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누리카드 이렇게 사용하세요
2022년 문화누리카드 발급이 시작됐다. 문화누리카드는 취약계층의 문화생활을 위해 1인당 연간 10만 원을 지원하는 카드다. 6세 이상의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이 발급 대상이다. 자동 재충전 대상자가 아니거나 신규 발급자인 경우 2022년 11월 30일까지 문화누리카드 누리집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또는 행정복지센터(주민센터)에서 신청하면 된다. 카드 사용처는 도서, 공연, 문화 체험, 놀이공원, 운동경기 등 문화예술·여행·체육 분야 온오프라인 가맹점이다. 발급 즉시 사용 가능하며 연말까지 써야 한다. 2022년이 지나면 잔액은 자동 소멸된다. 실제 이용자들의 수기를 통해 문화누리카드의 다양한 쓰임새를 알아본다.
# 운동경기 관람
신진태(가명) 씨는 “10여 년 만에 부자지간에 말문이 터지게 해줬다”며 문화누리카드를 사용해 아버지와 야구장에 간 얘기를 꺼냈다.
신 씨 가족이 문화누리카드를 알게 된 건 2년 전이다. 그동안 생계를 책임지던 아버지가 만 65세가 되면서 더 이상 건설 현장 일용근로자로 근무를 못 하게 됐다. 신 씨 가족은 차상위계층에 해당돼 정부 지원제도 가운데 하나인 문화누리카드를 받았다.
신 씨는 카드의 사용처를 살피다가 운동경기 관람에 눈길이 갔다. 팍팍한 삶에 텔레비전 중계로도 잘 안 보게 됐지만 젊을 적 야구를 굉장히 좋아했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문화누리카드로 야구도 볼 수 있대”라는 한마디에 관심을 보인 아버지와 그렇게 긴 대화가 시작됐다. 문화누리카드로 예매하니 일반 결제보다 40%나 저렴했다.
“컴퓨터 앞에 나란히 앉아 좌석을 같이 골랐다. 현장에서 표 사던 시절에서 기억이 멈춰버린 아버지는 ‘세상 참 좋아졌네’라며 오랜만에 내 앞에서 웃음을 지어 보이셨다. 그동안 부자지간에 두껍게 놓여 있던 얼음장이 살짝이나마 녹는 듯한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 디지털피아노 구매
코로나19로 위기 상황에 내몰린 서미경(가명) 씨 가정은 주민센터 복지사의 도움으로 아이의 교육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복지 혜택을 받던 중에 교육급여 수급자 가구도 문화누리카드 발급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서 씨는 동네 주민센터를 방문했다. 현장에서 바로 문화누리카드를 발급받고 사용처 설명도 들었다. 교육급여 수급자인 아이뿐만 아니라 나머지 가구원 앞으로도 문화누리카드 발급이 가능했다. 주민등록상 동일 세대끼리는 한 장의 카드에 지원금을 모아서 합칠 수도 있다.
30만 원이나 되는 합산 금액을 보니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어디에 쓰면 좋을지 고민하던 서 씨는 문화누리카드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악기 가맹점을 발견했다. 순간 남편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가맹점인 악기사에 전화를 했다. 조금만 보태면 디지털피아노를 구매할 수 있다는 말에 바로 문화누리카드로 결제했다. 며칠이 지나 피아노가 배송됐고 아들과 함께 조립해 방에 놓았다. 남편은 피아노 칠 생각에 일을 마치면 집에 빨리 오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

▶문화누리카드로 공연 티켓 구매, 책 구매, 문화 체험, 코레일 기차 여행
# 자전거 선물
“문화누리카드가 세상에서 엄마 다음으로 제일 좋아요.” 엄마와 둘이 살고 있는 초등학교 4학년 심율(가명) 군의 말이다.
소년은 유치원 때 산 초록색 자전거를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탔다. 3학년이 되자 더 이상 초록색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개천에 벚꽃이 만발한 3학년 봄날, 소년은 자전거를 탄 친구들의 뒤를 열심히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밥때가 돼도 집에 안 들어오는 아들을 찾으러 개천으로 간 엄마는 그 길로 말없이 아들 손을 잡고 자전거 가게로 갔다. 주인아저씨는 바퀴가 엄청 두꺼운 빨간색 자전거를 보여주었다. 엄마는 가격도 묻지 않고 빨간 자전거를 계산했다.
