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녕 소설 <탱자>를 읽고 여운이 오래 남았다. 좋은 소설, 수작(秀作)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소설에서는 제목인 ‘탱자’가 큰고모의 사랑과 회한을 상징하고 있다.
‘나’는 30년 동안 연락이 없던 늙은 고모로부터 제주도에 보름 정도 머물 생각이니 방을 좀 구해 달라는 편지를 받는다. 고모는 중학교 졸업도 하기 전(열여섯에) 절름발이 담임선생과 눈이 맞아 야반도주했다.
그러나 담임선생 어머니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 집으로 돌아온 뒤 식구들에게서 구박을 받는다. 다른 여자와 결혼한 담임선생은 5년 후 다시 찾아간 고모에게 퍼런 탱자를 몇 개 따주면서 “이것이 노랗게 익을 때 한번 찾아가마”고 한다. 그의 말대로 훗날 찾아오긴 했지만 그는 한숨만 내쉬다 돌아갔다.
고모는 스물여덟에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남편이 한센병에 걸려 자살한 후 서울로 올라가 생선 장사를 시작으로 분식집, 포목점 등을 하며 자식을 키워냈다. 아들은 잘 성장해 결혼도 하고 대기업에 취업해 미국으로 떠났다.
이제 나이가 들어 분당의 40평 아파트에 살 정도로 생활에 여유가 생겼지만, 혼자 사는 게 힘들어 제주에 들른 것이다.
고모는 간간이 ‘나’에게 자신의 신산(辛酸)한 인생을 털어놓는다. 제주에 오기 전 고모는 이제는 늙은 그 담임선생을 다시 찾아갔다. 그리고 “다시 합쳐 살자”는 말을 뿌리치고 옛날에 퍼런 탱자를 전해 받았던 학교로 찾아가 탱자를 한보따리 따온다. 고모는 “내 부질없는 마음엔 탱자를 갖고 물을 건너면 혹시 귤이 되지 않을까 싶어 들고 왔더니라”고 말한다. 고모가 다시 육지로 떠난 지 석 달 후 나는 아버지로부터 고모의 부음과 함께 고모가 이미 5개월 전 폐암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이 소설에서 탱자와 귤이 각각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가시 돋친 나무에 열리는 탱자는 고모의 험한 삶과 사랑을, 귤은 보다 평탄한 삶과 사랑을 상징하지 않을까 짐작해 보았다.
탱자나무는 어릴 적 과수원이나 집 울타리로 쓰인 흔한 나무였다. 요즘은 벽돌 담장에 밀려 시골에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니다. 어릴 적 가시에 찔려가며 노란 탱자를 따서 갖고 놀거나 간간이 맛본 기억이 있다. 잘 익은 것도 상당히 시지만 약간 달짝지근한 맛도 있다. 5월에 피는 꽃은 향기가 은은하다.
윤대녕은 1962년 충남 예산 출신으로 <은어낚시통신> 등을 쓴 우리나라 대표 작가 중 한 명이다. <탱자>는 2004년 발표한 것으로 시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 섬세한 감수성 등 기존 윤대녕 소설의 특징이 어느 정도 남아 있으면서도 여자의 일생을 잔잔하게 담아 또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그는 2003년 4월부터 2년간 제주도에 내려가 살았는데, 이때의 경험이 소설에 녹아 있는 것 같다.
‘여행’은 윤대녕 소설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여행 중 겪는 일과 만나는 사람들을 소설 소재로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탱자>는 화자(話者)가 여행하는 다른 소설과 달리 고모가 경주 등을 거쳐 화자가 있는 제주도로 여행을 오는 구조다.
이 소설이 주는 감동은 고모의 인생에 대한 안쓰러움과 함께 죽음을 앞두고도 경우를 잃지 않는 고모의 처신에 대한 공감에서 오는 것 같다. 고모가 한 말, “누가 만드신 것인지 세상은 참 어여쁜 것이더구나.
눈에 보이는 것들이 이제는 모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참으로 눈물겹도록 아름답구나”도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글·김민철(조선일보 기자·<문학 속에 핀 꽃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