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3일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동계패럴림픽 폐회식에서 우리나라 선수단의 기수인 휠체어컬링 대표팀의 리드 백혜진이 태극기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연합
장애인들의 겨울 스포츠축제인 2022 베이징동계패럴림픽이 열흘간의 열전을 마치고 막을 내렸다. 전 세계 46개 나라에서 1400여 명의 선수단이 6개 종목에서 자신이 갈고닦은 기량을 뽐냈다.
동계올림픽이 열린 장소와 경기장에서 동등하게 개최된 이번 동계패럴림픽은 선수들의 열정과 투혼으로 감동을 줬다. 특히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전쟁 상황임에도 대회에 참가해 역대 최고의 성적을 달성하는 투혼을 보여줬다.
우리나라 선수단은 이번 대회에 총 79명(선수 31명, 임원 48명)을 파견했으나 목표(동메달 2개, 25위권)를 달성하지 못한 채 대회를 마무리했다. 우리나라가 동계패럴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건 2014년 소치대회 이후 8년 만이다. 안방에서 열린 2018 평창대회 때는 금메달 1개, 동메달 2개로 종합 16위를 기록해 역대 최고성적을 거뒀다.
우리나라는 이번 대회에서 장애인노르딕스키 간판 신의현(42·창성건설)과 우리 선수단의 최연소 국가대표인 알파인스키 최사라(19·서울시장애인스키협회), ‘팀 장윤정고백’(의정부 롤링스톤)이 출전한 휠체어컬링 등에서 3위권 진입을 기대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코로나19 상황에 제대로 훈련하지 못했고 중국 현지에서 테스트 이벤트가 열리지 않으면서 대회 준비에 어려움이 있었다. 다만 이런 어려움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여서 그동안 우리나라의 약점으로 꼽혀온 얕은 선수층과 고령화가 이번 대회에서 더욱 부각됐다.
우리 선수단 중 여성 선수는 31명 중 2명(최사라·백혜진) 뿐이었다. 이번 대회 참가선수 560여 명 중 여성 선수가 138명(약 25%)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여성 선수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우리 선수들의 평균 연령도 37.8세로 종합 1위를 차지한 중국 대표팀의 평균 연령인 25세와 큰 차이를 보인다. 31명의 우리 선수 중 30대가 13명으로 가장 많고 40대가 9명으로 그 다음이었다.
젊은 선수 성장, 2026년 밀라노대회 기대
선수들은 비록 메달은 따내지 못했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경기장에서 쏟아냈다. 신의현은 바이애슬론 세 종목과 크로스컨트리스키 세 종목 등 여섯 종목에 출전해 약 57.5km를 완주했다. 목표로 했던 2연패는 실패했지만 평창대회에 이어 2회 연속 완주에 성공했다.
우리나라에 사상 첫 메달(2002년 솔트레이크시티대회 은)을 선사했던 알파인 좌식스키 한상민(43·국민체육진흥공단)은 활강과 회전, 대회전, 슈퍼대회전, 슈퍼복합 등 다섯 종목에 나서 유종의 미를 거뒀다. 4년 전 평창에서 동계패럴림픽 첫 동메달을 따냈던 장애인아이스하키 대표팀도 4위의 성적으로 선전했다.
젊은 선수들의 성장은 위안거리다. 최사라는 알파인스키 시각장애 부문 대회전에서 입상은 무산됐지만 가능성을 보여줬다. 스노보드에서 패럴림픽 데뷔전을 치른 이제혁(25·서울시장애인체육회)과 두 번째 대회에 출전한 박수혁(22·대한장애인스키협회)도 앞으로 기량이 더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진완 대한장애인체육회 회장은 베이징동계패럴림픽 결산 기자회견에서 4년 뒤를 기약했다. 정 회장은 “1년에 10명씩 키워낸다는 각오로 선수를 발굴하겠다”며 “꿈나무 선수들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다. 지원 시스템을 갖춘다면 2026년 밀라노에서는 더 나은 성과를 보여줄 수 있다”고 밝혔다.
2000년 시드니패럴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정 회장은 “스포츠는 장애인을 사회 속으로 이끄는 교두보다. 나 또한 사고로 장애를 입고 좌절했을 때 스포츠를 통해 집 밖으로 나왔다”며 “비장애인 학생들이 운동하고 공부하듯 장애인 학생들도 당연히 운동하고 공부하는 ‘차별 없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윗줄 왼쪽부터 크로스컨트리스키 남자 좌식 경기에서 역주하는 신의현, 바이애슬론 남자 스프린트 좌식 경기에서 사격하는 원유민, 스노보드 남자 보드크로스에서 역주하는 박수혁. 아랫줄 왼쪽부터 알파인스키 여자 회전 시각장애 부문에서 질주하는 최사라와 가이드러너 김유성, 아이스하키 이탈리아전에서 골을 넣고 환호하는 정승환과 장동신, 휠체어컬링 캐나다전에서 투구하는 백혜진│연합
우크라이나 선전, 평화 의미 되새겨
한편 우크라이나 선수단은 러시아와 전쟁으로 인한 폭격 위험과 피난행렬로 인한 혼란을 뚫고 동계패럴림픽이 열린 중국 베이징에 입성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속에 열린 이번 대회는 장애인 스포츠 선수들의 감동적인 경기 못지않게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대회가 됐다.
