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모교 앞길을 오갔다. 그것도 자전거를 타고. 아침에 지나고 저녁에 지났다. 문학관에 다녀오거나 시내에 나가려면 꼭 공주교육대학교 앞길을 지나야 한다. 하지만 공주교육대학교는 나의 모교가 아니다. 다만 모교가 있던 자리에 새로 생긴 학교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공주교육대학교를 모교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나도 세상이 헛헛해서 견딜 수가 없다.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깡그리 변했다. 옛날 내가 다니던 공주사범학교의 모습은 거의 없다. 찾는다면 늙은 나무 몇 그루 정도.
그래도 내가 공주교육대학교를 바라보는 마음은 따스하고 살갑다. 아, 내가 저 자리에서 고등학교 학생으로 친구들을 만났고 좋아하는 여학생을 만나기도 했지. 혼자서 문학을 꿈꾸고 시인을 가슴에 품기도 했지. 한 시절 저 학교 부설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기도 했었지.
생각해보면 모두가 꿈같은 시절이다. 아름다웠던 시절이다. 서른 살을 넘기면서 공주로 직장을 옮긴 이래 거처를 금학동에 마련한 것도 모교 터에 생긴 공주교육대학교와 가깝게 살고 싶어서였다. 그렇게도 공주교육대학교는 나에게 마음의 고향과 같은 학교다.
얼마나 오랜 세월 나는 이 길을 오가며 살았던가. 공주로 직장을 옮기던 해가 1979년도이고 또 그해에 딸 아이를 낳았으니까 42년 전의 일이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 딸아이 나이가 벌써 내가 공주로 와서 살기 시작하던 때의 내 나이보다 많은 나이가 됐구나.
세월은 그렇게 빠르고 무정하다. 천지불인(天地不仁). 도대체 인간의 눈치를 보려 하지 않고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저 혼자 손사래 치면서 멀어질 뿐. 이제 내가 이 길을 아침저녁으로 스쳐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 누구도 아는 체하지 않고 나 역시 그렇다.
피차 오래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대상이 됐고 의미가 있었지만 무의미한 그 무엇으로 바뀌고 말았다. 다만 아득한 느낌. 꿈길을 헤매고 있는 것 같은 감회. 연극은 이미 끝났는데 무대에서 내려가지 못하고 여전히 서성대고 있는 연극배우와 같다고나 할까?
다만 나는 바람처럼 이 길을 오갈 뿐이다. 골짜기를 빠르게 흘러가는 물처럼 무심하게 이 길을 지나칠 뿐이다. 오늘도 저희끼리 재잘거리며 삼삼오오 무리 지어 오가는 새내기 대학생들에게 나는 다만 모르는 노인일 뿐이고 그들 역시 나에게는 모르는 청춘들일 뿐이다.
얼마나 더 나는 이 길을 이렇게 오갈 것인가? 아무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이 거리. 분명 낯익고 정다운 거리지만 낯설고 멀리만 느껴지는 이 거리. 다시금 정신 차려서 살피면 어디 먼 외국에라도 여행 온 듯한 그런 막막한 느낌. 문득 목이 마르다.
나태주 시인_ 풀꽃 시인. 한국시인협회장. 100여 권의 문학 서적을 발간했으며 충남 공주에서 풀꽃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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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