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대륙 북동부, 뉴욕주의 남쪽 끝자락에 있는 항구도시 뉴욕은 미국 내 최대 도시다. 세계 무역, 금융, 통신, 외교, 패션, 미디어, 교육, 문화예술, 관광, 엔터테인먼트의 허브 도시로 세계의 수도로 불린다. 뉴욕은 다양한 인종이 모여있는 다민족 도시이자 초고층 건물들이 즐비한 마천루의 도시이기도 하다. 미국의 수도는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이지만 미합중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메트로폴리스로 전 세계에서 지명도가 으뜸인 도시는 뉴욕이다.
뉴욕은 특히 2차 세계대전 후 현대미술의 심장으로 부상하면서 명품 문화도시로 거듭났다. 문화도시 뉴욕을 상징하는 건축물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대표적인 명소로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을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 영국의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뮤지엄으로 손꼽히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미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미술관으로 5000년 인류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곳이다.
1870년에 개관한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1759년에 문을 연 대영박물관(7만 5000㎡, 2만 2687평)이나 1793년 궁전에서 박물관으로 변신한 루브르박물관(7만 3000㎡, 2만 2000여 평)보다 역사가 짧지만 전시장 연 면적(18만 5806㎡, 5만 6206평)에서는 두 박물관을 압도한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건립의 불쏘시개, 존 제이 2세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태동은 미국 독립 90주년 기념일에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됐다. 1866년 7월 4일, 미국 독립 90주년 기념일인 이날 파리에서는 이듬해 개최될 파리만국박람회 사전점검을 겸한 독립자축 행사가 열렸다. 파리주재 명망 있는 미국 인사들과 미국 정부 대표단이 참가한 행사 도중 의미심장한 제안이 한 인물에 의해 제기됐다. 제안의 주인공은 변호사이자 외교관으로 활동하던 존 제이 2세(1817~1894)였다. 존 제이 2세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초대 미 대법원장을 지낸 존 제이(1745~1829)의 손자다.
제안의 내용은 미국의 자존심 회복, 실행방안은 미술관 건립이었다. 당시 존 제이 2세가 한 발언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국력으로만 볼 때 미국은 프랑스 등 유럽에 전혀 손색이 없다. 단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국민 역량의 총화인 문화다. 역사가 길지 않은 미국의 태생적인 한계로 치부하기에는 우리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미국인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문화의 보고, 문화의 상징인 미술관이다.”
존 제이의 애국적 발언은 단숨에 참석자들을 사로잡았고 미술관 건립의 불씨는 미국 본토에서 본격적으로 점화됐다. 건립 준비는 존 제이가 회장을 맡은 뉴욕 유니언 리그 클럽이 주도했다. 사업가와 문화애호가, 예술인, 사회지도층 인사 등을 회원으로 둔 유니언 리그 클럽은 미국의 대표 도시 뉴욕 한복판에 국가와 국민의 자긍심을 드높일 미술관을 세우기로 합의하는 등 일사천리로 계획을 진행해 나갔다. 1870년 4월 13일 마침내 뉴욕 5번가 도드워스 건물 1층에서 역사적인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개관식이 열렸다.
민간 주도로 건립된 미술관의 과거와 현재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순수 민간주도형 미술관이라는 점이다. 루브르박물관이나 에르미타주미술관, 대영박물관처럼 세계 굴지의 뮤지엄들은 궁전을 모태로 국립미술관으로 탈바꿈했거나 처음부터 국가 주도로 설립된 미술관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도 민관의 협업 방식을 거쳤지만 건립 주체는 빌바오시와 주정부, 중앙정부 등 관이 중심이다.
그런 점에서 시민참여형 민간 미술관인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도움 없이 설립부터 성장까지 세계 정상급의 뮤지엄으로 자리매김한 점은 분명 미술사에 기억될만한 획기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미술관 설립과 운영의 물적 토대와 기술적 인프라가 민간의 힘으로 구축됐다는 점은 결국 개인과 기업의 기부와 기증, 후원문화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뜻으로 문화선진국으로 나아가는 토양이 된다. 그것은 곧 공공재를 지향하는 뮤지엄 본연의 방향성에 부합하고 문화적 소양의 자발적인 사회적 확산에 크게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미국 독립 100주년을 6년 앞둔 1870년 뉴욕 도심에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그러나 개관 당시만 하더라도 임대건물만 있을 뿐, 미술관의 기본 자산인 소장품이 없어 전시를 열 수 없었다. 미술관 측은 개관 후 7개월이 지난 1870년 11월에서야 1호 소장품을 확보하게 됐다. 그 소장품은 기증으로 미술관 자산목록에 맨 먼저 등록된 고대 로마 시대 유물로 대리석으로 만든 석관(石棺)이었다.
개관 소식에 각지에서 기부와 기증이 쏟아졌고 훗날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컬렉션의 정수가 되는 유럽 회화의 토대도 이 무렵 구축됐다. 쌓인 기부금으로 경매에서 유럽 명품 회화 174여 점을 사들임으로써 미술관으로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맨해튼 5번가 14번 거리로 잠시 이전한 시기를 거쳐 1880년 5월 30일 지금의 센트럴파크 인근의 5번가 82번 거리에 정착했다. 이후 1888년과 1894년, 1954년, 1971년~1991년 대대적인 증·개축 공사를 통해 현대식 전시 공간으로 재단장한 뒤 현재에 이르고 있다.
