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면 전국 각지의 산중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자칫 쇠딱다구리가 나무 쪼는 소리로 오해할 법도 하지만, 실은 고로쇠 수액 채취를 위해서 전기드릴로 나무에 구멍을 뚫는 소리지요. 이런 기계음을 통해서 봄을 예감하게 된다는 것이 좀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네요.
예전에는 고로쇠나무의 수피에 ‘V’자 모양의 홈을 파고 수액이 하단의 뾰족한 곳으로 흐르도록 한 다음 그곳에 못으로 깡통 같은 용기를 달아서 수액을 채취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자니 나무를 지나치게 훼손할 뿐 아니라 수액이 모인 통을 일일이 수거하는 것도 보통 큰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위생에도 문제가 많은 아주 비효율적인 방식이었지요.
그 다음에 등장한 채취 방식이 나무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플라스틱 파이프를 연결한 뒤 거기에 일일이 비닐 주머니를 매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 역시 비닐 주머니에 고인 수액을 일일이 플라스틱용기로 옮겨 담은 뒤 그 무거운 용기를 다시 산 아래로 옮겨야 하니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닙니다(아직도 이 방식으로 채취하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수년 전 등장한 방식이 나무에 파이프를 꽂아 호스를 연결해 뽑아낸 수액을 다시 산 중턱 몇 곳에 설치한 저장탱크에 모은 다음, 다시 호스를 이용해 수액을 산 아래까지 이동시키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고로쇠나무가 많은 산에 가면 검은색의 수액 채취 호스들이 온 산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나무로부터 수액을 ‘쪽쪽’ 빨아내어도 나무에 아무런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수액을 아무리 채취하더라도 나무의 생장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는 자신만만한 주장을 간혹 듣습니다만, 고로쇠나무가 무슨 황금알을 낳는 거위도 아닐진대 정말 아무 문제가 없을 리 있겠습니까? 과도한 수액 채취가 장기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필경 나무의 생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고 나무의 면역성을 약화시켜 병충해에 취약하게 만들 것이라는 점도 걱정해야 할 문제입니다. 다만 이런 과정은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일어나기 때문에 근시안적인 사람들이 보기에 지금 당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겠지요.
만일 우리나라의 숲에서 고로쇠나무가 사라진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솔직히 실토하자면 저는 짐작조차 못하겠습니다. 다만 그 파급효과는 그저 한 종(種)의 나무가 사라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상치 못했던 여러 가지 연쇄작용을 일으켜 결국 그 폐해가 고스란히 사람들에게 돌아오리라 우려할 뿐입니다.
일각에서는 살아 있는 나무에 파이프를 꽂아 수액을 뽑아내는 모습이 마치 살아 있는 곰의 쓸개에 파이프를 꽂아 웅담액을 빨아내는 것과 닮았다 하여 수액 채취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는 모양입니다만, 저는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자연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당연히 이용을 해야겠지요.
그렇다고는 해도 자연의 순환 원리를 파괴하지 않는다는 큰 전제는 있어야 하겠지요. 지금처럼 과도한 채취 방식을 보고 있자면 욕심에 눈이 멀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음을 자행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좀 걱정이 됩니다. 더 늦기 전에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는데 있어서도 주기적으로 채취 허가 구역을 달리하는 휴식년제를 시행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연의 혜택을 오래도록 누리려면 현명한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야기가 그만 고로쇠나무 자체에서 빗겨나 고로쇠 수액 채취 문제로 넘어가 버렸네요. 뭐, 이것 역시 나무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깃거리일 것입니다.
글과 사진·김태영(자연생태연구가·<한국의 나무> 공저자) 201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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