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체왓숲길은 한라산을 배경으로 한 광활한 초지에서 시작된다.
숲은 이제 치유의 공간이다. 치유의 숲은 자연의 풍경, 향기, 소리, 공기, 감촉 등을 활용해 인체 면역력을 높인다. 코로나19로 지친 몸과 마음을 숲에서 회복하자. 집 주변 숲이면 어디든 좋다. 신선이 되려면 숲으로 가자.
▶각종 나무와 화산 바위가 어우러진 머체왓숲길
‘숲’은 ‘수풀’의 준말이다. 나무와 풀이 무성한 곳이 숲이다. 인간은 애초 숲에서 살았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약 700만 년 전부터 사냥을 하며 숲을 본거지로 살다가 1만 년에서 5000년 전에 농경사회가 되며 숲에서 나왔다고 본다. 인간이 농경사회로 진입했다는 것은 수렵 채취를 하며 이동하면서 살다가 정착하며 공동체 생활로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오랜 인류 역사에서 인간이 숲에서 탈출해 산 시기는 비교적 짧은 시간이다.
인간의 유전자 속에 진하게 새겨진 숲에 대한 잔영 때문일까? 현대 물질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의 숲을 향한 그리움은 커져만 간다. 특히 각종 현대 질병의 치유에 숲이 큰 역할을 하며 인간이 스스로 탈출한 숲에 대한 갈망은 여러 형태로 구체화되고 있다.
애초 인간은 숲속에 살면서 평안했다. 숲과 관련된 한자를 파자(破字)해보자. 쉴 ‘휴(休)’ 자는 인간이 나무에 기댄 모습이다. 휴식은 인간이 나무에 기대어 쉰다는 의미다. 큰 나무뿌리에 등을 대고 누워 책을 보는 순간을 떠올리자. 신선 ‘선(仙)’ 자는 인간이 산에 있는 모습이다. 인간이 산에서 살면 마치 신선처럼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숲의 주요 구성인자인 나무와 풀은 광합성 작용을 하며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뿜어낸다. 반면 인간은 호흡을 하며 이산화탄소를 내뿜고 산소를 들이마신다. 서로 필요로 하는 것을 보완할 수 있다. 나무와 인간은 가까이에 있으면 서로 도와줄 수 있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넓은 초지 위에서 제주 말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숲이인간에게 가져다준 이로움
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는 주성분이 테르펜이라는 유기화합물. 이 물질을 마시면 인간은 몸과 마음에 쾌적함을 느낀다. 피로 해소가 촉진된다. 식물이 호흡 작용을 할 때 내뿜는 음이온은 산성화되기 쉬운 인간의 신체를 중성화하는 기능을 한다. 음이온은 뇌파의 알파파를 증가시켜 마음을 안정시킨다.
숲의 산소량은 도시의 공기 중 산소 농도보다 1~2% 정도 높다. 산소 농도가 짙으면 신진대사와 두뇌 활동을 촉진한다. 숲에서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면 소화가 잘되고 평소보다 잘 취하지 않는 이유다.
숲의 초록색은 눈의 피로를 풀어준다. 숲에서 발생하는 소리도 인간을 편안하게 만든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의 숲 소리는 인간 신체에 안정감을 준다. 숲에서 들을 수 있는 은은한 바람 소리와 졸졸 흐르는 계곡물 소리는 쾌적함과 평안함을 준다. 또 나뭇잎이 여과기 역할을 한 간접 햇빛은 뼈를 튼튼하게 하고 세포의 분화를 돕는 비타민D 합성에 필수적이다.
숲이 인간에게 주는 이로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숲에서는 인체에 해로운 자외선을 차단하는 효과가 뛰어나 오랜 시간 야외 활동이 가능하다. 햇빛은 세로토닌을 촉진시켜 우울증을 예방하거나 치료한다. 숲속을 그냥 걷기만 해도 스트레스나 우울증, 고혈압, 아토피, 주의력 결핍 등의 질환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옛날 숲을 누비며 뛰어다니던 우리네 조상의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상상해보자.
▶머체왓숲길의 높다란 나무들
돌무더기 땅에서 나무들 자라 이룬 숲
이제 현실로 돌아와 제주의 숲길을 걸어본다. 원시림으로 유명한 제주의 숲길은 여러 곳이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에 나오는 듯한 오래된 나무들이 눈길을 끄는 비자림, 쭉쭉 뻗은 참나무와 삼나무가 매혹적인 사려니숲길 등은 제주의 명품 숲길이다. 제주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한 번쯤 걸어본 숲길이다. 제주 화산의 원시림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곶자왈숲길은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생태계를 경험할 수 있다. 이번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제주 특유의 느낌을 주는 편한 숲길을 가보자. 이름도 생소한 머체왓숲길이다.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에 위치한 머체왓숲길은 머체오름 동남쪽 중산간에 조성돼 있다. ‘머체’는 돌이 무더기로 쌓인 곳을, ‘왓’은 밭을 가리키는 제주 방언이다. 척박한 ‘돌밭’을 의미한다. 옛날 이 부근에 ‘머체골’이라는 작은 마을도 있었다. 머체오름은 지형이 말 모양(馬體)이라 그리 불린다는 전설도 있다. 이 숲길은 2012년 개방됐다.
