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현우 와나뮤직 대표는 음악인들이 저렴한 월세로도 좋은 환경에서 꿈을 지속할 수 있도록 2021년 10월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연습실을 마련했다.
음악 콘텐츠 제작사 ‘와나뮤직’ 함현우 대표
‘반토막’ ‘버티기’ ‘외로움’ ‘성장’ ‘감동’. 담담한 표정으로 2021년 한 해를 반추하는 젊은 자영업자의 입술에선 이 같은 단어가 새어 나왔다. 온도차가 극명한 말들 사이에서 한 해의 희로애락이 온전히 감지됐다.
“내가 노력한 만큼 정확히 대가가 따른다는 측면에서 자영업자로서 자부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코로나19로 힘들 땐 회사 다니는 친구들이 부럽더군요. 그들은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하는데 전 일이 없어서 고민이었으니까요. 코로나19가 가장 심했을 땐 수입이 반토막이 났어요. 회사원과 달리 자영업자는 일한 만큼 버는 건데 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게 답답했죠.”
그가 이끄는 ‘와나뮤직’은 가요, 드라마, 영화, 광고 등의 상업 음악을 제작하면서 작곡 레슨을 전문으로 하는 음악 콘텐츠 제작사다. 함현우 대표는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뒤 졸업 직후 본격적으로 음악시장에 뛰어들어 10년째 자영업자의 길을 걷고 있다.
와나뮤직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 홍대입구 일대는 음악을 밥벌이로 혹은 취미 삼아 하는 전국의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곳. 하지만 바이러스가 확산하는 사이 경기가 얼어붙고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사람들은 예술은 사치라 여겼고 하나둘 홍대를 떠나갔다. 문화예술계 전체가 위축되면서 와나뮤직도 2021년 초까지 영화와 광고 등 음악 제작 의뢰가 크게 줄었다. 함 대표는 이제 막 음악을 시작한 사람은 물론 음악에 젊음을 바치고자 했던 동료들이 꿈을 접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함 대표는 2021년 초까지만 해도 힘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위기를 견디는 노하우와 힘을 얻었다고 이야기한다.
“반토막 난 수입… 버티니 다시 기회 와”
“연습생 중 취미로 음악을 하던 친구들이 가장 먼저 그만두더군요. 그런데 외국에 유학까지 가 연주를 전공하면서 방학 땐 컴퓨터음악까지 배우며 열정적이던 친구가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더 이상 음악을 하지 않겠다고 했을 땐 적잖이 충격이었어요. 또 다른 연습생은 공연이 모두 취소되면서 수입이 완전히 끊겼다더군요.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가는 학생들이 생기는 등 너 나 할 것 없이 힘든 한 해였죠.”
그저 홍보를 더 열심히 하며 버티고 기다리는 것밖엔 도리가 없었다는 함 대표. 그러면서도 화상회의로 음악 제작을 논의하고 원격으로 연습을 진행하는 등 코로나 시대에 맞게 일하는 방식을 바꿨다. 또 음악 제작 등 하나에 집중하기보다는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다양한 일을 찾았다.
그는 “그렇게 버티고 기다리니 점차 회복이 되더라”고 했다. 잠시 쉬겠다며 홍대를 떠났던 동료들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음악 제작 사업도 조금씩 활기를 되찾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상반기까지 영화제 등이 줄줄이 취소됐지만 하반기 들어선 공연계도 다소 기지개를 켰다.
“내가 참여한 영화들이 영화제에 진출하고 상을 받는 등 좋은 성과가 많았어요. 하지만 영화제가 대부분 취소되면서 작업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죠. 그런데 올여름 극적으로 부천판타스틱영화제가 열려 아내와 함께 보러 갔어요.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무척 행복해하는 아내를 보니 참 감격스러웠습니다.”
이 같은 기쁨의 순간을 만끽하기까지 역경을 버티게 해준 길목마다 가족과 동료, 이웃들이 손을 내밀고 있었다. 함 대표는 “자영업자에게 가장 두려운 게 임대료”라면서 “모두가 힘든 때 적절한 임대료를 제시해준 임대인이 무척 고마웠다”고 했다. 또 정부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에게 지급한 소상공인 새희망자금, 소상공인 버팀목자금 등도 큰 위로가 됐다.
“위기 극복 키워드는 변화와 공존”
위기를 함께 이겨낸 경험은 도움이 필요한 또 다른 이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했다. 그는 지난 10월 음악 작업 공간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 직접 연습실을 마련했다. 공사를 돕겠다며 나섰다 허리를 크게 다치는 등 우여곡절도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세운 작업실을 소개하는 그의 표정엔 고생의 흔적 없이 겸손한 미소가 번졌다.
“홍대 음악 연습실 월세가 굉장히 비싸요. 4.95㎡(1.5평)가 40만~50만 원가량 하죠.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작업실 때문에 힘들어하는 걸 많이 봤어요. 힘든 시기를 지나고 나니 그들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연습실은 음악에 뜻을 둔 이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좋은 환경에서 꿈을 지속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그의 2021년은 높낮이의 변화가 많은 악보를 그려냈지만 이를 전하는 함 대표의 표정과 목소리는 차분하고 담담했다. 어떤 위기가 와도 지금처럼 견디고 버텨내겠다는 결연한 태도를 닮은 듯. 자영업자에게는 매해가 고비지만 또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며 그는 ‘변화’와 ‘공존’을 강조했다.
“코로나19로 여전히 힘든 부분이 있지만 한 차례 위기를 지나고 보니 그걸 버텨낼 수 있는 노하우와 힘이 생겼어요. 화상회의나 원격수업 등 대안을 철저히 준비했고 유튜브 등을 활용한 사업도 계속 구상하고 있어요. 코로나19 확산세가 당장 꺾이진 않겠지만 시대가 바뀌었으니 그에 맞게 적응해나가는 노력을 해야죠. 자영업자는 모든 걸 혼자 결정하고 그 책임도 스스로 져야 해 늘 외로워요. 2022년에도 서로 격려하며 위기를 극복하고 가진 걸 나눌 수 있는 따뜻한 한 해가 되길 희망합니다.”
글 조윤 기자, 사진 문화체육관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