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컬링 국가대표 팀 킴 선수들이 2021년 12월 18일 네덜란드에서 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자격대회 최종전에서 라트비아를 꺾고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 뒤 기뻐하고 있다.
“영미! 영미!”
4년 전 강원 평창을 가득 채웠던 외침이 이번 겨울 중국 베이징에서도 울려 퍼진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은빛 신화를 써낸 여자컬링 국가대표팀 ‘팀 킴’이 2월 4일 개막하는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스킵 김은정(32), 리드 김선영(29), 세컨드 김초희(26), 서드 김경애(28), 후보 김영미(31)로 구성된 여자컬링 국가대표팀은 2021년 12월 18일 네덜란드 레이와르던에서 열린 올림픽 자격대회(OQE) 여자 4인조 본선 최종전에서 라트비아를 8-5로 꺾으며 베이징행 막차에 탑승했다.
베이징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이날 마지막 출전권을 놓고 라트비아와 맞붙은 팀 킴은 7엔드까지 5-4로 1점 차 경기를 치르는 등 살얼음판 대결을 펼쳤다. 2021년 12월 17일 열린 일본과 조 2·3위전에서 패한 우리나라는 올림픽 출전을 위해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다.
해결사는 ‘안경 선배’ 김은정이었다. 주장이자 맏언니인 김은정은 이날 라트비아가 8엔드 마지막 시도 때 우리 쪽 스톤을 제거하려다 자신의 방어용 스톤을 맞히는 실수를 저지르자 침착하게 마지막 스톤을 2번 위치에 가져다 놓으며 2점을 따냈다. 스코어 7-4. 승부의 추가 우리 쪽으로 기울었다. 승부처마다 ‘끝내기 스톤’을 날리며 경기 흐름을 휘어잡는 승부사다웠다.
평창 은메달 이어 2회 연속 메달 도전
반격에 나선 라트비아는 9엔드에서 1점을 따라붙었고 마지막 10엔드에서 2점 이상 스틸(선공 엔드서 득점)을 노렸다. 하지만 팀 킴은 침착하게 오히려 1점을 추가하며 승리를 지켰다.
2014 소치동계올림픽 이후 3연속 올림픽 출전을 일군 우리나라 여자컬링은 이제 평창동계올림픽 은메달에 이어 2회 연속 메달에 도전한다. 평창 대회 때 은메달 신화를 쓰며 컬링을 단숨에 국민적 관심 종목으로 바꿔놓은 팀 킴이 이번엔 어떤 드라마를 쓸지 관심이 쏠린다.
어렵사리 베이징행 막차에 탑승했지만 팀 킴은 여전히 또 한 번의 메달을 딸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 세계컬링연맹(WCF) 세계 랭킹을 보면 우리나라는 현재 3위에 올라 있다. 평창 대회 때 팀 킴은 세계 랭킹이 8위로 지금보다 5단계 낮았다.
여자 4인조 컬링은 10개 참가국이 모든 팀과 한 번씩 맞붙는 풀리그 방식으로 예선을 치른다. 이후 상위 4개 팀이 준결승에 진출해 메달 색을 가린다.
팀 킴의 첫 상대는 캐나다(2월 10일)다. 이후 팀 킴은 영국(11일), 러시아(12일), 중국(13일), 미국(14일), 일본(14일), 스위스(16일), 덴마크(16위), 스웨덴(17일)과 맞붙는다. 준결승은 2월 18일에 열리고 결승전은 20일에 치러진다.
이번 대회는 컬링 강국 간 진검승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개최국 중국(9위)을 포함해 스위스(2위), 러시아(4위), 미국(6위), 스웨덴(1위), 덴마크(10위), 캐나다(5위), 스코틀랜드(8위), 일본(7위), 우리나라(3위·이상 출전권 획득 순) 등 10개 나라가 모두 세계 랭킹 1∼10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팀 킴이 2021년 12월 17일 베이징동계올림픽 자격대회 일본과 경기에서 스톤을 던지고 있다.│세계컬링연맹
‘세계 최강’ 스웨덴에 도전장
예선에서 가장 기대를 모으는 건 숙적 일본과 맞붙는 ‘한일전’이다. 우리나라는 평창 대회 때 준결승에서 일본을 만나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8-7로 승리하며 결승에 진출했다. 이번 올림픽 자격대회 예선(4-8 패)과 본선(5-8 패)에서 잇달아 패했기 때문에 베이징에서 이를 설욕할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평창 대회 결승에서 맞붙었던 ‘세계 최강’ 스웨덴에 복수전을 펼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우리나라는 당시 스웨덴에 3-8로 패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주장 김은정은 경기 직후 아쉬움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팀 킴은 김은정이 고등학교 1학년 때 경북 의성 컬링장에 고교생 체험학습 기회가 생기자 ‘단짝’ 김영미와 함께 참여한 것을 계기로 꾸려졌다. 친언니 김영미의 심부름을 왔던 김경애가 친구인 김선영과 함께 합류했다. 평창 대회 땐 4강 진출이 목표였지만 예선에서 8승 1패를 거두며 1위로 플레이오프에 올랐고 우리나라 컬링 사상 최초로 올림픽 은메달까지 땄다.
뛰어난 실력과 톡톡 튀는 개성이 만난 팀 킴은 평창을 뜨겁게 달군 스타가 됐다. 의성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특산물 마늘에 빗대어 외신에선 ‘갈릭걸스(마늘소녀)’라고 불렀고 “영미!”를 부르는 외침은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당시 컬링에서 나온 은메달은 그야말로 ‘깜짝’ 메달이었지만 이제는 국민적 관심이 쏠린 인기 종목이다.
대표팀 주장 김은정은 “올림픽 이후 경기 결과 상관없이 저희를 응원해주는 많은 국민께 감사하다. 이를 잊지 않고 코로나19로 많이 힘든 국민께 베이징올림픽에서 조금이나마 위로와 기쁨을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준희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