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들레국수집에서 도시락과 간식거리를 담은 봉투를 받은 노숙인이 먹을 곳을 향해 가고 있다.
5년을 신은 운동화다. 걸을 때마다 뒤꿈치 쪽이 나풀거렸다. 오래 신다 보니 낡은 탓이다. 노숙 생활을 하며 많이 걸었다. 매일 무료 급식하는 곳을 찾아다녀야 했다. 사업에 실패하고 가정이 깨지고 노숙을 시작한 지 5년이 됐다. 노숙을 시작할 때부터 신은 운동화다. 너덜너덜한 운동화 모습이 스스로 봐도 애처롭다. 오늘은 정들었던 그 낡은 운동화와 작별하는 날이다.
유명 브랜드의 새 신발을 신었다. 가뿐하다. 노숙인 조동진(66·가명) 씨가 새 운동화를 신은 이유는 수명을 다하고도 주인을 벗어나지 못하는 운동화를 안타까워한 서영남(67) ‘민들레국수집’ 대표의 관심 때문이다. 서 대표는 자신의 누리소통망(SNS)에 조 씨의 슬리퍼처럼 변한 운동화 사진을 올렸고 한 인터넷 친구가 새 운동화를 즉각 보내줬기 때문이다.
4월 13일 인천시 동구 화수동에 자리한 무료 급식소인 민들레국수집을 찾은 조 씨는 도시락과 함께 새 운동화를 선물 받고 환하게 웃었다. 이날 조 씨가 받은 도시락 봉투에는 돼지고기볶음 반찬이 포함된 도시락 외에 컵라면, 과자, 빵, 마스크, 생수 등이 가득 들어 있었다. 간식과 저녁 식사까지 감안한 내용물이다. 또 흰 봉투도 있다. 봉투 안에는 1000원짜리 5장이 들어 있다. 하루 종일 폐지를 주워 팔아도 벌기 힘든 ‘큰돈’이다. 고맙다.
매일 200여 명 노숙인에게 무료 급식
매일 오전 민들레국수집 앞에는 200여 명의 노숙인이 모여든다. 전철을 타고 멀리서 온 노숙인도 있다. 대부분의 무료 급식소에서는 배식을 기다리며 줄을 서지만 이곳은 줄을 서지 않는다. 도착 순서에 관계없이 ‘약자’부터 배식하기 때문이다. 줄을 서지 않는 이유는 서로를 배려하기 때문이다.
서영남 대표는 “어제 하루 종일 식사를 못 하신 분부터 배식한다”고 노숙인들에게 양해를 구했고 노숙인들끼리 양보하는 것이 전통이 됐다. 또 여성과 나이 든 분부터 배식을 했다. 기다려도 먹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다. 서 대표는 “배식을 위해 줄을 세우면 통제하긴 쉬우나 인격적인 대우를 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줄을 서면 사나워진다. 새치기하는 이가 있으면 욕하고 싸운다. 힘없고 약하고 어려운 이들을 먼저 도우면 사람들이 착해진다”고 말한다.
노숙인들만 오는 것이 아니다. 달동네인 이곳에 사는 노인들도 도시락을 받으러 온다. 민들레국수집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 혼자 사는 김경희(87) 할머니는 민들레국수집이 생길 때부터 이웃이다. 김 할머니는 항상 노숙인들에게 배식을 마칠 무렵 나타난다. 노숙인들을 위한 배식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서 대표는 남아 있는 도시락을 받아들고 집으로 향하는 김 할머니의 말동무가 된다. 골목 한쪽에 자리 잡은 김 할머니 집은 이층집. 그러나 아슬아슬한 이층집이다. 애초 큰 집이었으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생활비가 없어 땅을 잘라 팔다 보니 토막 난 이층집이다. 마치 싹둑 잘린 시루떡 모양이다. 비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몸 하나 간신히 누울 수 있는 공간만 남아 있다. 그나마 민들레국수집에서 만들어주는 점심 도시락이 일상의 적적함을 위로해준다.

