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김대중
며칠 전 버스에서 일어난 일이다. 버스는 한층 촘촘해진 봄 햇살 속을 나른하게 달리고 있었다. 한가한 낮 시간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따금 다음 정거장을 알리는 방송만이 정적을 깨고 차내를 맴돌다 누군가의 어깨에 먼지처럼 내려앉았다.
나는 대중교통을 타면 으레 그러하듯 이어폰을 꽂고 몽상에 빠져들었다. 익숙한 멜로디에 실려 수많은 간판이 책장처럼 넘어가고 버스가 몇 개의 교차로에서 몸을 틀자 내 머리는 유리창으로 파고들었다. 차 안과 바깥의 경계에 고이듯 현실과 꿈 사이에서 혼몽해져가고 있었다.
그렇게 바퀴 달린 평화에 실려 고소한 낮잠에 들락 말락 하던 차였다. 이어폰과 귓구멍 사이를 고성이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소음도 소음인데 순간 차내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동물적인 직감이 들었다. 수상한 수런거림과 일렁이는 불안. 나는 자세를 꼿꼿이 하고 이어폰을 귀에서 뺐다. 바로 귀에 꽂히는 소리는 이것이었다.
“마스크 없이는 탑승 안 됩니다!”
오랜만에 버스에서 마주한 낯선 ‘맨얼굴’
이 말은 저 앞자리 운전석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기사님이 누군가에게 외치는 소리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황급히 주변을 살피니 마스크로 감춰진 얼굴들 사이로 맨얼굴 하나가 도드라졌다.
그것은 대단히 낯선 감각이었다. 코로나19로 일상이 전복된 지도 벌써 2년 차였다. 텔레비전에서 흘러간 드라마 주인공이 맨얼굴로 쏘다니는 것만 봐도 위화감이 드는 시절이었다. 버스 안에서 타인의 온전한 얼굴을 본다는 것이 실로 오랜만이었다. 상황을 파악하건대 누군가 마스크 없이 막무가내로 버스에 오른 모양이었다.
그는 기사님에게 큰 소리로 항변하고 있었다. 금방 내릴 테니 빡빡하게 굴지 말고 그냥 좀 갑시다 하는 류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원칙은 원칙, 기사님은 당장 하차하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문제의 승객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두 다리를 벌리고 단단히 뿌리내렸다. 날 끄집어낼 수 있으면 어디 해보라는 투로 고함치기 시작했다.
여유로웠던 차 안 분위기가 삽시간에 팽팽해졌다. 모두 당황하고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원칙은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이를 어기는 사람을 어떻게 제재해야 하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로 오랜만에 버스에서 마주한 맨얼굴, 그 고집스러운 표정을 보며 모두 겁을 먹고 있었다. 전 국민이 조심스레 따르고 있는 룰에 대놓고 어깃장을 부리는 사람의 돌출성이 두려웠고 그가 공기 중에 흩뿌리고 있는 체액이 두려웠다. 이럴 땐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신고라도 해야 하는 걸까?
떨리는 손으로 마스크를 건네고
그때였다. 칼끝에 선 듯 곤두선 분위기 속에서 한 학생이 그에게 다가갔다. 도무지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저 작은 학생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모두가 숨죽이고 바라봤다. 그 순간 학생이 그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뜯지 않은 새 마스크였다. 비상용으로 지니고 다니던 여벌인 듯했다. 아, 저런 방법이. 모두 침을 꼴딱 삼켰다. 문제의 승객은 마스크를 한 번, 학생을 한 번 바라보더니 뜻밖의 태도를 취했다. 고개를 까딱하더니 순순히 마스크를 뜯어 착용한 것이다.
버스는 다시 도로를 부드럽게 달리기 시작했다. 차 안에는 정돈되지 않은 긴장감이 조금 더 맴돌다 봄볕에 스르르 녹아 없어졌다. 고함치던 승객의 얼굴도 희디흰 마스크 뒤로 숨었다. 우리는 비로소 모두 같은 얼굴이 됐다. 이다음 정거장에서 탈 승객들은 이 거친 목소리들과 아찔했던 긴장감 같은 건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참으로 평화로운 간선버스로군’ 하고 흐뭇해할 것이다. 되찾은 고요 속에서 생각했다. 오늘 이 버스의 영웅은 저 학생이라고. 모두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반짝이는 기지와 넉넉한 선의로 우리의 오후를 구제했다고.
