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위원장은 확고한 비핵화 의지를 거듭 거듭 확인했다. 가능한 한 빠른 시기에 완전한 비핵화를 끝내고 경제발전에 집중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2박 3일간의 방북 일정 성과를 보고하기 위해 9월 20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대국민 보고 자리를 가졌다. 9월 18~20일 평양에서 개최된 3차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바로 직후였다. 문 대통령은 “3일 동안 김정은 위원장과 여러 차례 만나 긴 시간 많은 대화를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었던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며 “남북관계를 크게 진전시키고 두 정상 간의 신뢰 구축에도 많은 도움이 된 방문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9월 14일 개성에 문을 연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언급하며 “남북대화와 협력이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정례화한다는 것은 남북이 본격적으로 서로 오가는 시대를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비핵화와 관련해 “북한이 우리와 비핵화의 구체적 방안을 진지하게 의논한 것은 지난날과 크게 달라진 모습”이라며 “북미대화의 진전이 남북관계 발전과 긴밀히 연계된다는 사실에 인식을 같이하면서 북한도 우리에게 북미대화의 중재를 요청하는 한편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함께) 긴밀히 협력할 것을 제의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북한은 비핵화에 관한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미국과 협의할 문제라는 입장을 보이며 우리와 논의하는 것을 거부해왔다. 따라서 남북 정상이 비핵화 방안에 합의한 점은 눈에 띄는 성과라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이어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영구적으로 폐기할 것을 확약했다”면서 “북한이 평양공동선언에서 사용한 참관이나 영구적 폐기라는 용어는 결국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 폐기라는 말과 같은 뜻”이라고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재차 전했다.
▶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김정은 국무위원장 내외가 9월20일 백두산에 올라 손을 맞잡았다. 백두산 천지의 맑은
모습을 보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데 남북 정상이 찾은 이날만큼은 천혜의 비경을 드러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이번 만남은 세 번째다. 1차 남북정상회담은 4월 27일 판문점 남측 지역인 평화의집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은 5월 26일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진행됐다. 평양에서 2박 3일, 53시간의 일정으로 진행된 3차 남북정상회담은 최초·이례적 장면을 속속 연출하며 남북정상회담의 새 역사를 썼다.
북한은 문 대통령에게 최고의 의전을 제공했다. 문 대통령도 “최상의 환대를 받았다”고 했을 정도다. 9월 18일 평양국제비행장(순안공항)에 도착한 문 대통령 내외를 김 위원장과 리설주 여사가 직접 영접했다. 이는 일반적인 정상회담에서도 찾아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북한은 국가원수 예우가 담긴 예포 스물한 발을 발사하고 문 대통령은 북한군 의장대를 사열했다. 문 대통령의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 향하는 길에는 두 정상이 무개차에 올라 처음으로 카퍼레이드를 했다. 평양 시민들은 거리에 나와 한반도기를 흔들며 환영했다. 문 대통령도 손을 흔들며 화답하고 평양 시민들을 향해 머리 숙여 인사했다.
두 정상은 세 번째 만남답게 형식적인 절차를 생략하고 곧바로 공식 회담에 들어갔다. 2000년, 2007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둘째 날 회담을 시작한 것과 대조를 이뤘다. 회담은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진행됐다. 노동당 본부청사는 ‘북한의 심장부’로 일컬어지는 곳으로 이날 남측 언론에 처음 공개됐다. 이어 남북 정상은 삼지연 관현악단의 환영 공연 관람, 목란관 환영 만찬까지 촘촘한 일정을 소화했다. 문 대통령이 평양 도착 직후 가진 휴식 겸 오찬을 제외하고 모든 일정에 김 위원장이 동행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두 정상은 첫날에만 여섯 시간 넘는 일정을 함께해 눈길을 끌었다.
남북정상회담 정례화 토대 마련
방북 둘째 날인 9월 19일, 두 정상은 ‘9월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우리 겨레의 마음은 단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다”며 “하나로 모인 8000만 겨레의 마음이 평화의 길을 열었다”고 했다. 특히 남과 북이 처음으로 비핵화 방안에 합의한 점을 높이 샀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비핵화가 멀지 않았다”며 “남과 북은 앞으로도 미국 등 국제사회와 비핵화의 최종 달성을 위해 긴밀하게 협의하고 협력해나가기로 했다”고 했다. 이어 “지난 봄, 한반도에는 평화와 번영의 씨앗이 뿌려졌다. 오늘 가을의 평양에서 평화와 번영의 열매가 열리고 있다”고 언급하며 남북관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시사했다.
