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미국의 25%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은 자동차 산업 구제에 나섰다. 2조 원 규모의 정책 자금을 지원해 유동성 확보를 돕는 한편 전기차 보조금 확대, 신차 구매 시 개별소비세 인하 등을 통해 내수 진작을 유도한다.
정부는 4월 9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개최된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대책을 발표했다. 자동차 및 부품 산업은 우리나라 대미 수출 1위 품목이다. 그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관세 없이 수출해온 터라 미국발 관세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긴급 유동성 지원을 위해 자동차 산업에 정책금융 2조 원을 추가 공급한다. 13조 원 수준인 2025년 정책금융 지원금을 15조 원으로 확대한 것이다. 정책금융 지원금은 추후 소진율과 기업 수요 변화 등을 고려해 추가로 공급할 수 있다. 현대·기아차도 정부 지원에 뜻을 모았다. 금융권 및 기술보증기금·신용보증기금·한국무역보험공사와 함께 1조 원 규모의 상생 프로그램을 구성해 협력사의 대출·보증·회사채 발행을 돕는다.
정부는 관세 피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긴급경영안정자금 지원도 확대한다. 관세 피해 기업이 법인·부가·소득세 납부기한 연장 신청 시 최대 9개월 연장, 관세는 최대 1년 연장해 조세부담을 덜어준다. 최신 관세 부과 정보에 대한 중소기업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관세대응 119(코트라)’와 ‘애로신고센터(전국 중소기업청)’를 운영한다.
수요 진작, 신 시장 개척 등 통해 충격 완화
정부는 관세 부과로 수출 물량이 줄어들고 그 여파로 국내 생산 기반이 흔들리는 것을 막는 데도 힘쓴다. 제조사 할인 금액에 연동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전기차 보조금 제도는 2025년 상반기에서 연말까지 연장한다. 정부 매칭 지원 비율도 20~40%에서 30~80%로 확대한다. 6월까지 시행 중인 신차 구매 개별소비세 탄력세율(5%→3.5%) 적용도 필요시 기간을 늘려 운영할 수 있다.
판로 다변화를 위해 글로벌사우스(적도 인근과 남반구의 신흥시장) 등 신 시장 진출도 지원한다. 아랍에미리트(UAE)와의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에콰도르와의 전략적경제협력협정(SECA)이 2025년 내 조기 발효될 수 있도록 추진한다. 협정이 발효되면 UAE 관세(5%)는 10년 내, 에콰도르 관세(최대 40%)는 15년 내 철폐된다. 멕시코와 FTA 협상 재개도 추진한다. 수출 바우처 예산을 2400억 원에서 1000억 원 이상 추가 확대하고 무역보험 지원 확대(한도 최대 두 배 상향 및 단기수출보험료 60% 할인) 기간을 6월 말에서 연말까지로 연장한다.
국내 투자환경을 개선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정책 지원도 강화한다. 자율주행기술을 국가전략기술로 추가 지정해 미래기술 연구개발(R&D) 및 시설투자에 나선 기업들에 세액공제를 확대한다. 친환경 산업 전환 필요성을 감안해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내 조세특례가 적용되는 자동차 청정생산시설 범위를 도장에서 의장, 차체 등 여타 생산 공정까지로 확대한다.
현대차는 전기차 전용공장 시설투자, 전동화 등에 24조 3000억 원의 투자 계획을 2025년 발표했다. 정부는 이를 비롯한 기업 투자들이 문제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투자 지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밀착 지원할 예정이다.
레벨4 이상 자율주행차 판매를 허용하고 상반기 중 자율주행 통합 기술 로드맵, 3분기 중 미래차 부품산업 기본계획을 수립해 국내 미래차 생태계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자율주행 등 첨단 기술 확보와 미래차 핵심부품 공급망 확충에도 5000억 원을 조기에 집중 투자한다.
대미 협상력 강화 위해 의제 지속적 발굴
동맹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관세 여건 확보에도 나선다.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경제안보전략 TF’ 등 회의체를 통해 대미 전략을 재정비하고 협상 의제를 지속적으로 발굴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법령·제도 개선 등을 조속히 추진하고 이행 상황을 점검할 계획이다. 아울러 관세 피해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4월 3일 서울 종로구 국무총리공관에서 주재한 ‘제3차 경제안보전략 TF’ 회의에서 미 상호 관세와 관련해 자동차 산업에 대한 긴급 지원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예고했다. 이날은 미국의 상호 관세 조치가 발효된 날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월 26일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은 자동차 및 차량 부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자동차·부품은 우리나라 대미 수출 1위 품목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4년 자동차 수출액 707억 8600만 달러 중 미 수출분은 347억 4400만 달러로 전체의 49.1%를 차지했다. 부품의 대미 수출액 비중은 36.5%로 자동차 다음으로 높았다. 그간 정부는 간담회 및 현장 방문 등을 통해 업계와 긴밀히 소통해오는 한편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안덕근 장관이 미국을 방문하는 등 다방면으로 대책 마련을 위해 힘쓰고 있다.
고유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