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 강릉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강원FC와 대전하나시티즌의 경기에서 강원 한국영이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누구도 선뜻 나설 수 없는 선택. 하지만 최용수 감독의 과감한 도전이 통했다. 역시 승부사라는 찬탄이 절로 나온다.
최용수 강원FC 감독이 2021 K리그 최종 경기인 대전하나시티즌과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합계 4-2)하면서 2부리그 강등 벼랑 끝에서 극적으로 팀을 구했다.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 패배(0-1)로 나락으로 떨어졌으나 2차전 대승(4-1)으로 팬들을 열광시켰다. 2차전에서도 전반 선제골을 내준 뒤 역전승을 거두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부 탈락 위기에서 살아남으면서 강원의 재도약 꿈은 가속이 붙게 됐다. 애초 강원은 이번 시즌 프랜차이즈 축구단의 새로운 모델을 창조한다는 각오로 의욕적으로 출발했다. 우리나라 축구의 자산이며 전략가인 이영표를 대표이사로 영입했고 프랜차이즈 스타를 키우기 위해 주축인 한국영과 장기계약을 맺었다. 대구FC에서 김대원을 영입했고 기존의 조재완과 고무열 등 득점력이 뛰어난 골잡이도 보유했다. 임채민, 윤석영, 임창우 등 수비수의 노련미에 더해 김동현, 김대우 등 젊은 피가 가세하면서 축구 전문가들의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속도를 앞세운 김병수 전 감독 특유의 ‘병수볼’ 축구가 힘을 내지 못했다. 시즌 초반 임채민, 고무열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등 선수들의 부상 불운이 잇따랐고 코로나19 환자 발생으로 여러 경기의 일정이 늦춰지는 등 리듬이 끊겼기 때문이다.
시즌 막판 연기됐던 경기를 치르면서 승점을 쌓아야 했지만 하위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선수들의 체력 소모가 커졌다. 결국 이영표 대표가 김병수 감독과 결별을 결정했고 감독 경질 이후에도 대행 체제가 흔들리는 등 극도의 혼란을 겪었다.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강원FC와 대전하나시티즌의 경기에서 최용수 강원 감독이 환호하고 있다.│프로축구연맹
강등 위기 속 카리스마로 팀 장악
이 상황에서 등장한 ‘카드’가 최용수였다. 당시 최용수 감독이 강원의 요청을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시즌 38라운드 가운데 마지막 두 경기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최하위 광주FC는 2부 강등행이 유력했고 11위 강원은 2부 팀과 승강 플레이오프를 벌여야 할 가능성이 컸다. 김대길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은 “이런 경우 사령탑을 맡는 경우는 흔치 않다. 팀이 2부로 떨어졌을 때의 후폭풍을 감당한다는 게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용수 감독 특유의 승부사 기질이 발휘됐다. ‘사느냐, 죽느냐’의 시험대에서 자신의 운명을 거는 과감함을 드러냈다. 그 배경에는 아마도 강원 선수단의 역량에 대한 믿음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전력 변화가 급격히 이뤄질 수 없는 막판 단기전 승부에서는 정신력이 판을 가를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로 팀을 장악해 갖고 있는 잠재력을 100%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다.
최용수 감독이 첫 지휘를 한 K리그1 37라운드 FC서울전 무승부(0-0)에서 효과는 그대로 드러났다. 전임 감독 아래서 공격적 플레이를 폈던 강원 선수들은 바뀐 팀 색깔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당시 무승부로 11위가 확정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감독이 짧은 시간 팀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38라운드 성남FC전 무승부(1-1)로 시즌을 마감한 최용수 감독은 대전과 승강플레이오프 1차전 원정 패배 때 강등의 위기감을 체험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2부 리그에 있는 자신을 떠올린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직 한 경기가 남아있다. 2차전에서 꼭 반전 드라마를 쓰겠다”고 말했다. 아마도 스스로에 대한 채찍이며 각오였을 것이다.
2018년 이어 승강 플레이오프 극적 승리
그리고 12월 12일 강릉종합운동장. 4000여 명의 관중 앞에서 강원은 전반 25분까지 0-1로 끌려갔다. 1차전 패배까지 합치면 0-2. 더욱이 원정골 우선 원칙에 따라 강원은 최소 2골차 이상으로 이겨야 잔류할 수 있었다. 시즌 막판 득점포 빈곤에 허덕이던 강원이 3골 이상을 넣으리라 생각한 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전반 26분 상대 자책골로 시작된 각본없는 드라마는 임채민(전 27분), 한국영(전 30분)의 ‘4분 새 3골’로 이어졌고 후반 45분 황문기의 쐐기골로 4-1의 대역전승으로 마감됐다. 역대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에서 졌던 팀이 뒤집기에 성공한 첫 사례였고 최용수 감독은 2018년 서울에 이어 강원에서도 승강 플레이오프를 승리로 이끈 사령탑이 됐다.
최용수 감독은 경기 뒤 “대전의 일본 선수 마사가 1차전 승리 뒤 2차전에서도 ‘압도적인 경기를 하겠다’고 말한 것은 실수였다. 우리 선수들이 그 말에 더 똘똘 뭉쳤다”고 소개했다. 또 “1차전에서 져 쫓기고 불안했지만 선수들이 편안하게 더 도전적으로 경기에 임하도록 했던 게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마사는 강원 선수들에게 꽁꽁 발이 묶였다. 팀이 잔류할 경우 입장료를 되돌려준다는 정책으로 이날 입장한 4000여 명의 관중은 입장료를 모두 돌려받는 기쁨도 누렸다.
김대길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은 “K리그 1부와 2부 팀에는 차이가 있다. 강원이 잔류에 성공하면서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시·도민구단 건설 구상이 힘을 받게 됐다. 잘못하면 역적으로 몰릴 수 있는 상황에서 최용수 감독의 승부사 기질도 통했다”고 평가했다.
김창금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