김 위원장은 “수십 년 세월 지속돼온 처절하고 비극적인 대결과 적대의 역사를 끝장내기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를 채택했으며 조선(한)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나가기로 확약했다”면서 비핵화에 대해 첫 육성 발언을 전했다. 이 장면은 전 세계에 생중계로 퍼져나갔다. 이어 “판문점에서 탄생한 4·27 선언에 받들려 북남관계가 역사적 전환의 첫 자욱을 떼었다면 9월 평양공동선언은 관계 개선의 더 높은 단계를 열어놓고, 조선(한)반도를 공고한 평화 안전지대로 만들며 평화 번영의 시대가 보다 앞당겨 오게 될 것”이라고 의의를 높이 샀다. 아울러 연내 ‘서울 답방’을 약속했다.
▶ 3 문 대통령이 평양 대동강수산물식당을 찾아 평양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 4 문 대통령이 평양 5·1경기장에서 15만 명의 평양 시민들 앞에서 연설한 뒤 인사를 하고 있다. 남측 대통령이 북한에서 대중연설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 5 김정숙 여사가 평양 옥류아동병원을 방문해 어린이 환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 대통령은 옥류관에서 평양냉면 오찬과 만수대 창작사 참관으로 일정을 이어갔다. 만찬은 평양 시민들이 즐겨 찾는 평양 대동강수산물식당에서 이뤄졌다. 이곳은 “평양 시민들이 평소 자주 가는 식당을 찾고 싶다”는 문 대통령의 부탁이 반영된 장소였다. 문 대통령은 능라도 5·1경기장에서 펼쳐진 대집단체조 ‘빛나는 조국’ 예술 공연 관람으로 평양의 둘째 날을 마무리했다. 공연은 ‘4·27 선언 평화의 시대, 력사의 출발점에서’, ‘평화와 번영, 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자’ 등의 카드섹션이 이어지자 분위기가 고조됐다. 한 시간에 걸친 공연이 끝나고 문 대통령은 15만 명의 평양 시민 앞에서 남측 정상으로서는 첫 대중연설을 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다”며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그림을 내딛자”고 제안했다. 당초 2분간 예정된 연설은 평양 시민들의 열두 차례의 기립 박수로 7분간 이어졌다.
▶ 1 김정숙 여사가 백두산 천지를 산책하던 중 천지 물을 담고 있다. 그 모습을 본 리설주 여사가 김 여사의 옷
자락이 물에 닿지 않게 잡아주고 있다.
2 백두산 천지로 이동하기 위해 케이블카를 탄 남북 정상 내외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셋째 날은 남북 정상이 함께 백두산 정상을 찾는 명장면이 연출됐다. 백두산 방문 일정은 예정에 없었으나 백두산 트레킹이라는 문 대통령의 바람을 김 위원장이 수락하며 현장에서 성사됐다. 이 모습은 우리 국민들이 중국을 통해서가 아니라 북한 땅을 통해 백두산 관광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남북 정상의 소통을 한 차원 높여 신뢰를 공고화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양 정상은 2박 3일간 대부분의 일정을 동행하며 장시간 허심탄회하게 협의했다. 공식 일정 외에도 다양한 친교 행사를 함께하며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줬다. 김 위원장이 가까운 시일 내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합의한 점도 남북 정상의 관계 발전을 대변한다. 특히 정상회담 정례화의 바탕이 마련됐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번 회담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 여건을 조성했다. 남북 정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와 공동 노력을 여러 차례 재확인했다. 완전한 비핵화 목표와 구체적 실천 조치를 합의문에 명문화한 대목은 이행력을 높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북은 ‘9월 평양공동선언’에 동창리 엔진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이 참관한 가운데 영구폐기하기로 명시함으로써 비핵화 조치의 투명성을 확보했다. 아울러 미국의 상응조치에 따라 영변 핵시설을 영구폐기하고 추가조치를 계속 취한다는 약속을 확보하며 북미대화의 진전 여건을 조성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의 중재자 역할이 다시 한 번 부각되며 북미협상 재개와 종전선언 추진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3차 남북정상회담의 바탕에는 판문점 선언 이행이 있다.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한반도 평화·번영의 내용들이 이번 회담을 통해 본격적인 추진 단계에 진입한 셈이다. 남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 차원에서 연내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 착공식 개최에 합의했다. 조건이 마련되는 대로 개성공단·금강산관광의 정상화, 서해경제공동특구·동해관광특구 조성 문제를 협의할 예정이다. 자연 생태계 보호·복원을 위한 환경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산림협력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전염성 질병 유입·확산 방지를 위한 방역 및 보건의료 협력 역시 강화할 방침이다.