소년은 마냥 신나서 마구마구 달렸다. 잠들기 전에 엄마한테 우리 형편에 어떻게 비싼 자전거를 사줄 수 있냐고 물었다. 엄마는 소년의 이름이 적힌 문화누리카드를 꺼내 보여주었다.
키 작은 소년의 꿈은 운동선수다. 아들의 꿈을 위해 엄마는 앞으로 문화누리카드로 좋아하는 운동용품을 하나씩 사주기로 약속했다. “올해는 배드민턴 채를 사고 내년에는 제가 키가 조금 더 클 테니 그때 또다시 자전거를 바꿔야 해요. 그다음 해는 또 그다음 해는…” 소년은 문화누리카드가 가져다줄 내일을 꿈꾸고 있다.
# 나눔티켓
우람(가명) 씨는 2020년 8월 한부모가정 지원사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신청서를 쓰기 위해 행정복지센터에 들렀다가 복지 담당자로부터 문화누리카드에 대한 안내를 처음 받았다. 담당자는 아이들 것도 같이 신청해주었다.
“아이들 카드에 있는 잔액을 내 카드로 합산하기 위해 뒤늦게 문화누리카드 누리집에 들어가 봤다. 가맹점을 검색해보니 공연·전시 외에 여행사, 휴양림, 동·식물원, 도서, 체육 등 분야가 골고루 있었다. 또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결제가 가능해 사용하기에 굉장히 편리하게 잘돼 있었다.”
특히 아홉 살인 둘째 아이가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은 문화누리카드가 있으면 이용할 수 있는 ‘나눔티켓’이었다. 할인 티켓도 아닌 무려 무료 티켓이 꾸준히, 자주, 다양하게 업로드됐다. 이제 둘째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뮤지컬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매표소에서 티켓을 교환하고 나면 아이는 매번 가장 신나게 공연장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나눔티켓은 문화예술단체로부터 객석을 기부받아 무료 또는 할인된 가격으로 공연과 전시를 관람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공공제도다. 이용하려면 나눔티켓 누리집(www.nanumticket.or.kr)에서 별도 회원가입이 필요하다. 티켓은 양도가 불가능하며 본인이 아닌 경우 차액을 내야 한다.
# 오카리나 취미 생활
신미화(가명) 씨는 ‘오카리나’라는 악기를 배운다. 몸이 아파 집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인 신 씨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취미 생활이다.
“가끔씩 문화누리카드에서 카카오톡으로 보내주는 취미 목록을 보면서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악기 연주를 생각하게 됐고 오카리나를 발견했습니다.”
악기를 결정한 신 씨의 눈에 문화누리카드 모바일 상품 안내 책자에서 적당한 오카리나가 들어왔다. 가격대도 적절하고 색깔도 맘에 들었다. 바로 전화로 신청했다. 전화 신청은 간단했다. 모바일 책자에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 문화누리카드로 구입한다고 하면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원하는 물품의 번호와 이름, 주소, 카드번호를 남기니 전화 신청 후 이틀 만에 배송됐다.
악기는 생겼는데 배우는 게 문제였다. 아픈 다리로 거동이 자유롭지 않았다. 그런데 무심결에 보던 인터넷 공지에서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부천시평생학습센터에서 주최하는 학습톡으로 오카리나를 무료로 강습한다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비대면 온라인수업이었다. 그렇게 오카리나가 신 씨의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 렌트카 타고 제주 해안도로 달리기
50대 중반인 이철민(가명) 씨는 “모든 것을 잃고 지쳐 있는 나에게 문화누리카드를 통한 제주 여행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삶을 돌아보게 했다”고 고백했다.
