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건강 로켓처방 누리집에 후기를 남긴 이들에게 배송하는 ‘오감키트’. 액자, 연필, 족욕제 등 선물이 가득 들어 있다.
코로나19 극복기 마음건강 방역
많은 이들이 코로나19로 인한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와 대면 활동 제약, 경제적 타격 등으로 심리적 불안과 우울을 호소한다. 이른바 ‘코로나 우울’이 늘어나는 때 거리두기, 손 씻기, 실내 환기 등 물리적 방역만큼 중요한 게 정신건강 방역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영역에선 각종 정신건강 서비스 지원책을 마련하는 등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챙기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경기 안산시정신건강복지센터(안산센터)의 비대면 정신건강 서비스 ‘마음건강 로켓처방’(로켓처방) 사례는 단연 눈에 띈다. 안산센터는 로켓처방으로 보건복지부 ‘2021 지역사회 정신건강 우수 프로그램 및 우수 기관 공모’에서 우수 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코로나19 정신건강 방역 우수 사례로 로켓처방 서비스를 만나봤다.
▶안산시정신건강복지센터 팀원들이 센터 안에 있는 직업재활 카페 ‘이음’에서 마인두 캐릭터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혜경 실무팀장, 변지우 상임팀장, 이영훈 정신건강사회복지사(왼쪽부터).
“형식적 아닌 진심 어린 공감·처방에 감탄”
안산시에 사는 김 모 씨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마음이 지치고 힘들었다. ‘별거 아니야.’ ‘내가 유난스러운 걸 수도 있어.’ ‘굳이 병원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부정적인 감정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자신의 고통을 외면했다.
그러다 안산센터의 로켓처방 서비스를 만났다. 이는 마음건강 문제와 고민을 접수하면 정신건강 전문가가 24시간 이내로 맞춤형 답변과 처방을 제공하는 비대면 정신건강 서비스다. 안산 시민이라면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서비스를 이용한 뒤 김 씨의 마음은 많이 달라졌다. 그는 “상담사가 신체와 정신은 하나라고 했는데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며 “한 가지 생각에 과하게 몰두하면 더 중요한 것들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에도 공감했다”고 말했다. 사실 형식적인 답변이 올 것으로 지레짐작했지만 진심 어린 공감과 처방이 담긴 답변에 놀랐다. 그는 “마음이 힘든 다른 이들에게도 적극 추천하고 싶은 서비스”라고 칭찬했다.
▶경기 안산시정신건강복지센터
누리집에 고민 등 접수하면 24시간 내 답변
로켓처방 서비스는 피시(PC)나 휴대전화로 마음건강 로켓처방 누리집(rocket.ansanmind.or.kr)에 접속한 뒤 각종 마음건강 상담 분야와 최근 내가 느낀 감정 종류 등을 선택하고 현재 고민을 작성하는 식으로 진행한다. 고민 작성 뒤 긍정·명상·여가·오감·운동·호르몬 처방 가운데 최대 두 가지를 선택하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건강 증진 활동을 즉시 처방해준다.
예를 들어 명상 처방을 고르면 ‘마음챙김’ 등을 활용한 명상법과 다양한 상황에서 실천할 수 있는 명상 콘텐츠 등을 제공한다. 서비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신건강 전문가가 작성한 맞춤형 답변이 24시간 이내 문자로 온다. 고민 내용을 통해 고위험군으로 평가되면 2차 상담을 권유받고 안산센터 내 다양한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로켓처방 누리집에 후기를 남긴 이들에겐 ‘마음건강 로켓처방 오감키트’(오감키트)도 배송한다. 상자에는 액자와 연필, 목공 스피커, 족욕제, 비타민, 스트레스 볼 등 각각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에 맞춤한 정성스러운 선물이 가득 담겨 있다. 김 씨의 경우 마음건강 로켓처방 1주년 베스트 후기로 뽑혀 ‘마인두 굿즈’도 받았다.
