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정원 일에 게을렀다. 지난 2년 동안 한국시인협회 회장 일을 하느라 깜냥껏 신경 쓸 일이 많아서 그리 됐노라, 핑계를 댄다. 그 바람에 풀꽃문학관 정원이 엉망이 됐다. 엉망이 됐다는 건 내 생각에서 그런 것이고 많이 변했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니 꽃들이 제자리에 있지 않고 흩어져 있다. 식물인 꽃들도 한자리에 붙박이로 살지 않는다. 꽃들도 돌아다니며 산다. 아니, 제가 살고 싶은 곳을 찾아다니며 산다. 구절초가 그렇고 솔대국이 그렇고 층층꽃과 등심붓꽃이 또 그렇다.
참 이런 것 하나만 봐도 자연의 신비함을 느낀다. 그런 가운데 더욱 신기한 건 깽깽이풀이다. 이 녀석은 아예 엉뚱한 곳에 싹을 틔운다. 앞 정원에 있는 깽깽이풀의 싹이 뒤 정원에 올라온 것이다. 그것도 아주 작고도 초라한 잎새 하나. 듣는 말로는 개미가 꽃씨를 물어다 옮겨서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꽃 이름도 깨금발로 옮겨 다닌다는 뜻으로 깽깽이풀이란다.
그러나 꽃밭 일을 하면서 마음이 무거운 건 내가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꽃들이 잘 자라지 않거나 아예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이다. 사랑하고 정을 많이 주는 마음이 너무 부담스러워 그런 것인가! 독일 용담과 금낭화, 노루오줌이 시원치 않고 두메양귀비와 노랑할미꽃과 하얀 할미꽃, 복수초는 아예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래도 나는 열심히 정원 일을 했다. 지난해 웃자란 누런 잔디를 다듬고 꽃들을 정리했다. 야속한 일은 사람이 별로 귀하게 여기지 않는 꽃들이 너무나 왕성하게 잘 자란다는 사실이다. 해국이라든가 어성초, 꿀풀이라 불리는 하고초 같은 꽃들은 아예 제 영역을 벗어나 다른 꽃들의 자리까지 훌쩍 넘보면서 번져나간다.
미상불 수세(樹勢)를 꺾어줄 필요가 있다. 적당한 양만 남기고 뽑아주는 것이다. 며칠 전의 일이다. 해국 뿌리를 뽑고 있는데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호미로 풀뿌리를 찍어 뒤집었는데 그 밑에서 개구리 한 마리가 솟구쳐 나왔지 뭔가! 호미질을 하노라면 가끔 굼벵이나 지렁이를 캐는 일은 있지만 개구리를 캐는 일은 처음이다.
어라! 놀랍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 녀석을 붙잡아다 다시 흙 속에 묻어주었으나 녀석은 꼬물거리다가 끝내 튀어나와 다른 곳으로 도망가버리고 말았다. 개구리가 사라진 뒤 나는 한참 호미를 놓고 개구리가 뛰어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하다, 미안해. 네 겨울잠을 너무 일찍 깨워서 미안하다.
그나저나 우리 풀꽃문학관 정원에 개구리가 산다는 게 신기하고 놀라웠다. 아, 그랬구나. 우리 문학관에도 개구리가 살고 있었구나. 그것은 하나의 발견 수준의 사실. 그다음 날 비가 내리기는 했지만 부디 녀석이 죽지 말고 우리 문학관 뜨락에서 잘 살아주기를 비는 마음이다.
나태주 시인_ 풀꽃 시인. 전 한국시인협회장. 100여 권의 문학 서적을 발간했으며 충남 공주에서 풀꽃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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