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27일 러시아 모스크바 메가스포르트 아레나에 아리랑의 후렴 선율을 중심으로 한국 전통음악을 편곡한 노래 ‘오마주 투 코리아(Homage to Korea)’가 웅장하게 퍼졌다. ‘오마주 투 코리아’는 한국에 보내는 존경, 경외의 의미를 담은 제목이었다. 이 관현악의 아리랑 선율을 타고 검정 의상을 입은 ‘피겨 여왕’ 김연아가 3분 30초간 흰색 빙판 위를 우아하게 수놓으며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냈다. 김연아의 현대적 연기와 앙상블을 이룬 아리랑의 구슬픈 가락은 최고의 감동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리랑은 단순한 음악을 넘어 한국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존재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어떤 장르의 무엇과 어우러져 어디에서 울려 퍼져도 아리랑은 한국인의 심장을 꿈틀대게 한다. 그래서 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흔히 ‘비공식 국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리랑은 지역에 따라 내용도 곡조도 다르지만 한국인의 삶에서 기쁨과 슬픔을 언제나 함께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사랑과 이별, 시집살이 애환 등 개인적 사연부터 전쟁에서 나온 투쟁심까지 삶의 현장에서 우러난 민중의 희로애락이 노랫말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전승됐다. 그래서 아리랑은 단일곡이 아니다. 아리랑이란 단어가 붙은 제목으로 내려오는 민요만 하더라도 총 60여 종, 3600여 곡에 이른다.
정선아리랑·진도아리랑·밀양아리랑
아리랑은 유네스코가 세계무형문화유산에 올린 지 올해로 10년째 되는 해다. 2012년 12월 5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아리랑이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결정된 직후 이춘희 명창은 감사와 축하의 답가로 직접 아리랑을 불러 참석자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지기도 했다.
아리랑은 크게 강원도의 정선아리랑, 호남 지역의 진도아리랑, 경상남도의 밀양아리랑 세 가지로 나뉜다.
정선아리랑은 기교를 배제하고 절제된 창법을 구사하며 슬프고 애잔한 후렴구가 특징이다. “아라리요”로 끝나지 않고 “아라리요~오오오오” 하며 애조가 섞인 시김새(음을 꾸며내는 모양새)가 들어간다. 가사도 대체로 길다. 첩첩산중에 사는 여인 삶의 애환, 남녀의 슬픈 이별 사연 등 사설이 3000수 넘게 전해진다.
밀양아리랑은 투박하면서도 흥과 신명이 담긴 선율이 인상적이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귀에 익숙한 이 가사를 흥얼거리면 밀양아리랑의 특징을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보통 처음을 높은음으로 지르고 시작한다. 관노비인 주기가 자태가 고운 처녀 아랑에게 사랑을 고백했으나 아랑이 이를 거절하자 주기가 아랑을 비수로 찌르고 아랑을 기렸던 노래가 밀양아리랑으로 발전했다는 설이 있다.
전라도 아낙네의 응어리진 한을 가사에 담은 진도아리랑은 남도소리 특유의 꺾는 음이 특색이다. 구슬픈 가락에 묵직한 느낌이면서도 묘한 흥겨움이 묻어난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아라리가 났네” 뒤에서도 “에헤에헤” 같은 시김새를 넣어 경기민요처럼 발랄한 느낌까지는 아니지만 묵직하게 떨고 꺾는 음이 많다.
“아리랑은 음식에 비유하자면 밥과 같다”
아리랑은 언제부터 한민족의 대표 노래로 자리잡은 것일까? 전문가들은 민중에서 유유히 전승돼온 아리랑이 조선시대 말 경복궁 중건 시기에 1차 대유행을 타며 전국구 노래로 거듭났다고 추정한다.
2차 대유행은 바로 1926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다. 경복궁 중건 때 공연 무대에 오른 사당패가 불러 널리 전파된 아리랑타령이 영화 <아리랑> 주제곡으로 리메이크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는 분석이다.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아리랑을 서양식 음계로 옮겨 전 세계에 처음으로 알린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1863~1949)는 1896년 ‘한국의 성악’이란 논문에서 “한국인에게 아리랑이 차지하는 음악적 위상은 음식에 비유하자면 밥과 같다. 나머지 노래는 반찬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역만리에서도 아리랑이 울려 퍼지면 울컥하는 한국인에게 어쩌면 이보다 더 아리랑을 잘 표현한 말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김정필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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