오감키트와 마인두 굿즈에 등장하는 안산센터의 정신건강 캐릭터 ‘마인두(MINDU)’도 흥미롭다. 이는 ‘마음’을 뜻하는 ‘MIND’와 ‘만두’의 합성어로 ‘마음’ 그리고 ‘마음을 빚어준다’ ‘긍정으로 꽉 차 있다’ 등 중의적 뜻이 담긴 캐릭터다.
우울, 불안, 두려움, 무서움 등 부정적 감정은 우리도 모르는 새 갑자기 확 올라오곤 한다. 이럴 때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거나 전문가와 상담하고 싶지만 당장 그럴 만한 여건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대면 방식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에 대해 ‘창피하다’ ‘수치스럽다’ 등 편견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며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코로나 우울’을 홀로 견디는 이들도 많다.
▶안산시 곳곳에서 마음건강 로켓처방 서비스를 홍보하고 현장에서 고민엽서함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든 차량 ‘마음쏙카’
고민 내용 따라 맞춤형으로 상담 처방
대면 서비스의 한계를 극복하며 익명성은 보장하고 물리적·심리적 접근성은 높일 만한 서비스는 없을까? 로켓처방은 이런 질문에서부터 시작됐다. 변지우 상임팀장은 “장소, 시간 등 상황에 방해받지 않고 다양한 마음건강 문제에 대해 즉시성·접근성 있게 상담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서비스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2020년 2월 개발에 착수해 그해 5월 22일 서비스가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2021년 12월 8일 기준 2만 3000여 명이 로켓처방에 접속, 4300명이 고민 상담 답변 서비스를 받았다. 이 서비스는 코로나19 시대 로켓처럼 등장해 상담해주고 사람들의 마음속 걱정과 불안을 로켓처럼 싣고 가는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
그 밖에 다른 정신건강 서비스와 차별화된 이 서비스만의 특장점도 있다. 안산센터 측은 정신건강 상담, 일상생활, 자존감, 대인관계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맞춤형 고민 상담으로 접근해 거리감을 좁혔다는 점, ‘마인두’라는 정신건강 캐릭터로 친근하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게 했다는 점 등을 손꼽는다.
여가, 여행, 명상 등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실질적인 개선 방법 등을 제안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음식을 만들어봤어요”, “자연 속에서 운동했어요” 등 시민들은 상담에 따라 실천한 것을 사진 후기로 올리기도 한다.
시민들은 로켓처방에 고민을 남기며 자신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경험도 한다. 변 상임팀장은 “평소 일기 쓰는 습관을 들이면 좋다고 하는 이유는 글로 생각을 정리하는 가운데 자신의 마음을 객관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내 문제를 바깥으로 꺼내놓는 순간 이제껏 엄청나게 커 보였던 문제들이 사실은 별거 아닐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 등 환기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고민을 적어 보내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많이 해소된 느낌”이라고 후기를 남긴 시민도 많다.
시민들은 로켓처방을 이용하며 상담 요청 24시간 안에 문자 답변이 온다는 사실에 많이 놀라워한다. 이 답변이 참 정성스럽게 쓰였다는 걸 알고 다시 한번 놀란다.
▶카페 ‘이음’에 마련된 고민엽서함
온라인 생소한 이들 위해 오프라인 엽서함도
상담 답변은 로켓처방 실무를 담당하는 이영훈 정신건강사회복지사가 초안을 작성하고 박혜경 실무팀장의 검토 등을 거친 뒤 최종 전송한다. 미리 짜둔 정형화된 답변을 복사해 붙이는 방식이 전혀 아니다. 이 복지사는 “고민 내용, 상담자가 처한 상황 등에 따라 어떤 상담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 맞춤형으로 준비한다”고 말했다.
실무진이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역시 서비스 이용자들의 감동적인 후기가 올라올 때다. 박 실무팀장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잘 극복할 용기가 생겼다’ 등 후기가 올라올 때 현장에 있는 입장에서 가장 뿌듯하고 기쁘다”고 말했다.