그리고 사실 나는 보았던 것이다. 마스크를 건넬 때 파르르 떨던 그 손끝을. 어찌 반응할지 모를 무뢰한에게 다가갈 때 학생은 사실 떨고 있었다.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고성이 오고 가는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대다수가 눈만 끔뻑이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에서. 건방진 짓 하지 말라고 그가 되레 성을 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의 영웅은 행동했다. 일렁이는 마음을 다잡고 그에게 다가갔다. 떨리는 손으로 본인이 가진 것을 내놓았다.
▶서울 중구 서울역 버스환승센터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버스를 타고있다. | 한겨레
영화 속 영웅과 현실 속 영웅
우리는 영웅의 조건으로 용감함을 꼽곤 한다. ‘용감하다’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용기가 있다’는 표현이 나온다. 그렇다면 용기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 찾아보니 ‘겁내지 않는 기개’라는 설명이 나왔다. 즉 용감하다는 것은 겁내지 않는다는 뜻이고 영웅은 겁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어떤 상황에서도 움츠러들지 않고 누가 뭐래도 의연하고 공포라곤 모르는 용감한 사람’이 과연 세상에 존재할까? 그런 영웅은 동화나 영화 속에서만 나오는 게 아닐까?
왜냐하면 나는 버스에서 파르르 손을 떠는 영웅을 봤기 때문이다. 현실의 많은 영웅이 겁이 나 벌벌 떨면서도, 무서워 이를 악물고서도, 괴로움의 눈물을 꾹 참으면서도 움직이고 있었다. 영웅은 특수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거나 외계 전파에 영혼이 각성된 존재가 아니었다. 공포라고는 소거돼 언제나 여유 만만한 미소와 함께 사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현실 속의 영웅이란 다 같이 마음이 졸아붙은 와중에도 떨리는 손을 기어코 움직이고야 마는 사람이었다.
사실 나 역시 누구 못지않게 겁이 많다. 배포가 작디작아 분위기가 수상해지면 일착으로 몸을 옹송그리고 마음이 오그라드는 사람이다. 오늘 버스 안에서 벌어진 작은 소동 가운데서 실은 저 멀찍이 앉은 내가 제일 겁먹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영웅과 몇 광년 떨어진 사람이고 의로운 행동은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왜냐? 나는 겁 재벌이니까. 내 손과 목소리는 늘 사정없이 춤추기만 하니까.
선의와 배려, 다정과 온기, 용기도 옮는다
하지만 무뢰한에게 떨리는 손을 내민 학생을 떠올리며 그 용기가 내 여린 마음 바탕에 번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상상해본다. 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지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솔직히 여전히 내가 가장 먼저 일어나 문제의 승객에게 다가갈 거라고는 자신할 수 없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 다만 이런 가정은 해본다. 만에 하나 버스의 빌런(악당)이 우리의 영웅에게 저항한다면, 학생이 떨리는 손으로 내민 마스크를 집어 던지고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패악을 부린다면 그때는 나도 움직였을 것 같다. 부들대는 사지로나마 우리의 영웅을 지키기 위해 그를 막아섰을 것 같다. 그것이 영웅적인 행동을 지켜본 사람의 도리니까. 용기를 건네받은 사람의 의무니까.
사람은 단단한 육체를 가진 존재지만 그에 깃든 영혼은 파동에 가깝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타자의 영향권 아래 나의 파장이 일렁이는 것을 자주 느끼기 때문이다. 지난 오후의 버스 안에서 두 거친 파동이 맞부딪쳐 소용돌이가 일어났고 지켜보는 나머지 영혼들이 촛불처럼 흔들렸다. 그 가운데 파르르 떨리는 작은 파동이 움직였고 소용돌이 가운데 끼어들어 공기의 결을 바꿨다. 휘청대는 마음들을 잠잠하게 했다.
그리고 그 파장은 내 마음까지 다다라 여전히 부드러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분노나 짜증, 긴장과 불안만 옮는 것은 아니다. 선의와 배려, 다정과 온기도 옮는다. 병균만 전염되는 것도 아니다. 용기도 전염된다. 소중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홍인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