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의 장편동화 <몽실 언니>는 6·25전쟁통에 부모를 잃고 동생들을 키우는 몽실이 이야기다. 이 책을 읽고 한참 지나도 남는 이미지는 냉이를 캐는 장면과 포대기로 어린 동생을 업고 있는 몽실이 모습이다. 이제는 둘 다 추억 속으로 사라져가는 장면들이다.
해방 직후 먹고 살 것이 마땅치 않았다. 아버지가 돈 벌러 간 사이 몽실이 어머니는 자식들과 함께 굶주리다 몽실이를 데리고 다른 집으로 시집을 간다. 아버지를 버리고 떠나던 날, 길가에는 냉이꽃이 피었다.
‘냉이꽃이 하얗게 자북자북 피었다. 골목길은 너무도 환하고 따뜻하다. (…) 그러나 진달래꽃은 벌써 져 버린 지 오래다.’(8쪽)
새아버지는 동생이 태어나자 몽실이를 모질게 대해 절름발이로 만들고, 몽실이는 다시 홀로 친아버지에게 돌아온다. 몽실이는 아버지가 머슴을 사는 사이 새어머니 북촌댁과 나물로 죽을 끓여먹으며 간신히 버텨 나간다.
6·25가 발발해 아버지가 전쟁터로 끌려간 뒤 새어머니는 동생 난남이를 낳고 죽는다. 몽실이는 난남이를 업어 키우며 온갖 시련을 겪지만, 아버지와 친어머니마저 잇따라 죽으면서 아버지·어머니가 서로 다른 세 동생이 남겨진다. 이런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며 이웃들을 감싸려는 몽실이의 모습이 감동을 준다. 작가는 몽실이의 입을 통해 “아주 조그만 불행도, 그 뒤에 아주 큰 원인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동화에 나오는 냉이는 기본적으로 가을에 발아해 월동한 다음 이른 봄에 성장해 꽃을 피운다. 3∼6월에 십자화 모양으로 흰색 꽃이 핀다. 꽃자루가 나오기 전 어린 잎과 뿌리가 우리가 먹는 나물이다. 모진 한겨울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새봄에 사람들에게 영양분을 제공하는 냉이는 몽실이와 많이 닮았다.
우리 어머니도 봄기운이 돌면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것이라 원기 회복에 좋다며 냉잇국을 끓였다. 독특한 향과 잘근잘근 씹히는 맛이 그만이었다. 어린 시절 동네 여자애들은 양지바른 언덕에 모여 쑥과 냉이를 캤다. 아내는 냉이 얘기가 나오자 “어려서 봄바람이 불면 가슴이 울렁거려 방 안에만 있을 수 없었다”며 “전주 천변에 간 것은 꼭 냉이 캐려는 것만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책에는 냉이 외에도 많은 나물이 나온다. 몽실이는 댓골에 살 때 순덕이와 함께 돌나물을 캐고, 노루실에 살 때도 배가 고파 ‘바디나물, 고수나물, 뚜깔나물, 개미나리, 칫동아리나물, 미역나물, 잔대나물, 싸리나물’을 정신없이 캤다. 바디나물은 부드러운 잎과 순을 먹는 나물로 잎이 줄기를 날개 모양으로 감싸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은 모두 별미로 먹는 나물들이지만, 몽실이가 자란 어려운 시절에는 기근 해결에 일조하는 구황식물들이었다.
1980년대에 나온 책인데도 몽실이가 만나는 인민군 청년과 여군을 인간적으로 그려놓은 것이 이채롭다. 잡지에 연재할 당시 인민군 청년이 몽실이를 찾아와 통일이 되면 서로 편지를 하자고 주소를 적어주는 장면은 당국이 문제 삼아 삭제됐다고 한다. 1984년 출판 이후 지금까지 100만부 넘게 팔렸다. 1990년 하반기 TV 드라마로도 방송됐다.
저자 권정생(1937~2007)은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해방 직후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경북 안동에서 마을 교회 종지기로 가난하게 살면서도 어린이들을 위해 <몽실 언니> 외에 <강아지똥>, <오소리네 집 꽃밭>, <한티재 하늘>, <무명저고리와 엄마> 등 주옥 같은 작품들을 남겼다.
글과 사진·김민철(조선일보 기자·<문학 속에 핀 꽃들> 저자) 2014.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