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욕망적 존재며 이기심의 존재다. 이 욕망이나 이기심이 인간의 삶에 활력과 의지를 주고 미래의 소망을 준다.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 같은 이는 인간의 욕구 단계를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애정과 소속의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등 다섯 개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불교에서는 식욕, 수면욕, 색욕, 재물욕, 명예욕 등 역시 다섯 개로 나누어 가르치고 있다.
여기서 나는 나름대로 다르게 말하고 싶다. 그것은 지금껏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적으로 보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얻어낸 개인적 결론이기도 하다. 인간, 욕망의 존재, 맞다. 이 욕망이 삶의 목표를 갖게 한다. 삶의 원동력을 제공한다. 이걸 단계별로 말해보면 가장 기본적인 것이 물질에 대한 욕구이고 그다음이 사랑의 욕구, 권력의 단계, 그리고 명예의 욕구이다.
보통 인간들은 물질과 사랑의 단계에서 그 삶이 이뤄지고 목표가 달성된다. 의식주의 문제 해결이 그것이고 결혼이나 가정을 꾸리는 일, 자녀 출산과 교육, 자녀 성가(成家), 직장생활, 사회활동, 취미생활 전반이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가는 사람은 권력의 단계까지 간다. 물질이나 사랑의 욕구를 충족시켰거나 그 이상의 목표를 꿈꾸는 사람들이 넘보는 세계다. 그리고 가장 높은 단계가 명예의 단계이다.
나는 시 쓰는 사람으로서 작고 초라하긴 하지만 명예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무릇 명예는 성취하기도 어렵지만 지키기가 더 어려운 법. 어떻게 지킬 것인가? 아래 단계에 있는 욕망들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데서 명예는 지켜진다고 본다. 굳이 포기란 말이 힘겨우면 분배란 말로 바꾸어도 좋겠다. 나눠주는 것이고 나눠 갖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명예에 손상이 가지 않는다. 문제는 언제나 독점에 있기 마련이다.
얼마 전 내게 매우 속상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화가 나는 일이었고 내 상식이나 국량(局量)으로는 수용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며칠을 속으로만 끙끙 앓으며 지냈다. 그러다가 천천히 마음을 달래기 시작했고 내가 가진 불만이나 화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시인으로서 명예나 자존을 지키는 일이다. 내가 가진 것을 조금씩 내려놓는 것이 명예를 지키는 일이라고 스스로 말해오지 않았던가! 그런 뒤에 마음에 평정이 찾아왔다.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것, 그것은 포기일 수 있다. 앤절라 더크워스 교수가 <그릿>이란 책에서 성공의 비결로서 제시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열정’과는 정반대의 생각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젊은이들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노인들 세계는 다르다. 충분히 포기가 아름다움일 수도 있다. 포기하지 않을 때 노욕이 되고 과오가 된다. 진정한 포기는 포기할 수 없는 것을 포기하는 데에 있다. 그래서 스스로 자유로워지고 평화로워지는 일이다.
나태주 시인_ 풀꽃 시인. 한국시인협회장. 100여 권의 문학 서적을 발간했으며 충남 공주에서 풀꽃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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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