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정책 추진은 지도자의 능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우리 역사상 최고의 인물로 손꼽히는 세종대왕(1397~1450, 재위 1419~1450)은 백성의 복지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사회적 약자인 노인이나 감옥의 죄수들에게까지 복지의 혜택이 갈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다.
먼저 노인에 대한 복지를 위하여 세종은 자주 양로연(養老宴)을 베풀었다. 세종은 “나이 많은 사람을 높이는 것은 효제(孝悌)의 풍속을 돈독히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노인을 공경하는 정책들을 추진했다. 80세 이상의 노인에게는 양로연을 베풀어 신분에 관계없이 참여하게 했고, 9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는 관직과 봉작을 수여했다.
세종은 1434년(세종 16년) 8월 22일 사정전에서 베푼 양로연에서 “내가 조상의 음덕을 입어 이에 이르렀나니, 늙은 대신들이 기뻐 위로하고, 나도 기뻐하오. 또 연전에는 경이 여위고 약하더니 금년에는 살이 오르고 윤택하니, 내가 매우 기쁘오”라면서 양로연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하였다.
100세가 넘으면 천민의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기도 했다. 1435년 6월에는 승정원에 명하여 서울과 지방의 90세 이상 노인을 직접 조사하게 했다. 당시 90세 이상의 남녀는 모두 614명이었는데 그 중에 100세는 남자가 2명, 여자가 1명이고 102세는 남자가 1명, 여자가 4명, 104세는 여자가 2명이었다. 국가에서 고령자를 파악한 것은 이들에 대해 확실한 예우를 해 주기 위해서였다.
세종은 빈민의 치료와 미아(迷兒) 구호를 위한 제생원(濟生院) 운영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미아들이 노비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아가 발견되면 제생원에 보냈다. 미아를 받아 기르기를 자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거주하는 마을 이름과 성명 및 어린이를 주고받은 연월을 문서에 명백하게 기재하여 양육하게 했다. 아이를 잃은 사람에게는 벌금을 내게 하고 버려진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상금을 주기도 했다.
열병을 앓는 사람들이 더위를 극복할 수 있도록 서민 대상 의료기관인 동서활인원(東西活人院)에서 쇄빙(碎氷·부순 얼음)을 지급한 기록도 보인다.
약자를 배려한 세종의 세심함은 감옥의 죄수들에 대한 정책에서 보다 잘 드러난다. 1425년(세종 7년) 5월 세종은 질병과 추위 때문에 감옥의 죄수들이 사망하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옥(獄)이란 것은 죄 있는 자를 징계하자는 것이요, 본의가 사람을 죽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형조의 관리들로 하여금 항상 감옥을 수리하고 쓸어서 늘 정결하게 하고 질병 있는 죄수는 약을 주어 구호하고 치료할 것, 옥바라지할 사람이 없는 자에게는 관(官)에서 옷과 먹을 것을 주어 구호하게 할 것 등을 지시하였다.
세종 시대에 사형 죄수에 대한 삼심제(三審制)가 확립되었는데, 죄수에게까지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한 세종의 배려에서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시대정신을 읽어볼 수 있다.
이외에 세종은 관청에 근무하는 관노비(官奴婢)의 출산 휴가 규정까지 마련하였다. 아이를 낳은 여자에게 100일간의 출산 휴가를 주고 그 남편에게는 산모를 돌볼 수 있도록 30일간의 휴가를 주었다. 세종대의 출산 휴가 규정은 조선의 헌법인 <경국대전>에서 명문화되는데 출산한 관노비에게 출산 전 30일, 출산 후 50일의 휴가를, 그 남편에게는 15일의 휴가를 주도록 했다.
노인이나 버려진 아이, 죄수, 노비 등 사회적 약자 모두가 최소한의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세종은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미 550여 년 전에 복지 국가를 지향한 세종의 정책은 지금 시대에도 많은 울림을 주고 있다.
글·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2014.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