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을 펼쳐 보세요!” 창의적인 글쓰기 시간에 나올 법한 가르침이지만 나는 상담하면서도 종종 이렇게 말한다. 차마 말로 하지 못할 때는 속으로 ‘제발 상상력을 조금만 더 발휘해 봐요’라며 간절히 바란다. 상상력은 정신건강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능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힘든 일이 닥쳤을 때 그것을 타인의 눈으로 해석하고 ‘세월이 흐른 뒤에 이 고난은 인생에서 어떤 의미로 남겨질까?’라며 미래의 시간으로 볼 줄 안다. 이건 다 상상력 덕택이다.
일상이 단조로워질수록 상상을 펼칠 마음의 공간은 늘어난다. 매일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처럼 정신없이 흘러갈 땐 그것에 적응하느라 상상할 여유조차 갖기 어렵다. 지겹긴 해도 밋밋한 일상은 “내 꿈이 뭐지? 먼 미래의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며 지금보다 더 성장한 자아를 마음으로 그려볼 수 있는 기틀이 된다.
부정적인 전망으로 생각이 편향되면 우울증 위험도가 높아진다고 하지만 내 임상경험에 비춰보면 우울증이 심할수록 상상하는 힘 자체가 메말라 버린다. 무력감이 온 몸을 휩싸고 있는 이와 대화해보면 “지금의 나와 다른 내 모습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요”라며 괴로워한다.
비관적 생각이 들어서가 아니라 무기력하지 않은 자신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며 막막해한다. 새로운 자기와 달라질 세상이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을 때가 바로 정신건강의 위기 상태다. 우리에겐 비록 그것이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기대라는 마취제가 있어야 고난을 견딜 수 있다.
“상상력을 발휘했더니 자꾸 안 좋은 예상만 떠올라요”라고 불평하는 이도 있다. 그런데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것도 잘만 활용하면 득이 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에게서 걷는 능력이 사라졌다고 상상해봐라. 잠에서 깨어나 침대에서 얼어나려는데 두 발이 말을 듣지 않고 갓지어진 고슬 밥을 먹으러 식탁까지 걸어갈 수조차 없다. 출근은커녕 제 힘으로 바지도 못 입는 처지를 생각하기도 싫을 거다. 자, 이제 상상을 끝내고 현실로 돌아와 자신을 찬찬히 돌아봐라. 두 발로 서 있을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스트레스가 닥쳐도 담담하게 “건강을 잃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야!”라고 말하게 될 거다.
마음의 힘으로 숟가락을 휘거나 자동차를 사라지게 할 수는 없어도 ‘최고가능자기(Best Possible Self)’를 적극적으로 상상하면 자아는 달라지게 만들 수 있다. 간절히 열망했던 사람이 돼 있는 자신을 마음속으로 떠올리며 ‘그렇게 된 나는 어떤 일을 하고 누구와 함께 살고 있으며 점심으로는 무엇을 먹고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지’ 마치 지금 현실인 것처럼 상상해 보는 것이다.
다수의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하루에 20분씩 4일 동안 최고가능자기에 대해 글을 쓰라고 했더니 긍정 정서가 늘어나고 스트레스 내성이 커졌으며 중요한 과업을 지속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고 한다. 운동선수가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듯이 연습하면 효과가 나온다. 상상만 해도 몸을 움직이는 것과 동일한 뇌 부위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우주를 정복하겠다거나 손가락을 움직여 비를 내리겠다는 몽상에는 이런 효과가 없다.
나라는 존재는 이미 지나온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 살게 될 미래의 나에 대한 상상으로 완성돼 가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그런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하면 상상은 현실이 된다.
김병수 의사_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몇 권의 책을 쓴 저자.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했고 지금은 교대역 작은 의원에서 사람들의 상처 난 마음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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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