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이 멸종 위기에 처한 국화 복원에 성공했다.
2010년부터 3천여 종이 넘는 국화 가운데 약용으로 쓰이는 ‘흰감국’에 주목한 결과다. 복원에 매달린 지 2년. 전통 자연화장품 브랜드인 한율의 ‘흰감국 미백 파우더 세럼’ 등의 제품에 적용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주도한 이가 한상훈(49)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장이다. 그는 오래 전부터 한국 고유종 생물자원 활용에 관심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나온 것이 ‘흰감국’, ‘토종 희귀 콩’ 등 이제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든 토종 자생식물을 복원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단순 복원작업에 그친 것이 아니라 자생식물의 유전자 발현정보까지 밝히는 등 정확한 정보를 쌓는 데 주력했다. 최근에는 한국 고유 해양생물자원을 기반으로 한 상품 개발도 그의 주된 연구과제다. 한 원장은 “생물다양성이 기업경쟁력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며 “유전자원이 곧 국가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한 원장은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BD COP12)’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한다. 부대행사로 열리는 ‘창조경제 촉진을 위한 비즈니스포럼’에도 한국의 대표패널로 참석한다. 그는 생물다양성 보전 노력이 단순히 돈을 버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국내 화장품 제조에 쓰이는 국산 원료는 전체의 22퍼센트에 불과하다. 나머지 78퍼센트는 수입 원료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해당 업계에 따르면 최근 화장품 원료 수입량이 줄기는 했으나 2013년에만 1억8,776만 달러에 달한다. 국내에서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투자가 필수다. 비즈니스포럼 발표 준비에 여념이 없는 한 원장의 얘기를 들어봤다.
비즈니스포럼에 한국 대표패널 자격으로 참석합니다.
“한국 화장품업계를 대표하게 됐습니다. 생물다양성을 바라보는 업계 상황을 소개하고, 의견도 낼 생각입니다. 여기서 그동안의 경험과 노력에 대한 얘기도 함께할 예정이고요. 우리가 생물다양성보전을 위해 노력한 결과물도 사례 형식으로 소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총회에서 논의되는 내용도 다룰 겁니다. 현재 업계 입장은 어떤지, 생물다양성을 보호하려는 기업의 의지를 도울 수 있는 정부 역할이 무엇인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속할 수 있는 생물다양성 보전 목표도 밝힐 예정입니다. 이를 위한 전략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리라 봅니다. 이번 기회에 많은 전문가가 기업의 역할을 한번쯤 고민하고 논의해 보길 바랍니다.”
당사국총회, 일반인들에게 생소한데 산업적 파급력이나 효과를 어떻게 보십니까?
“이번 총회 진행 중에 ‘나고야의정서’가 발효됩니다. ‘나고야의정서 당사국회의’도 처음으로 진행됩니다. ‘나고야의정서’는 생물자원을 보유한 국가별 주권을 인정하고 그 이익을 나누자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때문에 ‘나고야의정서’의 진행 방향, 유전자원의 이익이 공유되는 시점,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범위와 같은 내용이 산업계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번 총회는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자원 이용국과 제공국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총회에서 유전자원 제공자와 이용자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국내 생물자원, 그 산업적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국내 생물자원 종이 많은 편은 아닙니다. 생물다양성 측면에서 볼 때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다양한 해외 생물자원을 활용하고 있죠. 그런 면에서 ‘나고야의정서’ 발효 이후 해외 생물자원을 활용할 때 내야 하는 사용료 부담이 늘 수도 있습니다. 국내 생물유전자원과 전통지식에 대한 주권 확보가 중요해졌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한반도에 자생하는 다양한 식물을 자산화하기 위한 연구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이유입니다. 지식재산 문제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국내에서 자생하고 있는 유전자원 소재 확보에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허출원 등으로 권리를 획득하려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특허권을 어떤 방식으로 공유할 것인지 등도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이런 노력이 생물자원 확보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수출자가 되는 것이지요. 이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더욱 많은 생물유전자원 권리를 확보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확보한 자원은 어떻게 활용됩니까? 실제 사례가 궁금합니다.
“고유종 자생식물을 연구하면서 각 생물자원이 가진 효능을 발굴해 제품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기존 원료보다 뛰어난 미백 효능을 가진 ‘흰감국’ 복원이 대표적입니다. 세계 최초로 멸종위기 식물인 ‘흰감국’ 복원에 성공한 것이죠. 전통 자연화장품 브랜드인 한율의 ‘흰감국 미백 파우더 세럼’, ‘흰감국 미백 선크림’ 등을 출시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토종 콩’ 복원작업도 한창 진행중입니다. 2011년부터 농업진흥청에서 희귀 콩 140여 종을 분양받아 재배하고 있습니다. 최근 경기 파주시에 위치한 재배단지에서 종자 증식과 품종 개량에도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외부 기관과의 공동연구도 활발합니다. 이렇게 복원된 토종 희귀 콩을 가지고 새로운 기능성 미용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글·김영문 기자 2014.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