로켓처방에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상담을 요청하는 문제 유형은 기분 문제(19%), 자존감(15%) 순이다. 이들은 이런 문제로 우울(18%), 불안(14%) 등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상담을 요청했다. 이용자는 20~30대가 가장 많으며 40대, 10대 이용자가 그 뒤를 잇는다.
안산센터 측은 온라인 플랫폼이 다소 낯선 연령대에 적극적으로 다가가고자 센터 내 직업재활 카페, 단원보건소 등에 ‘오프라인 로켓처방존’도 설치했다. 로켓처방존에 놓인 고민엽서에 손 글씨로 고민을 적어 고민엽서함에 넣으면 역시 24시간 안에 문자로 맞춤형 답변과 처방을 받을 수 있다.
실제 아이 넷에 부모가 함께 사는 한 6인 가구는 코로나19로 힘들던 차 오프라인 로켓처방존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부모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부담감으로 정신적으로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였고 청소년기 자녀들은 그 나이에 경험하는 부모와 갈등, 학업 고민 등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이들은 고민엽서에 각자 고민을 작성하고 맞춤형 처방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며 자신의 정신건강 문제를 돌아보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더 많은 이들 이용했으면’… 전국에 보급
안산센터 앞에는 ‘마음쏙카’라고 적힌 차량이 서 있다. 안산시 곳곳에서 로켓처방 서비스를 시민들에게 홍보하고 현장에서 고민엽서함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든 차량이다. 안산센터는 2021년에 정보무늬(QR코드)를 통해 쉽고 간편하게 우울, 불안, 스트레스 지수 등 자신의 정신건강을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인 ‘지수야! 안녕?’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안산센터 사례를 보며 ‘나는 그곳 시민이 아니니까 이용할 수 없겠지…’라며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안산센터는 더 많은 시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로켓처방을 전국 16개 시·군·구에 보급했다.
변 상임팀장에게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국민을 위해 힘이 되는 한마디를 부탁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나만 유독 힘들어하나?’, ‘내가 다른 사람보다 멘털이 약한가?’ 하는 생각으로 자책하거나 위축돼 있는 분들도 있어요. 사실 그 감정은 지금 이 상황에선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습니다. 표현이 덜 되느냐, 더 되느냐의 차이죠.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인 상황이고 이 또한 지나가니 용기를 내세요. 만약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힘들다면 반드시 관련 기관의 도움을 받으세요. 전국 지자체에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의 문을 두드리면 다양한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글 김청연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
국민 마음건강 체계적·전문적 심리지원
정부는 2020년 1월부터 통합심리지원단을 운영하는 것을 시작으로 관계부처 합동 심리지원 대책을 마련해 다양한 심리지원을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의 심리지원 사업은 2020년 9개 부처 52개에서 2021년 12개 부처 72개 사업으로 늘었다. 또한 누리소통망(SNS) 비대면 심리지원, 찾아가는 심리상담 등의 사업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국민의 건강한 일상 복귀를 위한 전 국민 심리지원은 계속된다. 복지부는 코로나우울협의체 운영을 통해 관계부처, 지자체와 함께 코로나19 환자·격리자·대응인력,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맞춤형 지원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또한 지자체 정신건강복지센터를 통해 청년·여성·대응인력 등 대상별 코로나 우울 예방 프로그램 운영을 활성화하고 심리상담 직통전화(1577-0199),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 등 비대면 심리지원과 마음안심버스 등을 통한 찾아가는 심리지원도 강화한다.
6월 30일에는 5개 국립병원 내 권역별 트라우마센터가 출범했다. 이를 통해 코로나19 환자 등 정신건강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선제적 심리지원을 강화하고 코로나19 등 감염병·사회재난 시 국민의 마음건강을 체계적·전문적으로 심리지원을 실시할 계획이다. 트라우마센터는 현재 수도권(국립정신건강센터), 영남권(국립부곡병원), 충청권(국립공주병원), 호남권(국립나주병원), 강원권(국립춘천병원)에 설치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