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수그러들 기미가 없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처럼 잠시 인간에게 겁을 주고 물러갈 줄 알았는데 아예 인간 곁에 눌러앉아 동거할 채비를 하는 것 같아 정말 겁이 나고 걱정된다. 다시 옛날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마음이 무겁다.
도대체 밀접, 밀폐, 밀집을 할 수 없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밀접, 밀폐, 밀집이다. 거기서 인간다움이 나왔다. 도시 형성이 그렇고 축제가 그렇고 가정 유지가 그렇고 광장 문화나 여행도 그렇다. 느닷없는 언택트(비대면), 줌(화상회의)이란 낯선 말 앞에 주눅이 든다.
이게 무슨 꼴이람! 입을 모아 인간의 오만과 탐욕을 말한다. 인간이 지나치게 자연을 학대한 탓이고 자연을 너무 많이 소유하고 침범한 탓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자연과 거리두기를 소홀히 했다는 거다.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이 모든 게 거기서부터 출발했다고 말한다.
과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크게 보아 이번 코로나19도 이런 원인과 관계가 깊다는 것. 인간과 동물 사이에는 완충지대가 있었는데 그걸 좁히는 바람에 동물의 질병이 인간에게로 건너왔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지구온난화로 아열대 동물들이 온대로 치고 올라왔다는 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업자득이다. 망연자실, 할 말이 없고 대책이 묘연하다. 더구나 변이종까지 나와 백신 예방접종을 마친 사람들까지 돌파감염을 시킨다니 절망적이다. 나부터 예방접종 마치고 마스크 좀 벗고 살려 했는데 그 희망이 물거품 됐다.
인간은 자연과 거리를 두지 않고 산 탓에 2년 가까이 거리두기를 하면서 살고 있다. 이 거리두기가 언제 끝날 것인지 모르겠다. 사실 거리두기는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사생활이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이것은 김소월 선생의 시 <산유화>의 두 번째 연. 나는 이 문장에서 ‘저만치 혼자서’를 가슴 가득 안아본다. 그렇다. ‘저만치’다. ‘이만치’가 아니고 ‘저만치’다. 거리를 두되 너무 멀리 두지는 말자는 말이다.
그리고 ‘혼자서’다. 우리는 모두가 혼자서 태어났고 혼자서 살아가다가 혼자서 죽어야 하는 단독자들이다. 그것이 너무 섭섭하고 억울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원하고 가정을 이루기도 하는 것이다. 이참에 우리가 좀 성숙했으면 싶다. 사는 방법도 많이 바꿨으면 싶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 제 욕심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 너무 가까우면 때로 지겹기도 하다는 것. 자연을 함부로 한 벌이 너무 크고 무겁다는 것. 내가 잘되기 위해서는 너의 도움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것. 지금 우리는 크게 벌을 받으면서 크게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나태주 시인_ 풀꽃 시인. 한국시인협회장. 100여 권의 문학 서적을 발간했으며 충남 공주에서 풀꽃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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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