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의 단편 <협죽도 그늘 아래>에는 “한 여자가 앉아 있다. 가시리로 가는 길목, 협죽도 그늘 아래”라는 문장이 열 번 이상 나온다.
여기서 ‘한 여자’는 결혼하자마자 6·25전쟁이 나서 학병으로 입대한 남편을 기다리는 70세 할머니다. 스무살에 결혼했으니 50년째 남편을 기다리는 것이다.
대학생 남편은 전쟁이 나자 합방도 하지 못한 채 학병으로 입대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시댁 식구와 함께 전쟁을 겪었다. 피난길에 시아버지는 친정에 가 있으라고 했지만 여자는 “피가 흘러내리도록 입술을 문 채 고개를 흔들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행방불명이라는 통보도 받았다. 하지만 여자는 여전히 남편을 기다린다. 그렇게 50년을 기다린 여자가 그의 칠순 잔치에 찾아온 친척들을 ‘가시리로 가는 길목’에서 배웅한 다음 치잣빛 저고리와 보랏빛 치마를 곱게 차려입고 남편을 기다리는 것이다.
여자는 남편과 신행(新行) 며칠을 함께 보냈을 뿐이다. 명확한 신체접촉은 신랑이 입대하는 날 우는 여자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닦아준 것밖에 나오지 않는다. 칠순 잔치에 온 환갑이 넘은 질부는 여자에게 농을 던졌다. “새점마, 우리가 다 궁금해하는 게 있수. 혹 새점마 처녀 아니우?” 여자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일부종사(一夫從事)라는 전근대적인 관습으로, 6·25라는 민족적 비극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애잔하다. 소설에서는 “여자는 자기의 일생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고 표현했다.
협죽도(夾竹桃)라는 꽃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할머니가 사는 가시리는 남부지방 어느 곳이다. 협죽도는 노지에서는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에서만 자라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댓잎같이 생긴 잎, 복사꽃같이 붉은 꽃을 가졌다고 해서 이같은 이름을 얻었다. 잎이 버드나무잎 같아서 유도화(柳桃花)라고도 부른다. 인도가 원산지로 국내에는 1920년대 외국에서 들여와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트남 등 아열대 지역이나 제주도에 가면 가로수로 길게 심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꽃은 7~8월 한여름에 핀다.
협죽도의 꽃과 잎은 신부들이 흔히 입는 한복, 녹의홍상(綠衣紅裳) 그대로다. 할머니는 잠시나마 남편과 함께한 신부 시절을 그리워하며 협죽도 그늘 아래 앉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협죽도가 강한 독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알려지면서 최근 수난을 당하고 있다. 이 나무에 청산가리의 6천 배에 달한다는 ‘라신’이라는 맹독 성분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제주도에서 관광객이 나뭇가지를 꺾어 젓가락으로 썼다가 숨지는 사건까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소설에도 이 이야기가 나온다. 부산시는 지난해 부산시청 주변에 있는 200여 그루 등 협죽도 1천여 그루를 제거했다. 제주도에서도 많이 베어내 눈에 띄게 줄었다. 일부 학자들은 “독성 때문이라면 베어낼 나무가 한둘이 아니고, 일부러 먹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은데 굳이 제거하는 것은 코미디 같은 일”이라는 의견도 보이고 있다.
성석제는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 ‘입담의 달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중견 소설가다. 대표작으로 이 소설이 담긴 소설집 <홀림>,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위풍당당>, <단 한 번의 연애> 등이 있다. 주로 힘없는 소시민이나 건달, 노름꾼 등 비주류 인생을 특유의 입담으로 풀어내는데, <협죽도 그늘 아래>에서는 진지하게 한 할머니의 인생을 파고들었다. 이 소설은 영어와 일어 번역본도 있다.
글·김민철(조선일보 기자·<문학 속에 핀 꽃들> 저자) 2014.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