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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심은 의존성을 꺾고 억제할 때가 아니라 충분히 채워줘야 생긴다. 안정 애착은 세상을 독립적으로 탐색하기 위한 도약판이다. 상처 입었을 때 안식처가 있다는 믿음이 자율성을 북돋운다. 자녀가 부모와 건강하게 이어져 있어야 자립할 수 있다. 애착 이론의 창시자 존 볼비는 “과도한 의존이나 진정한 독립 같은 것은 없다. 효율적이거나 비효율적인 의존만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부모가 사랑으로 키워 주는 일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일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맞췄을 때라야 자립의 토대가 되는 창조적 탐험 능력이 자녀에게서 발달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환자의 관계도 유사하다. 환자가 의사에게 처음에는 안정적으로 의존해야 심리적 힘이 자라난다. 베틀의 북이 움직일 때마다 천의 길이가 늘어나는 것처럼 상담이 거듭될수록 안정감이 조금씩 커진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환자가 충분한 길이의 천을 짠 후에는 그것을 한 쌍의 날개처럼 활짝 펼쳐서 독립을 향해 떠난다. 마침내 자유롭게 된 그는 바람을 타고 다른 세상으로 날아간다.” (<사랑을 위한 과학> 중에서). 내가 하는 일의 목표는 그래서 이별이다.
삼십대 초반의 청년에게 물었다. “지금처럼 계속 살다가 마흔이 되면 어떤 느낌일지 한 번 상상해보세요.”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취직해서 일도 했고 학창 시절에는 1년 정도 유학도 했다. 지금은 결혼하지 않고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직장 생활도 하지 않고 있다. 일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도 없다. 그의 대답은 “뭐 그리 나쁠 것 같지는 않은데요”였다. 자신을 숨 막히게 만드는 세계를 못 본 척 하고 아예 없는 것처럼 비뚤어지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물론 그의 말이 100% 진심이 아니라는 건 잘 안다. 그래도 독립에 대한 절박함이 그에게는 없어 보였다.
그 청년의 어머니는 강한 사람이었다. 가족을 부양하는 데에도 적극적이었고 돈도 잘 벌었다. 자기주장도 셌다. 청년이 뭔가를 시도할 때마다 “그건 안 돼”라고 부정한 뒤에 당신이 옳다는 것을 아들에게 밀어붙였다. 그게 부모의 당연한 역할이라고 했다. 청년은 점점 소심해졌고 병원에 올 때 즈음에는 “아무 것도 하기 싫다”며 무력해져 있었다.
“이것도 하지 마라, 저것도 하지 마라”고 말하는 부모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혹시나 잘못되면 어쩌나, 나쁜 일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하는 게 자연스러운 부모 마음일 테다. 아직 미숙하고 세상사는 요령도 부족하고 험난한 세계를 견뎌낼 힘도 충분치 않아 보이니까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를 하게 된다. 애정 반, 불안 반이다. 그래도 스스로 돌봐야 될 때가 된 자녀라면 과감히 놓아주는 것이 사랑의 또 다른 형태일 것이다. 제때 이별하지 않으면 관계도 불행에 빠지고 만다.
수영하는 법을 완전히 익힌 다음에 다이빙을 하는 게 아니라 약간 부족하더라도 물에 뛰어든 다음에라야 헤엄치는 기술을 제대로 터득할 수 있다. 세상사는 기술은 이렇게 익혀진다. 정신적으로 부모에게 종속된 자녀는 자기 힘으로 성취해도 그것을 ‘진정으로 내가 이뤄 낸 것은 아니다’라고 느낀다. 불안해도 성장하려면 헤어져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자기 삶을 산다.
“몸을 날림으로써 무언가를 던져버리는 거야. 던지는 나와 던져지는 나는 공중에서 이별을 하지. 최고로 황홀한 순간이야. 쾌감이 하늘까지 치솟아 오르지. 던져져 물속에 빠진 나는 죽고 던진 나는 물속에서 다른 내가 되어 올라오는 거야.” (이승우의 소설 <캉탕> 중에서)
김병수 의사_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몇 권의 책을 쓴 저자.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했고 지금은 교대역 작은 의원에서 사람들의 상처 난 마음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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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