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의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도라지꽃을 발견하고 너무 반가웠다. 이 소설은 남들보다 빨리 늙는 조로증(早老症)에 걸린 열일곱살 남자아이 ‘아름이’가 투병하는 이야기다. 여기에다 열일곱에 애를 낳아 지금은 서른네살인 어린 부모가 자신들보다 먼저 늙어가는 아름이를 돌보며 성숙해 가는 이야기, 아름이가 골수암에 걸린 동갑내기 여자친구 서하와 이메일을 주고받는 이야기가 있다.
이 소설에서 도라지꽃은 두 번 나온다. 집안 형편상 더 이상 병원비를 마련할 길이 없자 아름이는 성금 모금을 위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을 자청한다. 이를 계기로 역시 불치병에 걸린 서하와 교감을 통해 조심스럽게 마음을 열어가고, 태어나 처음으로 이성에 대한 설렘을 느끼며 가슴이 두근거린다.
서하는 아름이에게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보낸다.
“요 며칠 아빠랑 절에 있었어. 아빠가 요새 대체요법에 관심이 많거든. 근데 거기 스님이 나더러 도라지꽃같이 생겼다고 하더라.”(227쪽) 얼마 후 다큐PD 승찬 아저씨가 문병 왔을 때 노트북을 켜둔 아름이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근데 넌 바탕화면이 그게 뭐냐.”
“뭐가요?”
“걸 그룹도 많은데 웬 도라지꽃이니. 늙은이같이.”
“왜요, 뭐가 어때서요?”(237쪽)
도라지꽃이 다시 한 번 둘 사이의 우정 또는 사랑의 상징으로 선명하게 드러나기를 바라며 책을 읽었으나 김애란은 더 이상 이 꽃을 등장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도라지꽃은 아름이가 유일하게 비밀을 나눈 아이, ‘첫사랑, 혹은 마지막 사랑’이었던 서하를 그리워할 때 등장한 꽃이기에 이 소설을 대표하는 꽃으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심심산천에’ 피는 도라지꽃은 7∼8월 보라색 또는 흰색으로 피는데, 별처럼 다섯 갈래로 갈라진 통꽃이 기품이 있으면서도 아름답다. 우리가 흔히 보는 꽃은 밭에서 재배하는 것으로, 나물로 먹는 것은 도라지 뿌리다.
도라지꽃에는 여러 가지 꽃이야기가 있다. 그 중 ‘도라지’라는 이름을 가진 예쁜 처녀가 뒷산에 나물을 캐러 갔다가 만난 총각을 사모하다 상사병에 걸려 죽은 자리에서 피어난 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인지 꽃말이 ‘영원한 사랑’이다.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은 김애란의 첫 장편이다. 김애란은 특유의 젊은 감각, 신선한 문체와 스토리로 문단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작가다. 1980년생이지만 등단한 지 벌써 11년째인 중견작가다. 그의 글은 발랄하고 재미있다. ‘엉뚱한 듯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문장이 흡입력있다. ‘슬픈 이야기를 누구보다도 경쾌하게 풀어내는 작가’라는데, <두근두근 내 인생>에 딱 맞는 평인 것 같다.
꽃에 관심을 갖고 소설을 읽은 내 입장에서는 “어디선가 까르르 박꽃같은 웃음이 터져나왔다. 돌아보니 젊은 레지던트 하나가 간호사들에게 농담을 걸고 있었다. 나는 내 속 단어장에서 ‘추파’라는 낱말을 꺼내 만져보았다. 가을 추, 물결 파, 가을 물결”, “나이 많은 플라타너스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수천 장의 잎사귀를 나부끼며 고독하고 풍요롭게. 한 나무가 다른 나무에게로, 그 나무가 또 건너 나무에게로, 쉼없이, 은근하게. 그러고 보면 추파는 사람만 보내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같은 문장도 좋았다.
이 소설은 곧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강동원과 송혜교가 열일곱 어린 나이에 자식을 낳은 부모 역할을 맡는다.
글과 사진·김민철(조선일보 기자·<문학 속에 핀 꽃들> 저자) 2014.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