▶민들레국수집에서 받은 도시락 봉투에서 나온 여러 먹거리와 마스크, 그리고 운동화

▶한 노숙인이 오래된 운동화를 벗고 민들레국수집에서 받은 새 운동화를 신고 있다.
25년간 수도원서 지내다 47세에 환속
민들레국수집이라고 국수를 배식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국수를 말아 노숙인에게 배식했다. 그러나 보름 만에 국수를 포기했다. 국수 한 그릇으로는 노숙인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 대표는 이미 공중파 텔레비전 인기 프로그램인 <인간극장>에 세 차례나 소개된 유명인. 이곳뿐만 아니라 필리핀의 빈민가에서도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25년간 수도원 평수사였던 서 대표가 47세에 환속해 18년간 빈민 구제 활동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속세에서 예수님 흉내 내며 살고 싶었어요. 가난하게 사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틈에서 가난하게 살면 착해지고 겁도 없어져요.”
서 대표는 처음 9.9㎡(약 3평) 공간에 식탁 하나 놓고 민들레국수집을 열었다. 또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을 위한 민들레꿈공부방을 열었다. 아이 때부터 따뜻한 식사를 주고 잘 돌보면 제대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방은 딸 모니카(세례명)가 담당한다. 그다음엔 민들레희망센터를 열었다. 노숙인들이 쉴 수 있고 독서와 공부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샤워도 할 수 있고 빨래도 할 수 있다. 옷을 기증받거나 새 옷을 싸게 사서 그들에게 제공한다. 몸에서 냄새가 나면 직장을 얻기도 어렵다. 국제결혼을 한 주부들을 위한 상담 교실도 운영한다. 민들레희망센터는 부인 베로니카(세례명)가 담당한다.

▶민들레국수집은 노숙인뿐 아니라 가난한 노인들도 단골손님이다.

▶민들레국수집에서 도시락을 받은 김경희 할머니가 사는 집. 애초 큰 이층집이었으나 생활고로 땅을 팔며 잘려나가 지금의 좁은 공간만 남았다.
기업체·정부 없이 일반인 기부로만 운영
서 대표는 식당을 찾아온 노숙인들을 ‘우리 손님’이라고 부른다. 서 대표의 손님 대접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절대 무너지지 않는 원칙이다.
“민들레국수집은 큰 기업체로부터 후원을 안 받아요. 또 정부나 공공단체로부터 후원도 안 받아요. 재단의 지원 프로그램에도 공모하지 않아요. 1,000명 남짓한 개인 후원자가 한 달에 5,000원에서 1만 원 정도의 후원비를 꾸준히 보내줍니다. 후원비는 이곳과 필리핀 민들레센터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먹고살 수 있을 정도 됩니다.”
또 많은 일반인이 이름 없이 라면과 쌀, 빵, 과일 등을 보내준다. 신기하게도 지난 18년간 쌀이 떨어져 배식을 못 한 적이 없다. 서 대표는 “하루하루가 기적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동안 큰 독지가가 몇 번 나타났다. 재벌 회장이 직접 와서 식사하고 재단을 만들어준다고 제안했다. 거절했다. 왜 그랬을까?
“예수님은 내가 희생하고 아끼는 것으로 남을 도와야 한다고 했어요. 배고픈 이들이 정말 필요한 것은 사람대접이고 따뜻한 마음입니다.”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에 서 대표와 부인, 딸은 교도소로 향한다. 이른바 ‘법자(法子)’로 불리는, 아무 연고가 없고 오로지 법무부와 관계가 있는 교도소 수형자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40년째다, 교정 사목을 시작한 지. 경북북부교도소에서 사형수와 무기수, 장기수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영치금을 전달한다.

▶18년째 무료 급식소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고 있는 서영남·베로니카 부부

▶민들레국수집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뒷줄의 가족(자원봉사자)들은 민들레국수집을 통해 재활을 한 노숙인이 대부분이다.
노숙인 재활 방법도 함께 고민
서 대표는 말한다. “한국 천주교를 시작한 성인은 모두 교도소 출신입니다.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고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고 포교를 했어요. 예수님도 교도소의 사형수 신분이었어요.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 가운데 아무도 면회 오지 않고 영치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이들이 10%입니다. 1만 원이 일반인에겐 별것 아니지만 감옥에 있는 이들에겐 큰돈입니다.”
서 대표는 지난해 교정대상 자애상을 수상하며 받은 상금 전액을 ‘교도소 형제’들에게 영치금으로 나눠주었다. 1인당 3만 원씩 130명에게 영치금을 준 것이다.
서 대표는 식당에 온 노숙인들에게 조금의 선교 활동도 하지 않는다. “밥 한 끼 대접하면서 포교 활동을 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입니다.” 서 대표는 노숙인들에게 단순히 먹을 것만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재활 방법을 찾았다. 노숙인들에게 독후감을 쓰게 하고 그것을 발표시켰다. 왜 그런 어려운 숙제를 냈을까?
“노숙인들은 말이 없어요.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기 때문이죠. 시간이 지나면 말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사회에서 점점 더 소외됩니다. 그들에게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 하고 그것을 남들 앞에서 큰 소리로 읽게 했어요. 그런 숙제를 하면 3000원을 주었죠. 처음엔 남들 앞에서 벌벌 떨며 독후감을 읽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말하는 기술을 되찾았어요. 그것이 그들이 사회에 복귀하는 무기가 된 것입니다.”

이길우_ <한겨레신문> 창간 작업에 참여해 34년간 취재기자로 활동했다. 한민족과 이 땅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찾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한민족의 무예, 공예, 민간신앙 등을 글과 사진을 통해 꾸준히 발굴·소개한다. 저서로 <고수들은 건강하다>, 사진집 <신과 영혼의 몸짓 아첼레란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