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을 마친 기사마냥 하루 일과를 끝낸 저녁, 책상에 앉아 그날 했던 말들을 바둑돌처럼 복기해본다. 좋은 질문을 하고 환자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날은 만족스럽다.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고 교육하듯 가르쳤던 장면이 자주 떠오르면 그날 저녁의 나는 어김없이 지치고 예민해져 있다.
나는 내 직업을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물론 이것만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하는 일 전체를 규정할 수 없다. 질문하는 것 이상으로 질환을 설명하고 환자가 건강한 행동을 하도록 설득하고 그들의 마음 습관을 변화시키기 위해 내 생각을 설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보다 우선하고 중요한 과업은 질문하는 일이다.
“상담을 하려고 찾아왔어요”라고 말했지만 막상 내가 질문을 해도 자기 느낌이나 생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내담자가 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무슨 일을 하느냐 전공이 무엇이냐 지금 누구와 함께 살고 있느냐” 같은 폐쇄형 질문을 한다. 필수 질문인데도 이런 물음은 듣는 이에게 평가 받는 듯한 분위기를 만든다. 부모의 직업, 거주지, 학교 성적, 심지어 운동 습관에 관해 묻는 것도 ‘내가 당신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 그런 의도를 품지 않았더라도 질문하는 행위 자체가 묻고 답하는 사람 사이에 위계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질문하는 일은 그래서 언제나 어렵고 조심스럽다.
철학자 소크라테스처럼 질문해보는 건 어떨까? 묻고 또 물어서 타인의 생각에 대한 근거와 타당성을 따져보고 그의 마음 안에 존재하는 모순을 발견하고 결국 상대가 지닌 왜곡된 신념을 교정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해보면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기 어렵다. 인간은 논리적 반박보다 자신의 신념이 존중 받는다고 느낄 때 방어 자세를 내려놓는 모순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좌절을 겪은 이에게 “힘내라!”는 응원도 필요하지만 질문을 해 스스로 길을 찾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더 좋다. “그 정도로 심각하게 느낀다면 앞으로 어떻게 헤쳐 나갈지 나름대로 이미 생각을 많이 해봤을 것 같아요”라고 넌지시 묻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 경험을 회상해보라고 하면서 “무엇이 그 힘든 상황을 견디게 해주었나요?”라는 물음은 자신이 갖고 있는 심리적 자원을 떠올려보게 해준다.
질문을 통해 이끌어내고 싶은 핵심은 상대가 가슴 깊숙한 곳에 품어둔 인생의 가치다. “더 이상 누군가를 기쁘게 할 필요가 없다면 어떻게 살고 싶나요?”라는 질문은 인정 욕구를 벗어던지고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생각해보라는 자극제다. 인간관계도 핵심 가치와 연결해 질문하면 더 좋다.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냐?”라고 평면적으로 묻기보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실망했을 때 당신의 마음속에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쭉 적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질문은 “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해야 최선의 삶을 살 수 있을까?”라는 궁극적인 물음의 변주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비록 해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는 과정 그 자체가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김병수 의사_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몇 권의 책을 쓴 저자.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했고 지금은 교대역 작은 의원에서 사람들의 상처 난 마음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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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