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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예나 이제나 바람 부는 들판이고 풍랑이 드센 바다와 같다. 옛사람들도 그런 세상을 견디며 살았고 오늘의 우리도 그렇고 미래의 사람들도 그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어디에도 의지할 데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허허로운 이 세상. 제대로 살아가려면 마음속에 푯대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 나는 이렇게 살겠다든지, 이렇게는 살지 않겠다든지 마음의 다짐 말이다. 그런 걸 좌우명이라 했고 인생관이라 불렀다. 인생의 지향점이나 방향 설정 같은 것이다.
나의 삶에서 그것은 어떻게 나타났을까? 살아온 세월이 짧지 않으므로 시기별로 다르게 여러 가지로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이를테면 고달픈 인생살이 속에 내가 기대고 산 말들이다. 젊은 시절엔 그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자’ 정도가 나름대로 인생관이거나 삶의 태도였을 것이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까지 생겨난 중년 무렵부터 나의 좌우명이 분명히 생겨났다. “빈이무첨(貧而無諂)하고 부이무교(富而無驕) 하라.” 풀이하면 “비록 가난하게 살지라도 아첨하지 말고 나중에 부유하게 되더라도 교만하게 살지 마라.” <논어>, <명심보감>에 있는 문장이다. 무작정 이 말이 마음에 당겼다. 워낙 사는 형편이 궁색했고 살아가는 날들이 힘겨웠던 것이다.
아예 입에 달고 살다시피 했다. 밥상머리에서 얼마나 자주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던지 우리 집 아이들이 나중에 자라서도 내가 한 이야기 중에서 첫 번째로 기억하는 말이 바로 이 말이다. 우선은 급해서 이런 말을 내 가슴에 안았지 싶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빈이무첨보다 부이무교가 더 실천하기 어려운 생의 덕목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다음으로 내가 마음에 담았던 말은 ‘날마다 이 세상 첫날처럼 하루하루를 맞이하고 날마다 이 세상 마지막 날처럼 하루하루를 정리하면서 살자’다. 이 말 또한 입으로는 쉬워도 생활에서 몸으로 실천하기는 지난한 말이다. 지키기 어려운 약속 같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금과옥조로 삼고 하루하루를 살고자 노력했다.
이제 나이 들어 나의 좌우명은 조금 더 바뀌었다. 그것은 ‘밥 안 얻어먹기와 욕 안 얻어먹기’다. 이 말은 더욱 실천하기 어려운 말이다. 사람이 정면으로 얻어먹는 것이 밥이라면 뒤로 얻어먹는 것은 욕이다. 늙은 사람은 절대로 그 두 가지를 얻어먹으면 안 된다. 그렇게 안 되도록 자신을 다잡고 애쓰며 살아야 한다.
이제 더 가슴에 안고 살 말이 없을까 생각해 본다. 그것은 ‘거절하지 않기와 요구하지 않기’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고 다른 사람의 요구를 거절하면서 산다. 자기 편의로 그러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거꾸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할 때 세상이 조금씩 좋은 세상이 되는 게 아닐까? 실천하기는 비록 어렵다 하더라도 남은 생애 나는 그렇게 노력하면서 살고 싶다.
나태주 시인_ 풀꽃 시인. 한국시인협회장. 100여 권의 문학 서적을 발간했으며 충남 공주에서 풀꽃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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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