기증과 기부금에 의한 직접 구매, 발굴 확보 등으로 등록된 미술관 소장품은 300만여 점으로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로마 미술을 비롯해 고대 극동 및 근동미술과 중세미술, 아프리카·오세아니아 미술, 유럽 회화 컬렉션은 물론 미국 회화에 이르기까지 5000년 인류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소장품의 장르도 회화뿐 아니라 판화와 조각, 공예, 의상, 무기, 갑옷, 가구, 장서, 간행물, 사진 등을 망라한다.
특히 소장품 중 3000여 점으로 구성된 유럽 회화 컬렉션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되며 그중 전 세계에 30여 점밖에 없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1632~1675)의 작품 5점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자산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컬렉션도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주요 자산이다. 렘브란트, 세잔, 고흐, 고갱, 르누아르, 마티스 등 내로라하는 거장들의 그림이 소장품에 등록돼 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건물의 특징과 구성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건물은 뉴욕 5번가의 본관과 본관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맨해튼 남쪽 끝자락의 포트 트라이언 공원 내에 자리한 중세미술 전문 분관인 메트 클로이스터, 두 채로 구성돼 있다. 원래 2016년 3월 18일 휘트니 미술관이 있었던 자리에 근현대 미술 전시장인 메트 브로이어도 개관했으나 2020년 여름 문을 닫았다.
휘트니 미술관의 설립자인 거트루드 휘트니(1875~1942)와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는 악연이 있는데 휘트니 미술관이 탄생한 계기가 바로 이 악연 때문이라니, 결과적으로는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미국의 철도왕 코넬리우스 밴더빌트(1794~1877)의 증손녀로 여류 조각가이자 컬렉터로 활동하던 휘트니는 1929년 자신이 수집한 500점 가까운 작품들을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기증하려다 거절당한 뒤 1931년 직접 휘트니 미술관을 설립했다.
지하, 1층, 2층 3개 층 규모에 총 236개 전시실을 보유하고 있는 본관 건물은 센트럴파크 설계자이기도 한 영국 출신 미국 건축가 캘버트 보(1824~1895)가 신고딕 양식으로 디자인했다. 건물의 외관 형태를 결정짓는 정면 파사드(facade)와 1층 메인 홀인 더 그레이트 홀도 미국 건축가 리처드 모리스 헌트(1827~1895)가 웅장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도안한 설계 원안을 이어받은 그의 아들이 1902년 12월 완성했다. 헌트는 파사드 완공 7년 전에 사망했다.
메트 클로이스터는 1938년 7월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용 설계해 개관한 중세 수도원 분위기의 고풍스러운 건물이다. 유럽의 옛 수도원 건물 벽돌을 떼어내 건축 때 사용한 중세풍의 아우라가 일품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석유왕 존 D. 록펠러(1839~1937)의 아들인 존 D. 록펠러 2세(1874~1960)는 메트 클로이스터가 들어선 16,187㎡(4,890여 평)의 부지를 기부한 데 이어 자신이 수집한 중세 미술품 등 개인 컬렉션과 막대한 후원금을 기부하는 등 분관 설립과 운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중세미술관은 140여 년 전에 지금의 자리에서 개관한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건물의 원형을 볼 수 있는 전시관이다. 1975년에 건축된 로버트 레만 관은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를 포함한 서양 회화 컬렉션이 전시 중이고 2년 뒤 이집트 미술 전시관인 새클러 관이 증축됐다.
한쪽 벽면 전체가 통유리로 된 새클러 관은 미국의 유명한 정신 의학자 아서 M. 새클러(1913~1987)의 기부로 지어졌는데 이집트의 유명한 덴두르 사원을 통째로 옮겨와 1978년부터 공개하고 있다. 덴두르 사원은 이집트 나일강 지류의 아스완 댐 건설(1960~1970) 당시 수몰 위기에 놓인 이집트의 고대 신전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전시키는 데 도움을 준 미국의 호의에 이집트 정부가 감사의 뜻으로 선물한 기원전 10세기의 사원이다.
1980년에 선보인 미국관은 미국 작가들의 그림과 조각, 공예품을 시대별로 조망할 수 있도록 꾸며졌으며 1982년에 개관한 마이클 록펠러 관은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미술 중심으로 전시돼 있다. 1987년에 등장한 월리스 관은 현대미술 공간으로 1991년 문을 연 크래비스 관은 르네상스~20세기 초에 빚어진 유럽 조각 미술 공간으로 단장했다.
박인권 문화 칼럼니스트_ PIK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전 <스포츠서울> 문화레저부 부장과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팀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와 사랑에 빠진 그림> <미술전시 홍보, 이렇게 한다>, 미술 연구용역 보고서 ‘미술관 건립·운영 매뉴얼’ ‘미술관 마케팅 백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