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석고에 템페라, 460×880cm, 1495~1498, 이탈리아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소장│ⓒ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천재 중의 천재로 뽑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년)에 대해 21세기형 상상력의 본보기로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는 “예술과 공학의 아름다움을 하나로 융합한 천재”라고 평가했다. 융합형 인간의 원형이 15세기에 활동한 다빈치라는 것이다.
관찰과 사색, 독서와 메모하는 습관.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이자 건축가 겸 전기 작가인 조르조 바사리(1511~1574년)의 말처럼 다빈치는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탐구했다. 호기심과 사색이 동반된 전방위적인 방대한 독서는 다빈치의 머리를 지식의 보고(寶庫)로 꽃피웠다. 특히 자신의 생각과 지적활동의 모든 결과를 빠짐없이 기록으로 남긴 편집증적 메모 습관은 죽을 때까지 계속됐다.
다빈치는 전 생애에 걸친 연구과정과 연구결과, 스케치 등 육필메모를 노트로 제작해 보관했는데 상당량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우리가 500년 전에 죽은 다빈치의 행적과 업적을 동시대 인물처럼 생생하게 알 수 있는 것도 모두 메모노트 덕분이다.
3년에 걸쳐 완성한 다빈치 그림의 최고봉
화가로서 다빈치가 남긴 그림은 17점밖에 되지 않는다. 그의 그림은 그만큼 희소가치가 높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전날 밤 열두 제자와 함께한 마지막 식사장면을 그린 ‘최후의 만찬’은 다빈치 그림의 최고봉이다. ‘모나리자’와 함께 다빈치를 불멸의 화가로 각인시킨 대표작이다.
‘최후의 만찬’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서 가졌던 마지막 저녁식사를 뜻한다. 신약성경은 만찬 도중 예수가 “너희 중 한 명이 나를 배신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다빈치 말고도 많은 화가들이 작품으로 남긴 주제지만 다빈치가 1495~1498년 3년 넘게 걸려 완성한 ‘최후의 만찬’이 역사상 가장 유명하다. 그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로 압축된다.
첫 번째, 그림의 전체적인 구도. 다빈치는 예수를 중심으로 식탁 양쪽에 제자들을 배치하고 유독 유다만 건너편에 홀로 앉혀 배신자를 의도적으로 고립시킨 전통적 구도를 따르지 않았다. 대신 식탁 가운데에 자리한 예수 양옆으로 여섯 명씩 일렬횡대를 이루는 파격적인 구성방식을 선보였다. 예수와 열두 제자 모두 식탁 한쪽으로만 앉아 있거나 서 있을 뿐이다.
건너편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고 의자도 없애버렸다.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줄에 섞여 앉아 있는 유다의 모습은 자비를 베푸는 예수의 포용심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그림 왼쪽에서 네 번째, 오른손에 돈주머니를 쥐고 있는 이가 유다다. 돈주머니는 유다가 금고지기인 것과 동시에 돈에 눈이 어두워 예수를 팔아넘길 것이라는 중의적 암시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이 자리에 배신자가 있다는 예수의 말에 화들짝 놀라 다양하게 반응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무리별 배치방식이다. 두 번째 이유이기도 하다. 좌우의 제자들을 자세히 보자. 팔이나 손의 동작, 시선, 대화 장면 등에 따라 세 명씩 모두 네 무리로 연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설마 저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요?” “우리 중 누가 배신자라는 거야?” “아니 예수님이 어떻게 저런 말씀을 하시지?”와 같은 긴박한 순간이 자아내는 긴장감과 동시에 당황스러워 어쩔 바를 모르거나 슬퍼하거나 분노하거나 의심하는 제자들의 행동과 표정이 극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사실성 뒷받침하는 과학적 묘사
세 번째, 종전 그림과 달리 다빈치의 이 그림에서는 후광(後光)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전까지 화가들은 일반적으로 예수를 포함해 유다를 뺀 열한 명의 제자들 머리 뒤로 후광을 그려 넣어 신비감을 조성했다. 그러나 다빈치는 일체의 인위적인 후광을 배제했다. 만찬 자리의 사실성과 현장감을 높이기 위해서다.
대신 선택한 것이 예수의 뒤편으로 밝게 빛나는 세 개의 큰 창, 자연채광이다. 이는 르네상스 미술이 과학적 사고에 바탕을 둔 합리성과 객관성을 강조한 점과 궤를 같이한다. 다빈치는 또 수학적 비율에 의한 원근법과 공간감을 조성해 르네상스 정신을 충실히 실천했다. 그림의 양 벽면을 보자. 실제 공간 속에 우리가 서 있는 것처럼 원근법 효과가 뛰어나다. 다빈치는 원근법의 소실점을 예수의 머리로 설정해 그림의 주인공이 예수임을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모나리자’를 통해 완벽하게 구현한 스푸마토 기법도 일부 나타난다. 예수 뒤 창문 밖 배경에서 확인된다. 대기원근법으로도 불리는 스푸마토 기법은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의 테두리가 실제 사물처럼 뚜렷하지 않고 거리가 멀어질수록 점점 희미해지는 현상이다. 그림의 사실성을 뒷받침하는 과학적인 묘사방법이다.
그러나 다섯 가지 관점에서 살펴본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도 흠결이 있다. 보관성이 뛰어난 프레스코 벽화가 아니라 안료를 달걀노른자에 갠 템페라 기법으로 그려 탈색과 손상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물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후 완성까지 오랜 구상이 필요한 다빈치의 작업 특성상 회벽이 마르기 전에 빠르게 제작을 끝내야 하는 프레스코 기법을 선택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림 보존에 치명적인 약점을 지닌 템페라로 그린 데다 벽화 장소가 채광과 통풍에 약한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옆 수도원 식당이란 점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이후 복원과정에서 오류와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의 후유증까지 겹쳐 그림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결국 1977년 말부터 1999년까지 22년에 걸친 대대적인 복원사업 끝에 어렵사리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되찾게 됐다.

박인권 문화칼럼니스트_ PIK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전 <스포츠서울> 문화레저부 부장과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팀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와 사랑에 빠진 그림> <미술전시 홍보, 이렇게 한다>, 미술 연구용역 보고서 ‘미술관 건립·운영 매뉴얼’ ‘미술관 마케팅 백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