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3일 서울 은평구 갈현동 청구성심병원에서 70대 어르신이 코로나19 3차 접종을 받고 있다. | 한겨레
어르신들의 소회와 희망
“코로나19 이놈, 이젠 지긋지긋한데 한편으로는 어쩌면 친구처럼 돼 버렸네. 원치 않는 불청객 친구 같은 거 말이야. 팔십 가까이 살아왔지만 2020년도 그랬었고 2021년도 참으로 이상한 1년을 보낸거 같아. 그래도 코로나19에 감염돼 고생한 다른 노인들에 비하면 나는 정말로 다행이었지. 물론이고 말고.”
▶서울시가 코로나19로 지친 어르신들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한 연말 콘서트가 12월 1일 중구 청춘극장에서 열려 어르신들이 노래를 들으며 박수를 치고 있다. | 한겨레
“의료진들이 땀흘리고 힘들게 고생했지요”
12월 9일 낮 서울 성북구에 사는 이정순(78) 씨가 따뜻한 초겨울 햇살이 비치는 아파트단지 1층 집 앞 화단 벤치에 앉아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사방을 둘러싼 아파트 여러 동 사이로 햇살이 비스듬히 비쳤다. 이 씨는 2021 4월 성북구청에서 코로나19 예방접종을 받았다. “다행히 접종한 뒤에 별다른 이상 증상이나 부작용은 없었어.” 조금 사이를 두고 이 씨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도 뭐 다행이지만 우리 가족들 중에 코로나19에 걸린 사람이 아직까지는 없어. 다들 조심하고 정말로 운이 좋은지 몰라. 나 같은 노인네야 집안에서 조용히 코로나19를 피하면 되지만 일선에서 일하는 보건소나 병원 의료인력들 또 방역을 책임지는 공무원들이 1년동안 열심히 땀흘리고 힘들게 고생했지요.”
이 씨는 12월 8일 집 근처 내과의원을 찾아 3차 접종을 받았다. 1주일 전에 질병관리청 접종 예약 사이트에서 예약했다.
“이번 3차 접종 받은 것도 하루 지났지만 뭐 별다른 증상은 없네요. 2021년은 신년 초부터 무슨 백신을 언제 맞게 되나 온통 궁금했고 연말에 또 3차 접종을 맞기도 하고. 아무튼 2022년 대통령선거보다도 접종 얘기로 1년을 다 보낸 거 같네.”
코로나19가 장기화된 올 한 해를 돌이켜보면 가끔 일요일에 버스를 타고 북한산 동쪽 자락에 있는 우이동 도선사에 다녀오기는 했다. 더 멀리 바깥 외출을 한 기억은 거의 없다. 남편이 1년 내내 숙환으로 집안에 꼼짝 못한 채 누워 있어 짬을 낼 수도 없었지만 코로나19 걱정에 나들이는 엄두도 내기 어려웠다.
“7월에 남편이 끝내 세상을 떠났지.” 이달 말에는 한 해가 가기 전에 경기도 포천 산자락에 있는 묘지를 다시 찾아가 볼 생각이다. 장례를 치르고 홀로 남은 뒤에는 경기 용인에 사는 옛 초등학교 친구를 가끔 만나 코로나19와 대통령선거, 손자손녀들 대학입시 이야기 등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2022년에는 이 놈의 코로나19한테서 진짜로 벗어나는 새해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집 근처에 과일을 싸게 파는 가게가 있어서 간혹 들르는데 그 옆에 동네 보건소가 있어요. 거기에 임시선별진료소가 설치돼 있는데 요즘 검사 받으러오는 사람들이 매일 긴 줄을 서는 풍경이어서 또 다시 걱정이 크네. 2022년에도 마스크를 완전히 벗기 어려워도 저 긴 줄을 더는 안 봐야 할텐데….”
“방역 공무원들이 가장 힘든 1년 보냈겠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손말숙(83) 씨도 2021년을 돌아보면서 이 씨와 거의 같은 말을 했다.
“나야 이제 살 날이 얼마 안 남아 이러든 저러든 큰 걱정은 없는데 우리 손자손녀와 딸아들 중에서 이 놈의 코로나19에 감염돼 고생한 일이 아직은 생기지 않아서 정말로 다행이지.”
손 씨는 일제강점기와 분단, 6·25전쟁 그리고 산업화·근대화·민주화로 점철된 격동의 현대사를 뚫고 온 어르신이지만 “팔순 평생에 이런 감염병은 처음 겪는다”고 혀를 끌끌 찼다. “2년 동안이나 이렇게 온 세상을 흔들어놓고 앞으로도 계속될 거 같은데 참말로 고약한 바이러스야.”
다만 고등학교 1학년인 손자가 집 근처 임시선별검사소에 올해 다섯 번이나 갔다고 했다. “학교하고 학원에서 수시로 감염자가 발생해 다섯 번이나 검사를 받아야 했지.” 그럴 때마다 손자가 혹시나 감염됐을지도 몰라 애를 태우며 음성 판정 결과가 나오는 다음날 아침까지 불안하게 밤새 기다려야 했다고 한다. 지난 여름에는 같은 아파트 동 16층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순식간에 퍼졌고 며칠 동안은 엘리베이터조차 타지 못했다. “한 여름 폭염에 집안에만 있어야 했던 그 때가 좀 힘들었지.”
코로나19 속에 뇌경색까지 찾아와 몹시 힘든 시기도 보냈다. 8월쯤 손 씨는 동네 뒷산을 오르다가 별안간 쓰러져 급히 대학병원으로 후송됐다. 뇌경색 진단이 내려졌다. 다행히 위급한 상태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뇌경색 재활 치료차 집 근처 요양병원에 두어달 있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가족을 포함해 그 누구도 면회가 24시간 금지돼 병실에 갇혀 있어야 했지.”
팔십 평생 그 어느해보다 불안하고 갑갑하고 외로운 1년을 보냈지만 돌이켜보면 스스로 잘 견디고 버텼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텔레비전 보면 낮이고 밤이고 저녁이고 하루종일 생방송으로 노란 민방위복을 입고서 코로나19 발생 현황과 대책을 설명하는 방역 공무원들이 가장 힘든 1년을 보냈겠지.”
손 씨는 방역체계가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접어들어 이제 좀 있으면 마스크 벗고 살 수 있게 되겠구나 했는데 오미크론 바이러스 변이가 또 극성을 부리며 세상을 혼돈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고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어김없이 한 해가 저물어가고 또 새로운 해가 오는 것이지. 감염병이 극성이어도 해가 바뀌는 건 팔순에도 여전히 설레는 일이야.”
조계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