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 이란 테헤란 아자디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4차전 이란과 경기에서 손흥민이 선제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낙제점은 아니다. 하지만 우등생도 아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의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이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과정에서 보인 경기력에 대한 전문가의 시선이다. 막힌 가슴을 뻥 뚫어주는 호쾌한 맛도 없지만 그렇다고 월드컵 10회 연속 본선행에 실패할 것 같은 절망감을 주는 것도 아니다.
최종예선 네 경기를 치른 가운데 우리나라(2승 2무·승점 8)는 A조 6개국 가운데 이란(3승 1무·승점 10)에 이어 2위다. 조 1~2위에게 주어지는 월드컵 본선 직행 티켓을 따기 위해서는 남은 여섯 경기를 잘 치러내야 한다. 9~10월 이뤄진 세 차례 연속 안방 경기의 결과는 2승 1무였다. 표면적으로 괜찮아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다르다. 벤투호는 9월 초에 서울에서 열린 최종예선 1차 이라크전(0-0)에서 결정력 빈곤으로 승리하지 못했고 경기 수원에서 열린 2차 레바논전(1-0)에서 권창훈의 골로 어렵게 이겼다.
10월 초 경기 안산에서 열린 3차 시리아전(2-1)에서는 종료 직전 손흥민의 극적인 골로 기사회생했다. 후반 동점골을 빼앗긴 뒤 자칫 무승부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상대 수비가 잠시 헐거워지면서 뒤집을 수 있었다. 안방 세 경기는 이길 것으로 기대했던 팬들은 거북이 따라 용궁갔다가 가까스로 살아온 토끼의 심정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발등의 불 최전방 원톱
10월 12일 테헤란에서 열린 최종예선 4차 이란전(1-1)은 가장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경기였다. 이란은 까다로운 상대. 아시아 국가 가운데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가장 앞선다. 1974년 테헤란 원정이 시작된 이후 우리나라는 1200m 고지의 아자디스타디움에서 이긴 적이 없다. 그런데 손흥민이 선제골을 터트려 기세를 뽐냈다. 아쉽게 무승부로 마쳤지만 2009년 박지성이 아자디스타디움에서 넣은 원정골 이후 손흥민이 12년만에 득점포를 가동한 것은 그나마 위안이 됐다.
벤투 감독은 이란전 무승부 뒤 “팀이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스스로 좋은 평가를 내렸다. 최종예선 1~2차전과 달리 3~4차전에서는 점유율을 강조하면서도 침투의 속도를 높이고 좁은 지역에서 약속된 듯한 정교한 패스가 나오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공을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골을 넣는 것이 중요한 만큼 상대 위험지역 근처에서 선수들이 생산하는 슈팅의 빈도도 늘어났다.
단신이지만 발재간과 시야가 좋은 황인범의 패스 전개가 살아나면서 이재성이나 황희찬 등과 합작하는 공격 옵션이 다양해지고 수비형 미드필더 정우영이 중원에서 연결 구실을 하면서 김민재 등과 수비를 안정화하고 있는 점도 돋보인다. 왼쪽 풀백 홍철과 김진수, 오른쪽 풀백 이용과 김문환 등도 맡은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점도 여전하다. 황의조가 맡고 있는 최전방 원톱의 문제는 발등의 불이다. 황의조는 대표팀 최고의 공격수로 벤투호에서도 득점원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지만 아직 골을 기록하지 못했다. 미드필더와 떨어져 고립해 있는 경우가 많고 패스가 들어와 연계가 이뤄지더라도 파괴력 있는 슈팅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란전 후반 선제골로 앞서 나가면서 우위를 지키지 못한 것도 짚어봐야 한다. 김대길 KBS N 해설위원은 “상대가 강력한 공세를 펴더라도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순식간에 공수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실점한 것은 앞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흥민이 없었더라면…
손흥민의 의존도가 높다는 것도 곱씹어볼 대목이다. 대표팀간 A매치 94경기(29골)에 출전한 손흥민은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최종예선을 펼치던 벤투호를 구해낸 일등공신이다. 손흥민의 가치는 가정법을 동원할 경우에 더 뚜렷하다. 만약 최종예선 3차 시리아전에서 손흥민의 결승골이 없었다면, 만약 최종예선 4차 이란전에 손흥민이 득점하지 못했다면, 그랬더라면 한국은 초반부터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사령탑 교체라는 극약처방까지 이어질뻔 했다. 이런 까닭에 손흥민이 부상 등의 요인으로 결장했을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벤투 감독은 역대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 사령탑 가운데 가장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것은 벤투 감독의 실력 때문이 아니라 코로나19라는 비상 시국에서 이뤄진 우연일 뿐이다.
앞으로 남은 여섯 경기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잘 나가다가도 추락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월드컵 본선을 향해 모든 팀들이 사력을 다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수렁에 빠졌던 강호가 탈출하는 것이 예사로운 것은 축구의 실력은 그 나라 축구 인프라, 시스템, 시장에 따라 근본적으로 좌우되기 때문이다.
가령 아시아 최종예선 B조에서 일본(2승 2패·승점 6)이 사우디아라비아(승점 12), 호주(승점 9), 오만(승점 6)에 이어 4위를 달리는 등 초반 주춤하고 있지만 후반부에 반등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마찬가지로 벤투호가 남은 여섯 경기에서 최소 2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매 경기 ‘벼랑 끝’의 심정으로 대비해고 연구해야 한다.
김대길 해설위원은 “벤투호가 처음 출발했을 때와 지금의 시점을 비교하면 진화했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진화의 과정에 있는 것 같다. 남은 여섯 경기에서 진화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창금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