숲길이 인간에게 주는 다양한 혜택을 생각하며 돌무더기 땅에서 나무들이 자라 울창한 숲을 이룬 머체왓숲길을 걸어보자. 머체왓숲길은 한남리 방문객지원센터에서 출발해 머체오름과 서중천을 끼고 돌아오는 총 6.7㎞ 길이의 코스다. 코스를 다 돌아보는 데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목장길을 거쳐 울창한 숲을 가로지르며 느긋하게 제주도 특유의 짙은 숲을 즐길 수 있다. 제주 말로 “놀멍, 쉬멍, 걸으멍(놀며, 쉬며, 걸으며)”이다.
▶푸른 이끼가 시간의 무상함을 일깨운다.
방목 중인 말과 소들 평화롭게 노닐고
마스크를 쓰고 있는 돌하르방이 반갑게 인사하는 방문객지원센터 뒤편의 숲길 입구를 지나면 방목 중인 말과 소들이 평화롭게 노니는 초지를 지난다. 배경에는 한라산이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다. 초지 언덕 한가운데에 운치 있는 나무 한 그루가 홀로 서 있다. 나무 아래에는 나무 의자 2개가 놓여 있다. 서두르지 말고 잠시 앉아 눈을 감고 자연의 소리를 들어보자. 마음의 편안함이 찾아온다. 초지를 가로지르면 낮에도 어두컴컴한 숲길이 시작된다. 불규칙하게 쌓인 돌 위로 짙은 이끼와 숲이 자라는 특이한 풍광을 만날 수 있다. 바위와 나무뿌리가 서로 엉켜 시간을 잡아먹으며 존재한다. 진입로에 들어서자 시비가 있다. 제주의 아픔인 제주4·3사건이 배경이다. 오승철 시조시인의 시구가 아픈 현대사를 대변한다.
▶머체왓숲길 중간에 있는 돌 조형물
“홀연히/일생일획/긋고 간 별똥별처럼/한라산 머체골에/그런 올레 있었네/예순 해 비바람에도 삭지 않은 터무니 있네//그해 겨울 하늘은/눈발이 아니었네/숨바꼭질하는 사이/비잉 빙 잠자리비행기/……//이제라도 자수하면 이승으로 다시 올까/할아버지 할머니 꽁꽁 숨은 무덤 몇 채/ 화덕에 또 둘러앉아/ 봄 꿩으로 우는 저녁”
울창한 나무가 강한 제주 햇볕을 막아준다. 작은 계곡을 만났다. 기다란 바위가 마치 용처럼 육중하게 계곡을 막고 있다. ‘소룡(小龍)의 사랑’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형제 용 두 마리가 한라산 화산이 폭발한 줄도 모르고 신나게 떠들다가 용암에 뒤덮여 바위가 돼버렸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지친 몸, 숲에서 치유를
편백나무 숲길이 나타난다. 넓은 숲속에 편백나무가 줄지어 심어져 있다. 편백나무 사이로 제주의 바람이 흐른다. 이번에는 삼나무 숲길이다. 쭉쭉 뻗은 삼나무가 켜켜이 쌓인 세월을 느끼게 한다. 제주에서 세 번째로 긴 하천인 12km의 서중천 계곡이 나온다. 계곡을 따라 울창한 원시 자연의 숲이 이어진다. 숲의 터널은 아늑하다. 곳곳에 자리 잡은 용암 바위에 앉아 맛있는 산소를 들이마시자. 그냥 마시지 말고 입 안에서 조금씩 씹어서 넘기자. 산소가 입 안에서 터지는 알싸한 느낌을 놓쳐서는 안 된다.
머체(돌)와 동백나무, 참식나무, 생달나무, 새덕이, 가시나무, 조록나무, 사스레피나무 등이 숲길을 다양하게 구성한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하지 않고, 부드러운 흙이 많아 가벼운 운동화로도 제주 숲길을 만끽할 수 있다. 혹시 길을 잃으면 나무줄기에 묶여 있는 노란 리본을 찾아야 한다. 숲이 깊고, 오가는 이가 적어 당황할 수 있다.
숲은 이제 치유의 공간이다. 치유의 숲은 자연의 풍경, 향기, 소리, 공기, 감촉 등을 활용해 인체 면역력을 높인다. 코로나19로 지친 몸과 마음을 숲에서 회복하자. 집 주변 숲이면 어디든 좋다. 신선이 되려면 숲으로 가자.
이길우_ <한겨레신문> 창간 작업에 참여해 34년간 취재기자로 활동했다. 한민족과 이 땅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찾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한민족의 무예, 공예, 민간신앙 등을 글과 사진을 통해 꾸준히 발굴·소개한다. 저서로 <고수들은 건강하다>, 사진집 <신과 영혼의 몸짓 아첼레란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