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의 단편 <소나기>는 교과서에 실려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 마타리꽃이 나온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녀가 산을 향해 달려갔다. 이번은 소년이 뒤따라 달리지 않았다.
그러고도 곧 소녀보다 더 많은 꽃을 꺾었다.
“이게 들국화, 이게 싸리꽃, 이게 도라지꽃…….”
“도라지꽃이 이렇게 예쁜 줄은 몰랐네. 난 보랏빛이 좋아! …… 그런데, 이 양산같이 생긴 노란 꽃이 뭐지?”
“마타리꽃.”
소녀는 마타리꽃을 양산 받듯이 해 보인다. 약간 상기된 얼굴에 살포시 보조개를 떠올리며.
초가을 도로를 달리다 보면 언덕에 황금색 물결로 흔들리는 꽃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마타리다. 마타리는 줄기 끝에 꽃들이 모여 피는데, 아래쪽일수록 꽃송이가 길고 위쪽일수록 짧아 꽃들이 거의 평면으로 피는 특이한 구조를 가졌다. 그래서 꽃 모양이 우산 중에서도 바람에 뒤집어진 우산 모양이다.
꽃은 물론 꽃대도 황금색으로 강렬하기 때문에 한번 보면 잊기 어렵다. 바람이라도 불면 하늘거리는 모습이 애절하기까지 하다. 작가가 마타리를 양산처럼 들고 소년을 향해 살포시 웃는 소녀의 모습을 그린 것은 애절한 느낌을 더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왜 마타리라는 이국적인 이름을 가졌는지는 확실치 않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프랑스를 오간 이중간첩 ‘마타하리(Mata Hari)’를 연상시켜 외래어가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순우리말이다. 줄기가 길어 말(馬) 다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마타리라고 했다는 설도 있고, 하도 냄새가 지독해 맛에 탈이 나게 하는 식물이라고 ‘맛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설도 있다. 배가 아프면 ‘배탈’인 것처럼, 맛에 탈이 나게 해서 ‘맛탈이(마타리)’라는 것이다.
경기도 양평에는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이 있다. 황순원 선생의 고향은 북한인 평안남도 대동군이며 2000년 타계하기까지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문학관은 주로 작가의 고향이나 생가에 위치하는데, 왜 양평에 ‘황순원문학촌’이 있을까.
그 이유는 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딱 한 줄 때문이다. 바로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간다는 것이었다”는 문장이다.
이 한 줄을 근거로 황순원이 오랫동안 교수로 재직한 경희대와 양평군이 양평에 ‘소나기마을’ 건립을 추진했다. 그리고 양평에서 가장 <소나기>다운 마을 서종면 수능리를 찾아냈다.
‘소나기마을’ 황순원문학관에는 황순원 선생의 책도 읽고 퍼즐 게임, 낱말 맞히기 게임, 전자책, 원고지 써보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마타리꽃 사랑방’이 있다. 이 방 입구 벽에는 문학관 주변에서 나는 특이한 냄새의 정체를 알려주는 작은 안내문이 있다. 문학관 진입로 언덕에 7~11월 마타리꽃이 흐드러지게 피는데, 그즈음 꽃 주변에서 특이한 분뇨 냄새가 나니 오해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가을 산행철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에는 “지리산 곳곳에서 사람들이 볼 일을 봐서 그런지 분뇨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는 항의 전화가 적지 않게 온다. 그러나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는 “냄새의 주범은 사람의 분뇨가 아니라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바위틈에 주로 사는 ‘금마타리’라는 식물”이라고 설명해 주고 있다.
황순원의 <소나기>에는 마타리 외에도 갈꽃, 메밀꽃, 칡덩굴, 등꽃, 억새풀, 떡갈나무, 호두나무 등 다양한 꽃과 나무들이 등장하고 있다. <소나기>는 여러 가지로 참 예쁜 소설이다.
글과 사진·김민철(조선일보 기자·<문학 속에 핀 꽃들> 저자) 2014.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