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양효진(왼쪽 세 번째)이 11월 13일 광주 페퍼스타디움에서 열린 2021~22 V리그 페퍼저축은행과 경기에서 공격에 성공한 뒤 선수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KOVO
2020 도쿄올림픽 4강 신화를 쓴 여자배구가 국내 프로리그(V리그)에서도 인기몰이를 하며 올림픽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대표팀에 대한 관심이 국내 리그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더욱이 이번 시즌 새롭게 합류한 페퍼저축은행까지 흥행몰이를 하며 배구 열풍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인기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최근 시청률 조사에서 V리그 1라운드 케이블TV 평균시청률은 전국 케이블 가구 기준 1.12%(닐슨코리아)를 기록했다. 1라운드 평균시청률이 1%를 넘어선 것은 2005년 프로배구가 출범한 뒤 처음 있는 일이다. 최근 단계적 일상회복 전환과 함께 모든 경기장에서 관중 입장도 가능해지며 현장의 열기 또한 한층 뜨거워지고 있다.
▶KGC인삼공사 이소영
V리그서 울고 웃는 올림픽 스타들
여자배구 열풍을 이끄는 건 무엇보다 도쿄올림픽에서 활약했던 국가대표팀 선수들이다. 현재 V리그 여자부에서 활약 중인 대표팀 선수는 안혜진·오지영(GS칼텍스), 박은진·염혜선·이소영(KGC인삼공사), 김수지·김희진·표승주(IBK기업은행), 박정아(한국도로공사), 양효진·정지윤(현대건설)이 있다. 중국 상하이로 이적한 김연경(33)을 뺀 11명의 선수가 국내 7개 구단 가운데 5곳에 분포했다. 대표팀에 대한 관심이 리그 전체로 퍼져나가는 이유다.
특히 대표팀 선수들의 엇갈린 희비는 리그 흥행의 주요 요소다. 지난 여름 도쿄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던 이들이 경쟁상대로 만나 울고 웃으며 새로운 드라마를 쓰고 있고 팬들은 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
가장 분위기가 좋은 건 단독 선두 현대건설의 양효진(32)과 정지윤(20)이다. 양효진이 국내 선수 가운데 득점 1위(121점)를 기록하며 팀을 든든하게 지키고 신예 정지윤은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정지윤은 대표팀을 은퇴한 김연경이 직접 포지션(레프트) 후계자로 지목해 더욱 관심을 받고 있다. 현대건설은 개막 8연승을 달리며 승점 23으로 리그 1위(이하 11월 16일 기준)에 올라있다.
이번 시즌 팀을 옮긴 이소영(27)의 활약도 눈에 띈다. 지난 시즌 GS칼텍스에서 V리그 여자부 최초의 트레블(리그+컵대회+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이끈 이소영은 이번 시즌 KGC인삼공사로 자리를 옮기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리그 초반 잠시 주춤했지만 어느새 국내 선수 득점 2위(120점)까지 올라섰다. 양효진보다 1경기를 덜 치른 상황이라 사실상 득점 1위에 다름 없다. 인삼공사는 6승 1패(승점 18)로 리그 2위에 올라있다.
반면 김수지(34), 김희진(30), 표승주(29) 등 국가대표를 3명이나 보유해 스타군단으로 꼽히는 IBK기업은행은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다. 이번 시즌 개막 7연패를 당하며 꼴찌인 7위에 처졌는데 창단 이래 최악의 연패 기록이다. 대표팀 선수들이 아직 제 컨디션을 보여주지 못하는 모습인데 특히 도쿄올림픽 때 무릎 통증을 안고 뛰었던 김희진이 지난 11월 9일 페퍼저축은행과 경기에서 다시 무릎 부상을 당하며 우려가 커졌다.
국가대표 리베로 GS칼텍스 오지영(33)도 아직은 기대 이하다. 오지영은 지난 시즌 리시브 효율 2위(49.81%), 디그(스파이크를 받아내는 것) 3위(세트당 5.564개)에 올랐던 최정상급 리베로다. 하지만 이번 시즌 리시브 효율은 31.11%, 디그는 세트당 2.70개로 모두 10위권 밖에 머물러 있다. 역시 올림픽 피로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시즌 초반에는 엉덩이 통증으로 두 경기를 결장하기도 했다. 디펜딩 챔피언 GS칼텍스도 현재 리그 3위(승점 15)에 머물러 있다.
다만 부진한 선수들도 워낙 경험이 풍부한 데다 리그 최정상급 실력을 갖췄기 때문에 본래 몸 상태를 회복하면 충분히 반등을 만들어낼 저력이 있다.
▶김형실 페퍼저축은행 감독이 11월 9일 기업은행과 경기에서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KOVO
‘런던 4강’ 감독이 이끄는 매운 막내들
신생팀 페퍼저축은행도 올 시즌 여자배구에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막내들의 반란이 여자배구 흥행에 힘을 보태는 모양새다. 광주광역시에 둥지를 튼 페퍼저축은행은 지난 11월 9일 화성종합체육관에서 열린 IBK기업은행과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1로 승리하며 창단 첫 승을 따냈다. 개막 6경기 만에 거둔 승리로 신생팀이라는 악조건을 딛고 예상보다 빨리 첫 승을 따냈다.
페퍼저축은행의 선전에는 또 다른 기적의 주인공 김형실(69) 감독의 역할이 컸다. 김 감독은 2012 런던올림픽에서 대표팀을 이끌며 4강 신화를 썼던 주인공이다. 김 감독은 V리그 남자부와 여자부를 통틀어 최고령 감독인데 평균 나이가 21세에 불과한 선수들과 ‘신구조화’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김 감독은 “팬들도 늘고 선물도 많이 들어온다. 선수들 입장에선 벌써 일류팀이 된 기분일 것”이라고 전했다. 막내들의 활약이 리그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셈이다.
올림픽 스타들에 무서운 막내들까지. 이번 시즌 여자배구 열풍은 김연경이라는 최고의 스타가 국외 이적을 선택한 가운데 만들어낸 결과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특히 최근에는 국내 최고 인기 프로스포츠인 프로야구의 시청률까지 넘보고 있다. 지난 여름 도쿄의 열기는 이곳 V리그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준희 <한겨레> 기자