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부모가 할 일은 아이와 밥부터 같이 먹는 것”

2022.05.02 최신호 보기

▶이상경 한국방정환재단 이사장은 매년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를 조사해 발표하고 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을 구분해 어린이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사회의 우선순위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 한국방정환재단 

이상경 한국방정환재단 이사장 인터뷰
“소파 방정환 선생은 당대의 방탄소년단(BTS)이었어요. 가부장제 사회에서 어린이는 계층의 가장 맨 아래에 있는 존재였는데 그런 사회 인식을 바꾸기 위해 <어린이> 잡지를 만들고 이를 토대로 전국에 동화구연을 하러 다녔죠.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말고 치어다보라. 우리의 희망은 아이들에게 있다’라면서요. 요즘 아이돌 그룹이 팬들을 몰고 다니듯 방정환 선생도 어디를 가나 어린이들이 구름 떼처럼 따라다녔다더군요.”
이상경 한국방정환재단 이사장은 소파 방정환 선생(1899~1931)을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에 비유했다. 우리나라 근대 아동문학의 선구자이자 어린이 인권 운동가, 교육가였던 그는 “우리의 미래는 어른보다 새로운 어린이에게 있으니 이들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특히 1922년 5월 어린이날이 첫 선포된 이듬해인 1923년 5월 세계 최초의 아동 인권 선언인 ‘어린이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어린이들에게 그는 그야말로 스타였다.


▶소파 방정환 선생 | 한겨레

“소파는 당대 ‘방탄소년단’…어린이란 말 처음 써”
한국방정환재단은 방탄소년단에 빗대어 ‘방탄어린이’라는 말을 만들어 전시나 행사 등에서 널리 사용한다. 방탄어린이는 ‘방정환이 탄생시킨 어린이’라는 뜻에서 어린이들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이상경 이사장은 “‘어린이’라는 표현을 처음 쓴 사람이 방정환 선생이었다. 어린이를 ‘애녀석’, ‘아해놈’ 등으로 낮춰부르던 시대에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존중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한국방정환재단은 방정환 선생의 사상과 철학을 추모하고 계승하기 위해 1988년 세워졌다. 방정환 선생의 작품을 발굴·해석하는 연구사업과 방정환 선생의 작품을 작가들이 현대에 맞게 새롭게 창작하는 ‘다새쓰(다시 새롭게 쓰는) 방정환 문학 공모전’ 등의 기념사업, 소외계층 어린이를 대상으로 도서를 지원하는 ‘작은물결문고’ 등의 나눔사업을 추진한다.
특히 2019년엔 5권짜리 <정본 방정환 전집>(창비)을 발간함으로써 알려지지 않은 그의 작품을 새롭게 선보였다. 숨겨진 작품을 발굴하는 데 4년, 이를 다듬고 현대적 언어로 해석하는 등의 정본 작업 4년을 더해 총 8년에 걸친 장정이었다.
“방정환 선생은 일본의 식민 지배가 강화되던 1920~1930년대에 활동했어요. 당시 선생의 글을 보면 검열에 걸려 시꺼멓게 가려진 것이 많아요. 누가 쓴 건지 모르게 하려 필명으로 발표한 작품도 많고요. 그래서 평소 선생의 필체와 유사한 작품 중에서 그의 작품을 선별·검증하고 근대어를 현대어로 바꾸는 긴 과정을 거쳐야 했죠. 특히 이번 전집엔 아동문학뿐 아니라 소설, 희곡, 시사평론 등 방정환 선생의 다양한 글을 담았어요. 어린이뿐 아니라 청소년, 여성 인권 신장에까지 인식이 미쳤던 선생의 사상을 깊이 들여다보고자 했습니다.”
2008년부터 재단을 이끌고 있는 이상경 이사장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사업을 고민하다 취임 이듬해인 2009년부터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를 연구해 발표하고 있다. 1987년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현대리서치연구소를 세운 기업가 출신으로서 역량을 살린 것이다. 이 이사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이 조사에서 우리나라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같은 조사 방법으로 설문을 실시한 뒤 결과를 회원국들과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사 첫해인 2009년에 이어 2021년 우리나라 어린이·청소년들의 주관적 행복지수가 22개국 가운데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행복지수를 평가하는 6개 항목 중 건강, 삶의 만족, 어울림은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낮았고 소속감, 외로움은 아래서 두 번째였다. 학교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5위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 이사장은 ‘주관적 만족감’이 낮다는 데 방점을 찍으며 우리 사회가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을 나눠 목표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고 짚었다.

어린이날엔 가족 모두 ‘어린이 선언’ 다시 써보길
이 이사장은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학업 성취도와 예방접종률은 아주 높다. 어린이·청소년의 흡연율과 임신율도 다른 선진국에 비해 굉장히 낮은 수준으로 여러 분야에서 선진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며 “반면 노동시간이 멕시코 다음으로 많고 자살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쟁이 치열한 탓에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 취약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이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상황을 좀 더 비관적으로 보는 것 같아요. 그러니 이를 구분해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지 사회적인 논의를 해야 해요. 많은 어린이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부모보다 친구를 먼저 떠올린다더군요. 당장 부모가 할 일은 아이와 밥부터 같이 먹는 거예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식사는 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의 우선순위를 다시 고민해봐야 할 때죠.”
이 이사장은 이번 어린이날엔 가족이 함께 ‘어린이 선언’을 다시 써보며 어린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것을 조언했다. 한국방정환재단은 2019년부터 ‘나의 어린이 선언 공모전’을 통해 소파의 ‘어린이 선언’을 어린이의 시각으로 다시 써보는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또 어린이 스스로 어린이로서 자존감을 갖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했다. 그것을 ‘소파(작은 물결)·대파(큰 물결)’ 정신이라 했다.
이 이사장은 “방정환 선생의 ‘어린이 선언’을 굳이 외울 필요가 없다. 어린이가 바라는 점을 직접 써보고 어린이 선언을 직접 만들어보며 함께 대화하면 되는 것”이라며 “‘다새쓰’ 공모전을 통해 재해석된 소파의 작품을 함께 읽어봐도 좋다”고 말했다.
“방정환 선생의 탐정소설 <칠칠단의 비밀>, 우리나라 아기 장수 설화를 끌어와 문경민 작가가 다시 쓴 <우투리 하나린>은 7권까지 발간됐을 정도로 인기가 높아요. 작은 물결을 뜻하는 선생의 호 ‘소파’는 ‘잔잔한 물결처럼 천천히 어린이에 대한 인식을 바꾸겠다’는 그의 말에서 비롯했어요. 어린이들도 당장은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일지라도 또 금세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 일일지라도 꾸준히 지속하면 큰 파도를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면 좋겠어요.”

조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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