처음으로 문화누리카드를 발급받아 손에 쥔 이 씨는 용기를 내어 혼자서 제주도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예전에 직장을 다닐 때 혼자 자동차 뒷좌석에 휠체어를 싣고 출퇴근은 물론이고 지방 출장이나 교육을 자주 갔다. 그리고 평생을 휠체어로 생활하고 운동 활동을 해서 그런지 누구보다 휠체어를 다루는 기술이 뛰어나 작은 턱 정도는 혼자 힘으로 오르고 내려갈 수 있었던지라 긴장보다 설렘이 가득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나는 문화누리카드 가맹점으로 등록된 렌터카 회사를 통해 운전 보조장치인 핸드 컨트롤을 갖춘 차량을 렌트했다. 제주공항에 도착해 문화누리카드로 결제하고 렌터카를 받은 후 용두암에서 시작해 서쪽으로 이어진 해안도로를 따라갔다. 정처 없이 떠도는 드라이브 여행은 그동안 엉켜 있던 것들이 몰려나가는 기분이었고 쓸데없는 것들을 버리는 시간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제주 해안도로를 달리면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고 지친 마음과 몸을 되찾았다.”
# 직업 체험, 키자니아
“언니는 꿈이 뭐야?” 자나 깨나 숨쉬기 답답한 20대 중반 취업 준비생인 이혜리(가명) 씨에게 어린 동생이 질문했다. 동생은 열한 살이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가족들과 상의했다. 문화누리카드가 여러 번 등장했다. 잘 활용한다면 이 답답한 생활에서 동생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겠다는 의견이었다.
문화누리카드로 이용할 수 있는 활동을 검색해봤다. 그러던 중 다양한 직업 체험을 통해 어린이의 꿈을 찾아주는 ‘키자니아’란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사전예약하고 키자니아 서울을 방문했다. 여러 직업 가운데 동생은 라디오 진행자에 크게 재미를 느꼈다. 지금도 동생의 꿈을 실현해주기 위한 문화누리카드 이용은 계속되고 있다.
# 공연 관람, 그리고 취업 공부
공공기관에서 기간제 근로자로 일하고 있는 전수경(가명) 씨에게 공연 나들이는 화려한 외출이다. 퇴근한 뒤 제일 예쁜 옷을 차려입고 오랜만에 굽 높은 구두를 꺼내 신는다. 딸에게도 편한 청바지가 아닌 원피스를 입으라고 부추긴다.
보통 한 달 전부터 예매가 시작되는데 전 씨는 이때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한 달을 살아간다. 2021년 문화누리카드가 충전됐다는 안내 문자를 받고 첫 결제를 한 공연이 창원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였다. 이 공연은 저소득층에게 50% 할인 혜택을 주었다. 오전 9시 예매 누리집이 열리자마자 즉시 예매 버튼을 눌렀다.
전 씨는 문화누리카드를 딸과 세대 합산해 사용하고 있다. 공연 외에 또 다른 사용처는 딸의 취업 준비다. 대학 졸업반인 딸은 문화누리카드로 공무원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 기차표부터 킥보드까지
허찬원(가명) 씨 가족이 문화누리카드를 처음 만난 건 경북 청도군에 이사 온 2019년 말이었다. 읍사무소 직원의 친절한 소개를 통해서다. 이 카드로 첫 번째로 한 일은 대구 엑스코에서 매년 개최하는 크리스마스 페어에 가기 위해 기차표를 구매한 일이다. 세 아이의 발이 돼준 마법의 카드였다. 이후에는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다양한 책을 사서 읽게 해준 카드이자 리코더나 실로폰 같은 악기를 갖고 놀면서 음악적 감수성을 기르게 해준 카드였고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는 성실한 코치 역할까지, 문화누리카드는 세밀하게 부모의 사각지대를 메워준 마법의 카드였다.
허 씨는 코로나19로 지치고 답답한 아이들을 위해 ‘킥보드 삼총사’ 만들기 아이디어를 냈다. 문화누리카드 잔액을 모두 모아서 온라인으로 킥보드 3대를 구매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 유치원생 일곱 살 딸, 세 살 막내딸에게 맞는 크기와 좋아하는 색상으로 골랐다. 사고 방지를 위해 안전모도 각각 샀다.
허 씨 집 킥보드 삼총사는 틈만 나면 답답한 집을 벗어나 푸른 시골의 공기를 가르며 달린다.
글 심은하 기자, 자료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