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본고장 프랑스 파리에는 전 세계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즐비하다. 루브르 박물관처럼 초대형 국립 뮤지엄이 있는가 하면 규모는 크지 않지만 미술사를 빛낸 보석 같은 명화들을 간직한 유서 깊은 미술관들도 곳곳에서 문화적 위용을 뽐내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이 있는 1구역을 중심으로 시계 방향으로 늘어선 파리시의 20개 행정구역 중 16구 소재 거대한 삼림공원인 불로뉴 숲 인근의 루이 브왈리 거리에 있는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은 대표적인 강소 미술관이다. ‘수련’ 연작으로 유명한 클로드 모네 컬렉션은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의 자랑을 넘어 파리 시민들의 자부심이다. 인상주의 그림의 효시인 ‘인상, 해돋이’(1872)를 비롯해 약 100점으로 구성된 모네 컬렉션은 세계 최대 규모다.
별장에서 시작된 마르모탕 미술관의 역사
미술관 명칭에서 나타나듯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의 유래는 미술품 수집가였던 쥘 마르모탕(1829~1883)·폴 마르모탕(1856~1932) 부자에서부터 시작된다.
마르모탕 부자 이야기에 앞서 언급해야 할 인물이 있다. 바로 미술관 건물의 원소유주인 발미 전투의 영웅 크리스토퍼 켈러만(1735~1820) 장군이다. 불로뉴 숲속에서 사냥하는 것을 좋아했던 켈러만 장군은 사냥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휴식을 취할 공간이 필요해 숲 서쪽 끝자락에 별장을 지었는데 이 별장이 다름 아닌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의 전신이다. 켈러만 장군이 올린 혁혁한 전과를 높이 산 나폴레옹 황제(1771~1821, 재위 1804~1815)는 1808년 그를 발미 공작에 봉했다.
켈러만 장군이 죽고 유족과 후손들이 관리하던 별장은 1882년 새로운 주인에게 넘어간다. 그 주인이 쥘 마르모탕이다. 석탄 광산채굴로 많은 돈을 번 쥘 마르모탕은 열렬한 미술 수집가였는데 자신이 오랫동안 수집한 미술품들을 제대로 보관하고 언제든지 편안하게 감상할 목적의 저택 겸 수장고로 사용하기 위해 켈러만 장군의 별장을 사들인 것이다.
별장 구매 1년 후 쥘 마르모탕이 사망하자 아들 폴 마르모탕이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폴은 재력과 함께 이론적으로 무장한 조예가 깊은 예술품 컬렉터이자 후원자 겸 덕망 있는 역사가였다. 아버지가 저택으로 사용하던 별장을 개조 및 증축하고 상속받은 컬렉션에 더해 자신이 수집한 프랑스 제1 제정기(1804~1814) 때의 회화와 조각, 가구, 청동 제품, 도자기 등 다양한 개인 컬렉션을 이곳으로 옮겨왔다. 폴은 76세로 사망하던 해인 1932년, 미술관 설립을 희망한다는 유지(遺志)와 함께 소장하고 있던 모든 컬렉션과 별장 건물을 프랑스 국립학술원 소속 미술 아카데미에 기증했다. 미술관으로 리모델링을 끝낸 지난 1934년, 별장 건물을 가득 채우고 있던 마르모탕 가문의 컬렉션이 대중들에게 공개됐다. 마르모탕 미술관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으로 외연 확장
쥘 마르모탕이 켈러만 장군의 별장을 매입한 지 52년이 지나고 국립미술관으로 닻을 올린 마르모탕 미술관은 1957년과 1966년, 두 차례의 대규모 기증을 통해 소장품의 외연 확장과 함께 명품 미술관으로 거듭났다. 오늘날 300점이 넘는 인상주의 그림과 세계 최대 규모의 모네 컬렉션을 미술관의 자산으로 구축하게 된 전기가 두 차례의 기증으로 마련됐다.
먼저 1957년에 이뤄진 기증은 루마니아 태생의 의사 조르주 드 벨리오(1828~1894)의 후손에 의해 이뤄졌다. 벨리오는 클로드 모네(1840~1926)의 주치의이자 후원자였다. 모네가 경제적으로 힘든 시절에 모네의 그림을 앞장서 사주는 후원자 역할을 자처한 벨리오는 인상주의 화풍에 대한 세간의 혹평을 반박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인상, 해돋이’도 이때 기증된 작품이다.
기증품 목록에는 모네의 작품 20여 점뿐 아니라 마네(1832~1883)와 피사로(1830~1903), 시슬레(1839~1899), 르누아르(1841~1919) 등 다른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도 포함됐다.
