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배기★생선
바다가 식고 있다. 이제 겨울이 오면 바다엔 풍년이 든다. 맛도 들고 알도 든다. 알배기 생선이 많다. 봄철 산란기를 앞두고 몸속에 알주머니를 품기 때문이다. 수정되기 전이나 수정 중인 알은 많은 영양분을 품은 음식이다. 사람들이 알배기 생선을 즐겨 찾는 이유다.
이제 나오기 시작하는 알배기를 보면 도치, 도루묵, 곰치, 양미리, 참게 등이 있다. 조금 일러 산란한 연어도 있다. 열빙어와 명란젓, 청어알젓 등은 사철 즐길 수 있는 ‘알’ 메뉴다.
맛도 좋다. 단백질을 가득 간직한 알 특유의 감칠맛이 있다. 통상 조류나 파충류, 양서류의 것은 에그(egg)라 하지만 생선만큼은 로(roe)라 따로 부른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알 요리는 역시 캐비어라 할 수 있다. 캐비어(caviar)는 철갑상어의 알만 가리키는 게 아니다. 생선알을 절인 음식, 즉 알젓을 통칭하는 말이다. 캐비어는 짭조름하고 살짝 비릿하면서도 진한 풍미를 남기는 진미로 입맛을 돋우기 위해 전채 요리에 주로 쓴다.
유럽에 캐비어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명란젓이 있다. 명태알을 알집째 소금에 절여 담근 젓갈로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이다. 일본에서도 즐겨 먹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짭짤하고 감칠맛이 감도는 명란젓을 밥 위에 올려 반찬으로 먹는 것을 떠올리고, 일본 사람들은 살짝 굽거나 그대로 술과 함께 마시는 안줏감을 연상한다.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에선 18세기 말 혜경궁홍씨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처음 등장하고 그다음부터 <시의전서>, <오주연문장전산고>,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등 문헌에 그 이름이 간간이 등장한다. 부산에 명란젓 가공 공장이 생겨날 정도로 즐겨 먹기 시작한 것은 바로 20세기 초부터였다고 한다.
연어알도 많이 먹는 어류의 알이다. 초밥이나 회에 곁들여 먹거나 밥 위에 올려 먹는다. 보석처럼 붉은색으로 빛나는 알이 커서 입 안에서 톡톡 터지는 느낌이 좋다. 우리나라에선 연어의 어획량이 적고 신선한 상태로 보관이 어려워 값비싼 식재료로 꼽힌다.
겨울철 국내에서 즐겨 먹는 알 요리는 역시 도루묵이다. 동해 북부에서 많이 잡히는 한류성 어종 도루묵은 12~1월에 알을 낳는다. 크고 치밀한 알집을 품고 있다. 단단한 알을 풀어 탕을 끓여 먹거나 꼬들꼬들한 알집째 구워 먹는다.
어획량이 많은 도루묵은 값이 싼 대신 겨울철 별미로 꼽힌다. 등푸른생선처럼 풍미가 진하지 않고 밍밍한 맛이지만 대신 부드럽고 비리지 않아 칼칼한 탕을 끓이거나 구워서 불 향을 내면 맛이 좋다.
열빙어 역시 물속에서 헤엄쳐 돌아다니는 알집이라 할 정도로 알이 크다. 한 입 베어 물면 몸통 속 알집이 씹힌다. 열빙어를 시샤모라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시샤모는 따로 있다. 시샤모는 일본 홋카이도에서만 잡힌다. 비싸고 귀하다. 우리나라에서 술안주로 팔리는 시샤모는 거의 열빙어다.
캐비어에 견줄 만한 고급 알 요리로는 어란이 있다. 봄철 숭어알을 채취해 손질하고 오랜 시간 참기름을 발라가며 그늘에서 말려야 하는 등 기술과 공이 많이 든다. 칼로 얇게 저며 안주로 즐기는 최고급 식재료다. 명인이 만든 어란은 한 쌍 두 줄기에 수십만 원을 호가한다. 전남 영암이 유명하다.
이탈리아에도 염장한 숭어알을 말려 만든 전통 음식 ‘보타르가’가 있다. 일본에는 카라스미(唐墨), 대만에는 우위즈가 비슷한 음식이다. 성게알은 사실 알이 아니다. 노란 부분은 생식소로 성게는 체외수정을 한다. 몸 안에 알이 있을 수 없는 개체다.
어쨌든 살 먹고 알 먹으니 기쁨이 두 배가 되는 때다. 알배기 요리로 든든히 영양을 채우고 면역을 키워 추운 겨울과 감염병 대유행을 대비해봄 직하다.
전국의 알배기 생선 맛집
★서울 정라진
상호에서 알 수 있듯 동해안 음식을 파는 집으로 유명하다. 도루묵조림이 맛이 좋다. 칼칼하고 시원한 국물을 입에 넣으면 딸려 온 도루묵알이 꽈득꽈득 씹힌다. 무른 살을 숟가락으로 슬슬 긁어 먹고 잔뜩 들어간 알집을 간장에 찍어 먹으면 술 도둑이 따로 없다. 밥에 비비면 마치 차조밥을 먹는 듯 밥알 사이로 스며든 알이 양념과 함께 심심한 밥맛을 보충해준다.
★서울 로칸다몽로
명란파스타. 누가 처음 파스타에 명란젓을 넣을 생각을 했을까? 고소한 올리브유 소스로 명란 특유의 감칠맛도 더하고 간도 맞춘다. 매끈한 면발에 묻은 명란 알갱이 덕에 식감도 재미있다. 면발을 씹을 때마다 고소한 맛이 톡톡 터진다. 파스타에 따로 고명을 얹지 않아도 충분하다.
★속초 당근마차
도치알탕. 영랑호 인근 포장마차촌 당근마차는 강원도 토속 음식을 주로 하는 선술집이다. 겨울 제철 음식으로 도치알탕이 딱이다. 아귀를 닮은 도치에 요즘 알이 많이 들었다. 꼬들꼬들한 살과 알을 가득 담아 끓여낸 도치알탕은 김치도 넣고 끓여 시원하다. 알이 한가득인 국물을 떠서 밥을 말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든든하다. 도루묵구이도 겨울철 별미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