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칸티나 봉골레
▶홍합탕
조/개/
요즘 물맑은 봄 바다에 보물이 한 가득이다. 다름아닌 봄 조개다. 예부터 우린 귀금속 등 보물을 패물이라 했다. 조개를 뜻하는 한자어 패(貝)는 돈이나 재물을 뜻한다. 우리말 보배 역시 한자어 보패(寶貝)에서 나왔다. 알맹이는 양질의 단백질 공급원, 껍데기는 돈으로도 쓰였다. 한자에 ‘조개 패(貝)’가 들어가는 글자는 재물(財), 선물(贈), 밑천(資), 삯(費), 보물(寶) 등 돈과 관련된 것이 많다. 실제로도 보물이다. 세계 곳곳에서 패총이 발견될 정도로 조개는 초기 인류에게 단백질을 공급, 생명을 유지시켜준 값진 식량이었다.
금이나 가상통화도 그렇듯 모든 재화는 가치가 변한다. 조개는 맛이 드는 지금부터 가장 값지다. 봄 바지락을 위시해 백합, 개조개(대합) 등은 물론 귀한 새조개, 갈미조개(개량조개) 모두 3월에 즐기기 좋다. 굴은 5월까지 맛볼 수 있다. 시원하고 감칠맛을 낼 뿐 아니라 살도 단단하고 탱글탱글하다. 만춘 산란기에 들면 독성을 품을 뿐 아니라 씹는 맛도 덜하다.
삶아도 구워도 맛좋은 조개는 특유의 풍미가 진해 국물을 내기에 좋다. 국과 찌개를 즐기는 습식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선 조갯국을 많이 끓인다. 조갯국이 아니더라도 조개를 기본 밑국물로 쓰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갯벌에서 잡기 좋은 바지락을 많이 쓴다. 시원한 국물 맛이 식사나 해장으로 제격이라 바지락으로 밑국물을 내는 집이 많다. 괜히 바지락을 ‘국민조개’라 하는게 아니다. 게다가 딱 요즘이 제철이다.
백합과에 속하는 바지락은 값도 싸고 맛도 좋지만 작다는 단점이 있다. 씨알이 잘아서 까먹기는 귀찮지만 국물이 시원하고 감칠맛이 제대로 들어 많은 음식에 사용된다. 칼국수니 수제비, 짬뽕 등에 밑국물을 제공한다. 요즘부터 잡히는 바지락은 씹는 맛이 좋다. 재첩보다 좀 큰 크기라지만 알맹이도 탱글하다. 이런 경우엔 알맹이를 빼내 자잘히 다져 죽을 쑤거나 그 자체를 볶아서 먹기도 한다. 새큼달큼한 양념에 봄 미나리와 함께 무쳐 먹어도 좋다.
요모조모 다양한 요리가 가능한 바지락은 서남해안에서 주로 난다. 인천 앞바다부터 안산·화성 등 경기도권부터 충남 서해안 전역에선 바지락으로 칼국수를 주로 끓여먹는다. 해감을 끝낸 바지락을 한가득 넣고 육수를 뺀 다음 반죽을 밀어 칼국수를 넣고 끓이면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자체가 조미료 이상 감칠맛을 내니 애호박 등 푸성귀나 숭숭 썰어넣고 한소끔 끓여내면 완성된다. 바지락에서 나온 육수는 그 자체로 시원하다. 본래가 바닷물을 머금어 짭조름하니 간도 맞아 떨어진다.
남도에선 초무침을 많이 먹는다. 전남 고흥과 장흥 등 바지락 산지에선 미나리, 쑥갓, 양배추 등을 채썰고 난 후 삶은 바지락을 부어넣고 막걸리 식초와 매콤한 고춧가루, 설탕에 쓱쓱 버무려 초무침으로 즐긴다. 초무침을 집어 먹고나면 밥을 비벼 비빔밥으로 마무리한다.
사철 즐기기로는 된장국부터 짬뽕이나 우동 같은 국물요리가 제격이다. 몇 개만 툭툭 던져넣어도 뽀얀 국물이 우러난다. 화학조미료 대용이다. 바지락에 함유한 아미노산 성분도 글루탐산, 베타민 등 조미료의 주요성분과 같다.
된장에도 콩에서 나온 아미노산이 많다. 이 둘이 만나면 시너지가 나 된장찌개 맛이 몇 배나 시원해진다. 감칠맛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셈이다.
전국의 조개 맛집
★해남식당
조개해장국으로 이름난 곳. 꽃게까지 넣고 끓여 뽀얗게 우러난 진한 바지락 조갯국에 칼칼한 고추를 넣어 냄새만 맡아도 입맛이 동한다. 여기다 밥을 말아 먹으면 배배 꼬인 속이 단박에 풀린다. 감칠맛의 보고인 조갯국은 시원한 맛을 내는 데다 살집마다 단백질을 한가득 품어 해장국으로 그만이다. 남도의 중심지답게 소시지전과 김치 등 반찬도 황송하고, 뼈해장국도 맛있다고 소문났다. 광주 동구 중앙로 149-5. 8000원.
★인천집
조개칼국수 마니아의 성지로 꼽히는 곳. 바지락을 한가득 넣고 끓여낸 시원한 조갯국에 가느다란 면발을 말아낸다. 후추 살짝 뿌리고 고추 삭힌 양념 한술 넣으면 그때부터 젓가락이 춤을 춘다. 해장의 절대강자로 전날 아무리 술에 절었대도 다음날 이 집 국물 한 모금 들이켜면 멀쩡해진다. 매끈하고 얇은 국수도 삼키기 부담 없다. 서울 중구 다동길 36. 8000원.
★서울 연남동 상해소흘
바지락을 매콤한 양념에 재빨리 볶아낸 바지락볶음(爆炒花甲)이 있다. 매콤한 고추기름에 두반장 등을 넣고 볶으면 양념에 바지락 특유의 감칠맛이 녹아들어 입에 짝짝 붙는다. 알맹이를 집어먹고 난 후 멘보샤를 양념에 찍어 먹어도 근사하다. 화교들의 터전인 연남동∼연희동 골목에 중국 현지인이 들어와 색다른 중식 요리를 내는 집이다. 서울 마포구 동교로 272. 1만5000원.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