1966년, 두 번째 기증의 주인공은 모네의 차남 미셸 모네(1878~1966). 모네의 유일한 상속자였던 미셸은 88세로 세상을 떠나던 해에 유증(遺贈)을 통해 80점의 유화와 파스텔 그림, 드로잉 등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미술품을 프랑스 학술원 내 미술 아카데미에 기증했다. 기증된 미술품은 어린 시절부터 아틀리에와 정원을 갖춘 저택이었던 지베르니에서 말년 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네의 일생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유증 절차가 마무리된 미술품이 마르모탕 미술관으로 이관된 뒤 1970년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으로 명칭이 변경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인상주의 회화와 마르모탕 가문 컬렉션이 중심
모네 그림만을 위해 특별설계한 미술관 지하 1층 전체가 모네 그림으로 디스플레이 돼 있다. 모네의 작업 전모를 연대기식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파노라마 형식으로 작품배치가 이뤄졌다. 모네를 비롯한 인상주의 회화와 마르모탕 가문의 컬렉션이 중심을 이루는 미술관 소장품에는 눈여겨볼 게 또 있다. 중세 및 르네상스 시대에 제작된 진귀한 채색 사본 컬렉션과 마네의 그림 속 모델이자 마네의 동생 외젠 마네(1833~1892)의 아내인 베르트 모리조(1841~1895) 컬렉션이다.
채색 사본 컬렉션은 중세시대 유럽에서 양피지(羊皮紙)나 종이에 필사한 글과 그림, 금·은박으로 장식한 수제 책을 말한다. 제작 시기가 오래되고 수작업으로 화려하게 만들어진 희귀성 때문에 값진 사료로 평가된다. 1981년, 프랑스의 유명한 미술상인 빌덴스타인 가문의 후손 다니엘 빌덴스타인(1917~2001)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13세기~16세기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플랑드르에서 제작된 300여 점의 채색 사본을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에 기증했다. 다니엘의 아버지 조르주 빌덴스타인(1892~1963)은 20세기 초중반,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품판매상으로 그가 수집한 채색 사본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베르트 모리조의 그림들은 1993년 모리조와 외젠 마네의 후손이 기증했다. 모리조의 그림 25점 외에 마네, 에드가르 드가(1834~1917),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1796~1875) 등 인상파 화가들의 회화와 판화, 드로잉이 포함됐다.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의 모리조 컬렉션은 현재 유화, 파스텔화, 수채화, 소묘 등 총 80여 점으로 구성돼 있다.
‘인상, 해돋이’, ‘수련’ 연작, 미술관 간판 컬렉션
모네 컬렉션은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을 대표하는 간판 컬렉션이다. 그중 미술사적으로나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인상주의의 탄생을 알린 ‘인상, 해돋이’와 ‘수련’ 연작이다. 모네는 거의 30년 동안 250여 점의 ‘수련’ 연작을 남겼다.
‘인상, 해돋이’는 모네를 인상주의의 창시자 또는 선구자로 만든 그림이다. 인상주의 미술사조 탄생에 산파 역할을 한 이 그림을 그렸을 때 모네의 나이는 불과 32세. 현대미술의 아버지 폴 세잔이 ‘신의 눈의 소유자’라고 극찬한 모네의 자연현상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이 꽃망울을 터뜨린 그림이다. 세부 묘사를 생략한 과감한 붓 터치와 두 겹, 세 겹의 채색을 통해 빛의 변화와 움직임을 캔버스에 이식하는 데에 성공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림의 배경은 대서양을 바라보고 있는 프랑스 서북부의 항구도시 르아브르의 일출 모습이다. 르아브르는 모네의 고향으로 도시 왼쪽으로 흐르는 센강을 통해 파리로 나가는 관문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18세기 프랑스 해상무역의 허브로 번성하기도 했다.
르아브르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모네는 햇빛과 대기, 파도가 연출해내는 변화무쌍한 바닷가 날씨를 호기심 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자랐다. 바닷가 특유의 신출귀몰한 기상 상태를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던 모네의 성장환경은 훗날 그가 자연풍경, 특히 빛의 변화에 따른 색깔과 형태의 변주에 탐닉한 인상주의 미술사조의 선구자가 되는 데에 자양분이 됐다.
이른 아침, 항구의 풍경을 그린 이 그림은 거친 붓질과 그리다 만 듯한 형태, 안개를 머금은 색채 구사 등 모네가 추구한 빛의 속성을 사실적이고 미학적으로 구현한 결실이다.
‘수련’ 연작은 모네가 평생 매달린 시리즈 작업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유명세와 함께 뛰어난 예술성을 갖춘 수작 중의 수작으로 평가된다. 모네는 1883년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약 80km 떨어진 지베르니 마을에 정착해 죽을 때까지 머물렀다.
‘수련’ 연작은 지베르니에 대규모 정원과 연못을 조성하고 아틀리에 확장 공사를 끝낸 1897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해 86세로 생을 다할 때까지 정열을 바친 일생일대의 과업이었다. 모든 물체의 색은 물체 그 자신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물체의 색은 빛이 만들어낸 결과다. 물체의 색은 빛이 물체에 부딪히면서 일부는 통과하고 일부는 반사되면서 생성된 것이다.
모네가 형형색색의 마법을 가능하게 하는 빛의 신비성을 파헤치는 대상으로 수련을 선택한 이유는 아침에 피고 해 질 무렵에 지는 수련 꽃잎의 특성 때문이었다. 햇빛의 강도와 햇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수시로 달라지는 물체의 색깔과 형태를 관찰하기에 수련은 최적의 조건을 갖춘 식물이었다.
박인권 문화 칼럼니스트_ PIK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전 <스포츠서울> 문화레저부 부장과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팀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와 사랑에 빠진 그림> <미술전시 홍보, 이렇게 한다>, 미술 연구용역 보고서 ‘미술관 건립·운영 매뉴얼’ ‘미술관 마케팅 백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