우크라이나는 선수 수 20명으로 46개 참가국 중 10번째에 불과하지만 총 29개(금 11, 은 10, 동 8)의 메달로 개최국 중국(61·종합 1위)에 이어 종합 2위에 올랐다. 바이애슬론에서 22개(금 8, 은 9, 동 5), 크로스컨트리에서 7개(금 3, 은 1, 동 3)의 메달을 획득했다.
우크라이나는 예전부터 패럴림픽 강국으로 꼽혔지만 이번이 역대 최고성적이다. 2018 평창대회에서 종합 6위(금 7, 은 7, 동 8)를 차지했고 2020 도쿄패럴림픽에서도 6위(금 24, 은 47, 동 27)에 올랐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베이징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러시아와 전쟁의 직접적 영향을 받았음에도 기록적인 성적을 냈다”고 보도했고 미국의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무거운 마음으로 중국에 도착한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좋은 성적으로 자국의 역경에 대해 관심을 끌고자 했고 이를 해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대회를 치르는 한편으로 전 세계인을 상대로 평화를 호소했다. 선수촌에서도 기자회견을 열어 ‘모두를 위한 평화’(Peace for All)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전쟁 중단을 촉구했다. 일부 선수는 우크라이나 국기 색깔인 하늘색과 노란색으로 만든 화환을 머리에 썼다.
우크라이나 선수단의 주장 그리고리 보브친스키는 “나는 우크라이나를 대표해 패럴림픽에 출전했다”며 “전쟁은 당장 중단돼야 한다. 전쟁은 우크라이나를 위한 것도, 우리 아이들의 삶을 위한 것도, 전 세계의 미래를 위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는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인 러시아와 이에 동조한 벨라루스 선수단의 대회 참가를 불허했다. 앤드루 파슨스 IPC 위원장은 당초 이들을 중립 선수로 받아들이려 했으나 미국·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IPC의 조처에 반발하며 대회 보이콧 움직임마저 보이자 개막식 전날 전격 결정을 바꿨다.
파슨스 위원장은 “압도적인 숫자의 회원국에서 연락이 왔다”며 “IPC는 회원제에 기반을 둔 조직으로 회원 단체들의 의견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번복 이유를 설명했다.
파슨스 위원장은 개·폐회식 연설에서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염두에 둔 듯 평화를 강조했다. 파슨스 위원장은 폐회식에서 “평화의 횃불, 평화의 수호자로서 당신들(선수들)의 행동은 말보다 더 울림이 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결을 통해 우리는 희망을 가지게 됐다”며 “포용에 대한 희망, 화합에 대한 희망, 무엇보다 평화에 대한 희망”이라고 밝혔다.
한·우크라이나 장애인 체육 발전 MOU
우리나라 장애인 체육계도 우크라이나와 교류에 적극 나섰다. 윤경선 선수단장이 우크라이나 선수단 숙소를 찾아 식품과 방역 물품, 보온 물품 등을 전달했고 정진완 회장은 발레리 수슈케비치 우크라이나 패럴림픽위원장과 만나 양국의 장애인체육 발전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장애인체육 발전을 위한 지식 공유 및 상호 지원, 지도자·심판·등급분류사 등 장애인체육 전문인력 역량 강화를 위한 협력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정진완 회장은 “하루빨리 평화로운 일상을 회복해 우크라이나 선수단이 우리나라 선수들과 함께 이천선수촌에서 합동훈련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수슈케비치 위원장은 “많은 국가가 협력을 제안했으나 구체적이고 실질적 내용을 담아 양해각서 체결을 제안한 나라는 한국이 처음”이라며 “이번 협약이 양국 장애인체육의 동반 성장을 위한 발판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대회에서 주최국 중국은 안방 이점을 톡톡히 누리며 종합 1위를 차지했다. 금메달 18개, 은메달 20개, 동메달 23개로 총 61개의 메달을 획득해 2위 우크라이나(29개)를 32개 차로 따돌렸다. 중국이 동계패럴림픽에서 종합 1위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은 2002년 대회 때 처음 동계패럴림픽 무대에 나섰으며 2018년 평창대회에서도 휠체어컬링에서 금메달 1개를 딴 게 전부였다.
중국은 이번 대회에서 6개 전 종목에서 모두 금메달을 수확했다. 베이징 대회를 유치한 직후 유망한 선수를 발굴해 차근차근 성장시킨 게 주효했다. 또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대신 국내 훈련에 집중하며 전력 노출을 막고 안방 이점을 극대화한 것도 이번 대회 선전의 배경이다.
통상적으로 1년 전 국제스포츠대회가 열리는 현지에서 테스트 이벤트를 진행하지만 이번에는 코로나19 여파로 휠체어컬링을 제외하고는 열리지 않았다. 크로스컨트리스키와 바이애슬론이 열린 장자커우 국립바이애슬론센터는 1600m의 고지대에 있어 처음 이곳에서 경기를 치른 선수들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