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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많이 받으실 텐데 어떻게 푸세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이 말은 ‘하루 종일 우울하다는 말을 들을 텐데 아무리 전문가라도 스트레스가 쌓여 괴롭지 않느냐’라고 짐작하고 묻는 것일 테다. 맞다. 별 수 없이 나도 스트레스를 엄청 느낀다. 어떻게든 풀어야 버틴다. 식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이런 질문에 “그냥 걷고 뛰어요”라고 대답한다.
러닝머신 위에서 빠르게 걷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매일 뛰었다. 휴일에는 자주 산을 오른다. 심리적 스트레스는 몸을 움직여야 풀린다. 개인적인 체험도 그렇지만 행동 활성화가 효과적이라는 의학적 증거들은 차고 넘친다. 스트레스 해소뿐 아니라 가벼운 우울증에도 신체 활동은 약만큼, 아니 약보다 더 효율적인 치료제다.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대부분 정신적인 것이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일해도 피로에 빠진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지쳤다고 느끼지만 뇌라는 엔진은 계속 돌아간다. 누워서 쉬면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휴일에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만 본 적이 있을 거다. 어떻게 되던가? 더 무기력해진다. 평소에 뇌는 많이 쓰고 몸을 적게 썼다면 이 둘 사이에 균형을 맞추기 위한 조율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운동이다.
뜨거워진 뇌를 식히기 위해 명상하는 것도 좋다. “당신도 명상을 하느냐?”고 물어오기도 한다. 마음 다스리는 일에 천착하는 이들은 하루 중에 따로 시간을 내서 조용한 방에서 가부좌 틀고 앉아 명상을 하던데 솔직히 나는 그렇지 못하다. 책상 정리, 설거지, 식물에 물주기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행하면 그것이 바로 명상적 활동이라고 믿기에 “나도 명상해요!”라고 웅변할 만 한 건 따로 하지 않는다.
“선생님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알려주세요”라는 질문을 받고 ‘걷고 뛰기’라는 답만 하면 성의 없다 느낄까봐 여기에 한두 가지 덧붙여 들려주기도 한다.
하루 종일 “사는 게 재미없다, 즐거움이 안 느껴진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일인지라 쉬는 날은 무조건 재밌는 걸 하려고 한다. 기쁨을 불러일으키는 단추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그러면 나는 무엇에 즐거움을 느끼는가? ‘정보 수집’이 나의 재미 중 하나다. 독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인터넷 검색과 신문읽기, 여러 잡지의 이미지를 눈으로 주워 담기도 하고 전시회 해설집도 꼼꼼히 챙겨 본다. 그렇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흥미를 자극하는 이야기꺼리들은 컴퓨터 메모장에 꼭 옮겨둔다. 나중에 글감으로 쓰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내게는 ‘보고 쓰기’가 스트레스 해소제인 셈이다.
미술 작품을 보고 나만의 비평을 쓰기도 한다. ‘이 그림, 정말 좋아!’라고 느꼈지만 왜 좋은지 말로 설명이 안 될 때가 참 많다. 그러면 감동의 이유를 언어화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일렁이고 무엇이든 쓰게 된다. 예술을 글로 옮기다 보면 궁극적으로는 작품이 아니라 내 마음을 보게 된다. 미술로 나를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누구에게 보여주고 “좋아요”를 받지 못 해도 이런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내겐 큰 즐거움이다. 요즘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청년미술상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젊은 작가의 그림을 ‘어떤 매력에 끌려서 비상금을 털어내 구입하게 됐을까?’하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그 답을 활자로 풀어내는 중이다.
김병수 의사_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몇 권의 책을 쓴 저자.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했고 지금은 교대역 작은 의원에서 사람들의 상처 난 마음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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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