남북은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시설을 조속히 복구·개소하고 적십자 회담을 개최해 먼저 화상상봉·영상편지 교환 등을 해결해나갈 계획이다. 남북교류협력 활성화 차원에서는 문화예술교류를 증진하고 10월 중 평양예술단이 서울에서 공연하기로 했다. 남북은 2020년 도쿄올림픽 등 국제경기에 공동진출 기회를 확대하고 2032년 하계올림픽 공동개최를 유치할 수 있도록 협력해나가기로 약속했다. 10·4 선언 11주년 기념행사와 3·1운동 100주년 행사도 공동추진 방안을 협의할 계획이다.
‘전쟁 없는 한반도’ DMZ·JSA 실질적 비무장화 실현
이번 회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결실은 군사 분야의 합의다. 남북은 ‘판문점 선언 군사 분야 이행합의서’를 ‘9월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로 채택했다. 문 대통령은 “이 합의가 제대로 이행된다면 남과 북은 우리의 수도권을 겨냥하는 장사정포와 같은 상호 간에 위협적인 군사무기와 병력을 감축하는 논의로 나아갈 수 있다”며 “정전협정 이후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을 종전하는 데서 더 나아가 미래의 전쟁 가능성까지 원천적으로 없애는 일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남북은 군사분계선(MDL) 기준으로 남북 각 5km(총 10km) 폭의 완충지대를 형성해 포병사격훈련과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을 중지하는 데 합의했다. 우발적 충돌 위험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시도다. 또 서해 남측 덕적도에서 북측 초도까지 135Km, 동해 남측 속초부터 북측 통천까지 약 80km 해역을 완충수역으로 설정하기로 했다. 과거 군사적 충돌 해역 일대가 평화의 바다로 전환하는 것이다. 아울러 공중완충구역을 설정해 항공기의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합의했다. 고정익(서부 20km·동부 40km), 회전익(10km) 항공기, 무인기(서부 10km·동부 15km), 기구(25km)의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것이다.
남북은 비무장지대(DMZ) 내 모든 GP 철수를 추진한다. 우선 상호 1km 이내 근접한 남북의 각 11개 GP는 올해 말까지 철수된다. 모든 GP가 철수하면 DMZ의 실질적 비무장화가 실현된다. 남·북·유엔사 3자 협의체를 구성해 지뢰 제거를 시작해 JSA를 비무장화하는 점도 특기할 대목이다. JSA가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있기 전처럼 남북 군사들이 자유롭게 오가고, 당시는 소지했던 권총마저 갖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2019년 4월부터는 DMZ 내 유해발굴이 시작된다. 이 인근에는 6·25전쟁에 의한 남북 전사자 유해뿐 아니라 참전국 전사자의 유해가 아직 수습되지 못한 채 묻혀 있다. 유해발굴을 위해 올해 내로 철원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지뢰·폭발물 제거와 도로 개설을 시행할 계획이다. 또한 한강 하구를 공동이용 수역으로 설정해 남북 공동수로조사와 민간선박의 이용을 군사적으로 보장할 방침이다. 그동안 민간선박의 접근이 제한됐던 한강 하구 수역을 개방하는 것은 또 하나의 평화 공간 복원을 의미한다.
‘판문점 선언 군사 분야 이행합의서’는 ‘전쟁 없는 한반도’ 비전을 현실화했다. 남북이 최초로 군사력을 통제해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고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한 실천 방안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한반도의 재래식 군사질서가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분쟁과 대립의 상징이었던 비무장지대와 서해는 평화의 땅, 평화의 바다로 전환하고 한반도는 항구적 평화지대로 탈바꿈하는 분기점이 됐다.
남북은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에 합의해 합의서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진전된 군비통제 조치를 협의할 수 있는 제도적 바탕을 마련했다. 이를 위해 남북 군사당국이 수차례의 회담과 문서 협의를 거쳐 합의를 도출했다. 그 자체가 군사적 신뢰 구축의 한 과정인 셈이다. 남북이 먼저 군사적 긴장 완화 이행조치에 착수하고 종전선언과 비핵화가 함께 진전될 경우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은 머지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