.
“성문 앞 우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꿈을 꾸었네.
가지에 희망의 말 새기어 놓고서
기쁘나 슬플 때나 찾아온 나무 밑.”
불교에서 보리수(菩提樹)란 석가모니가 그 밑에 앉아 깨달음을 얻었다는 나무를 말합니다. 국내의 유서 깊은 사찰에 가보면 간혹 대웅전 앞마당 한쪽 곁에 ‘보리수’라는 팻말을 달고 있는 나무를 볼 수 있지요.
그런데 과연 슈베르트가 노래한 보리수가 석가모니의 보리수와 같은 나무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둘은 전혀 다른 나무입니다. 그럼에도 똑같은 명칭을 사용하다 보니 불필요한 혼동을 불러일으킵니다. 게다가 국내의 식물도감에는 이들과는 또 다른 ‘보리수나무’라는 나무가 따로 나옵니다. 보리수나무(보리수가 아님)와 이와 유사한 몇몇 나무들의 열매를 지방에 따라 ‘뻘뚝’, ‘파리똥’, ‘포리똥’ 같은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데, 약간 떫으면서도 새콤달콤한 맛이 나서 배고픈 시절 어린아이들의 허기를 채워주는 좋은 간식거리였답니다. 형편이 이러니 일반인들이라면 보리수라는 이름을 놓고 어리둥절해질 만도 하지요.
원래 불교에서 보리(菩提)라고 함은 산스크리트어 ‘Bodhi’를 한자로 음역한 것으로서, 만물의 참된 모습을 깨닫는 부처의 지혜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석가모니가 그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던 나무를 보리수라고 부르는 것이죠. 그런데 이 보리수가 실은 무화과나무 종류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원래 동남아시아와 중국 서남부에 분포하는 열대성 나무이기 때문에 한반도의 혹독한 겨울 추위를 이겨내기가 어렵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심이 두터운 사람들이 석가모니의 깨달음과 연관이 있는 이 강력한 종교적 상징물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보리수가 월동하기 힘든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보리수의 대용이 될 만한 나무를 찾아내어 사찰 마당에 심게 되었습니다. 이 나무가 바로 중국이나 일본, 한국의 사찰 등지에서 ‘보리수’라는 팻말을 달고 있는 나무인데, 원래 이 나무는 진짜 보리수와는 계통이 다른 피나무 종류로서 식물도감에 나오는 정식 이름은 ‘보리자나무’라고 합니다. 보리자나무는 잎 모양도 원조 보리수와 닮은 구석이 있을 뿐더러 초여름엔 향기로운 꽃이 탐스럽게 피고, 또한 단단한 열매로는 염주를 만들 수도 있으니(그래서 염주나무라고 부르는 경우도 간혹 봅니다) 금상첨화라고 할 만하지요.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접한 동양인들에게도 이 대체 보리수의 이미지가 강렬했나 봅니다. 가곡 ‘보리수’의 원제목 ‘Der Lindenbaum’을 정확하게 옮겼더라면 ‘피나무’라고 했어야 할 것을 그만 ‘보리수’라고 번역해 버렸거든요. 그리고 이 명칭이 그대로 굳어져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보리수’의 노래 가사를 기억하세요? 이 시는 스산한 겨울밤이라면 더욱 가슴속에 와 닿습니다.
“오늘밤도 지났네 보리수 곁으로
캄캄한 어둠 속에 눈감아 보았네.
가지는 흔들려서 말하는 것같이
그대여 여기 와서 안식을 찾으라.”
뭐, 이름이야 아무려면 어떻겠습니까? 결국 이 세상의 나무들이란 모두 다 그 누군가에게는 평화와 안식을 가져다주는 보리수일 테니까요.
글과 사진·김태영(자연생태연구가·<한국의 나무> 공저자) 201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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