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5일 독일 본에서 열린 유네스코 회의에서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백제 역사유적지구가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것이다. 백제 역사유적지구는 백제시대 수도였거나 제2의 수도였던 충남 공주시와 부여군, 전북 익산시 3개 지역에 분포된 8개 고고학 유적지로 구성돼 있다. 공주의 공산성(公山城)과 송산리(宋山里) 고분군, 부여 사비성과 관련된 관북리(官北里) 유적 및 부소산성, 정림사지(定林寺址), 능산리(陵山里) 고분군, 부여나성(扶餘羅城), 익산의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彌勒寺址) 등이다.
백제의 역사는 수도의 변천에 따라 한성시대(기원전 18~475년), 웅진 즉 지금의 공주시대(475~538년), 사비 즉 지금의 부여시대(538~660년)로 나뉘는데, 이들 유적은 백제가 한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한 475년부터 백제가 멸망한 660년 사이의 역사를 잘 보여준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백제 역사유적지구 중 익산 미륵사지.
공주를 대표하는 유적은 무령왕릉이다. 무령왕(武寧王)은 6세기 백제의 부흥을 이끈 왕으로, 1971년 공주 송산리 고분군 배수로를 공사하는 과정에서 무덤이 발견됐다. 무령왕릉의 발굴은 한국 현대사에서 고고학 발굴의 최대 성과로 꼽힌다.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무덤의 원형이 남아 있고, 무덤 속에 있던 매지권(賣地券 : 땅을 팔 때 주고받던 문서)을 통해 무덤의 주인공이 무령왕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왕과 왕비의 금제관식(金製冠飾)을 비롯해 금귀고리, 팔찌, 비취곡옥 등 부장품들도 대단했다.
부여엔 이곳으로 천도한 성왕(聖王)의 자취가 서려 있다. 538년 성왕은 상대적으로 좁은 방어형 도시인 공주와 달리 광활한 평지인 부여로 천도한 후 국호를 '남부여'라 하고 백제의 중흥을 꾀했다. 1993년 부여의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금동대향로는 백제가 국제적으로 개방된 사회였음을 잘 보여준다. 전체적으로는 용이 떠받치는 연꽃 모양의 몸체와 봉황이 올라선 봉래산 모양의 뚜껑으로 크게 구분되고,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와 기마인물상을 비롯한 30명이 넘는 사람들, 산과 폭포, 호수, 그리고 악어, 코끼리, 수달, 원숭이 등 각종 동물이 등장한다. 섬세한 조각품들은 백제인의 예술적 능력을 체험하게 한다.
익산 지역은 '서동요'로도 널리 알려진 무왕(武王)의 꿈이 서린 곳이다. 600년 즉위해 41년간 왕으로 재임한 무왕은 익산을 제2의 수도로 개발했다. 1989년부터 본격적으로 발굴해 현재진행형인 왕궁리 유적에선 치밀하게 설계된 성 내부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남쪽 공간은 정전 및 왕궁 시설로, 북쪽 공간은 후원으로 활용했음이 나타난다.
동양 최대, 최고의 탑인 미륵사지 석탑 또한 익산을 대표하는 유적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1992년에 9층으로 복원됐고, 서탑은 반파된 상태로 6층 일부까지만 남아 있었는데 2001년 해체를 시작해 10년 만에 완료하고 다시 쌓는 공사는 2013년 착수돼 진행 중이다. 이처럼 백제 역사유적에 대해선 원형 복원 공사는 물론이고, 유적에 얽힌 풍부한 스토리 개발이라는 과제도 함께 제기된다. 백제 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 지정으로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고 국내외 관광이 활성화되길 기대한다.
글 ·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2015.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